사우스어니스트 섀클턴 지음·최종옥 옮김 뜨인돌 발행·2만3,000원
위대한 생존
발레리안 알바노프 지음·홍한별 옮김 갈라파고스 발행·9,800원
그래도 후회는 없다
피터 퍼스트브룩 지음·정영목 옮김 지호 발행·1만2,000원
"에베레스트에 왜 오르는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전설적 등반가 조지 리 맬러리(1886∼1924)가 남긴 이 말은 산악인들에게는 이미 진부해졌다. 하지만 이 말에는 극한상황에 맞서서 도전하고 탐험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욕망이 압축돼 있다. '사우스'(South), '위대한 생존'(In the Land of White Death), '그래도 후회는 없다'(Lost on Everest searching for Mallory & Irvine)는 20세기 초 남극과 북극, 에베레스트 등 아무도 가지 않던 죽음의 땅에 첫발을 내디디거나 몸을 던진 사람들의 투혼의 기록이다.
'사우스'와 '위대한 생존'은 각각 남극과 북극의 천연자원 탐사에 나섰다가 죽음의 고비를 넘긴 기적적 생환을 다루고 있다. '사우스'는 1914년 남극탐험선이 난파돼 537일을 떠돈 영국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1874∼1922)의 자서전이다. 섀클턴은 당시 남자극(南磁極)을 발견하고, 에러버스 화산을 조사하는 등의 업적으로 '기사(Knight)' 작위를 받은 인물이다. 그 동안 '인듀어런스' '위대한 항해' '서바이벌 리더십' 등 탐험기와 사진집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위기상황에서 27명의 대원을 모두 살려낸 이상적 리더로 여겨져 왔다.
한편 러시아 탐험가 발레리안 알바노프(1881∼1919)는 1912년 북극해에서 18개월 동안 얼어붙은 바다에서 배에 갇혀있다가 13명을 이끌고 탈출에 나서 90일 만에 구조됐다. 이중 11명은 도중에 숨지는 죽음의 행군이었지만 용기를 갖고 도전하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당시 알바노프가 배(세인트 안나호)를 떠날 때 남아 있었던 13명의 선원과 배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제한된 식량과 연료,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처절했다. "한 모금의 물을 얻기 위해 깡통 안에 얼음 조각을 넣어 품고 잤다. 간혹 갈증이 심해져서 물개 고기를 날로 씹고 그 피를 꿀꺽 삼키자 순간적으로 갈증이 해소됐다. 하지만 잠시 후 고기의 염분으로 갈증은 두 배로 심해졌다."('사우스')
"가장 먼저 우리를 괴롭힌 것은 괴혈병이었다. 잇몸이 붓고 피가 나는 이 병은 비타민C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다. 잘 먹고 가벼운 운동을 해야 낫지만 우리에겐 꿈에 불과하다. 빛나는 햇빛 속에서 누렇게 뜬 얼굴들이 섬뜩하다. 인간은 자연이 허락하지 않는 곳에 함부로 얼씬거려서는 안될 것 같다."('위대한 생존')
극한상황에서 섀클턴의 리더십은 빛을 발했다. 그는 배가 침몰하자 5명의 선원과 함께 보트를 타고 1,280㎞나 떨어진 사우스조지아 섬으로 가서 구조를 요청했다. 그리고 남겨둔 전 승무원을 구출하기 위해 다시 그 길을 돌아갔다. 그들은 물개와 펭귄을 잡아먹고, 동상으로 썩어들어 가는 발가락을 잘라내면서도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살아 나왔다. 이 과정에서도 대원들은 얼음의 명칭을 새롭게 정리하고, 고래의 생태를 연구하고, 생물표본을 수집해 과학 발전에 기여했다. 섀클턴은 귀국한 후 다시 1921년 탐험대를 이끌고 남극으로 향했다가 공교롭게도 그가 탈출했던 사우스조지아 섬 앞바다에서 심장병으로 죽었다.
'그래도…'는 1924년 에베레스트 정상 200m를 앞두고 실종된 후 75년 간 등반 역사상 최대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맬러리의 흔적과 죽음을 뒤쫓은 다큐멘터리다. 저자는 1999년 구성된 '맬러리 어빈 조사단'의 일원인 영국 BBC방송 다큐멘터리 PD 피터 퍼스트브룩. 조사단이 조지 맬러리와 앤드루 어빈을 찾아 나선 것은 1975년 중국인 왕 홍바오와 일본인 하세가와가 에베레스트를 오르다가 8,150m 지점에서 영국인 시체를 봤다는 증언이 계기가 됐다. 그리고 조사단은 결국 맬러리의 주검을 찾았다. 그 동안 바람과 햇빛에 옷이 삭고, 몸은 표백이 된 채 도자기처럼 얼어붙은 채였다. 놀랍게도 그가 입은 옷의 두께는 겨우 6㎜로 오늘날 등산복에 비하면 10분의 1도 채 안 된다. 그의 발목은 두 군데가 부러졌으며, 엎드려서 한 발을 다른 쪽에 얹어 놓은 자세로 보아 하산 중에 추락했고, 의식이 놓은 상태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그가 정상에 올랐다면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가 처음 등정한 1953년보다 29년이나 앞서는 것이었다.
아직도 극지는 과학적 탐구와 인간 의지의 도전 대상이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초인적 노력과 극기 정신을 보여주는 세 책은 새해를 맞아 새로운 결심과 의지를 다지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듯하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