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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두 아이-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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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두 아이-최명숙

입력
2004.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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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과 공연에 대하여이 극에서 두 아이는 관객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실제 무대에 등장하는 두 배우, 남편과 아내는 보이지 않는 두 아이를 상대로 연기해야 한다. 때로는 두 아이의 대사가 생략되어 있는데, 배우들은 그 생략된 대사를 듣는 것처럼 반응하고 연기할 필요가 있다. 무대는 연출의 방향에 따라 아주 사실적인 세트로 설정될 수도 있고, 극도로 상징적인 세트가 될 수도 있다. 각 장 마다 붙여진 제목은 스크린에 투사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관객에게 제시될 수 있으며, 연출방향에 따라 생략해도 무방하다.

1장. 애들은?

암전 상태. 전화하는 목소리만 들린다.

아내 : 벌써 일주일이 지났어. 그런데도 아무런 해결책이 보이질 않아. 모든 방법을 다 써보았어. 그런데도 누가 진짜인지 알 수가 없어. 어떻게 하지? 난 이제 어떡하면 좋아? 너라면 어떡하겠니? 뭐? 방법이 하나 있다고? 그게 뭔데? 괜찮아. 괜찮으니까 말해 봐. 어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얘, 그이가 왔나 봐. 일단 끊자. 나중에 내가 다시 전화할 게.

불이 켜진다. 전화기를 내려놓는 아내. 곧 이어 들어오는 남편.

남편 : 애들은?

아내 : 자.

남편 : 별 일 없었고?

아내 : (한숨) 그러게…

남편 : 무슨 말이 그래?

아내 : 뭐가?

남편 : 별 일이 있기를 바란다는 거야? 뭐야?

아내 : (버럭 화를 낸다) 그럼, 별 일이 있어야지, 이대로 어떻게 살아?

남편 : 아직 둘 중에 누가 진짜인지도 모르는데… 이런 상태에서 별 일이라도 생기면 어쩔 건데?

아내 : 지금 누가 그런 얘기야? 당신이 내 입장이 되어 봐! 하루종일 이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상황에서 해결책도 없이 고민하고 있어야 하는 나를 생각해본 적 있어?

남편 : 알았어. 그만 하자구. 피곤해.

아내는 할 말이 많지만 참는다.

아내 : 누구한테 말 하지 않았지?

남편 : 누구한테 이런 얘길 하겠어? 미친 사람 취급 당하지.

이 때 무슨 소리가 들린다. 잠 깨어 우는 여자아이의 소리. (관객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아내 :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누가 우는데?

남편 : 가 봐.

소리가 난 쪽으로 아내 사라진다. 남편, 아내가 나간 것을 확인한 뒤 무얼 찾는 사람처럼 주변을 꼼꼼히 살핀다. 암전.

2장. 애들이라면 다

아내, 두 아이의 상처에 약을 발라 주고 있다. 몹시 지쳐버린 모습.

아내 : 세상에… 이게 뭐니? 어떻게 이렇게 할퀴어 놓을 수가 있어? 아니? 이 멍 좀 봐. 이빨로 물었구나? 기가 막혀! 너희 둘! 또 이럴 거야? 한 번만 더 싸우면 둘 다 내쫓아 버린다! …… 뭐? 배고프다고? (간식을 갖다 준다) 조금 있으면 저녁 먹을 거니까 일단 우유랑 케이크 좀 먹어. 뺏지 말고 사이 좋게. 알았지? (두 아이를 떨어뜨려 놓는다) 넌 여기서 먹고, 넌 여기서 먹어. 쳐다보지 말고 각자 먹기나 해. 또 싸울라. (한 아이에게) 아유… 어쩜 그렇게 다 흘리면서 먹니? 우유도 막 흘리고… 지겨워. 흘리지 말라고 아무리 주의를 줘도 소용이 없으니… (갑자기 생기가 돈다) 맞아! 잘 흘리지! 우리 희수는 잘 흘려. (아이를 붙들고) 그렇지? 엄마는 맨날 잔소리를 하고 너는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맨날 흘리고… 맞지? 찾았어. 찾았어! (아이를 와락 안으며) 너구나. 희수야. 몰라봐서 미안해.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듯 아이의 손을 꽉 붙잡고) 전화기, 전화기 어딨지? 얼른 알려줘야지.

급하게 전화를 건다.

아내 : 여보세요? 당신? 나 찾았어. 찾았다구. 누가 진짜 희수인지 알았어. 내 참…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어. 간식을 줬는데 얘가 자꾸 흘리는 거야. 당신도 알잖아. 우리 희수가 오죽 잘 흘려?

전화 도중 다른 한 아이가 아내의 뒤에서 뭐라고 말을 시킨다.

아내 : (귀찮다는 듯 냉랭한 반응) 뭐? 응가? 가서 해. (다시 전화) 이제 됐어. 됐다구. 뭐? 흘리는 거? 그게 왜 별게 아냐? 애들이라고 다 흘리나? (생각해보니 맞는 말, 스스로 풀이 죽는다) 하긴… 애들이라면 다 흘리지. (실망한다) 그치만…

문득, 아내의 눈이 화장실로 가는 아이의 모습을 좇는다.

아내 : (아이의 뒷모습을 유심히 보면서) … 알았어. 좀 더 두고 보지 뭐. 끊어.

꽉 잡고 있던 아이의 손을 슬그머니 놓는다. 조심스럽게 다른 한 아이 쪽으로 다가간다.

아내 : 너… 왜 옷을 모조리 다 벗었어? 팬티만 내리면 되는데. …… 그래? 응가가 묻을 거 같아서 그런단 말이지? 옷에 응가가 묻을까 봐 걱정 돼서 다 벗은 거, 정말 맞아? 정말 그런 거야? (흥분을 억누르며 혼잣말로) 이거야말로 희수의 특징인데… 이거야말로… 이거야말로…

암전.

3장. 점 집

남편 : 한 열흘 되었나… 아니, 한 일주일쯤 되었나 봅니다. 요즘은 날이 어떻게 가는 지도 모르겠어서… 하여튼 얼마 전에… 정말 이상한, 아니, 그냥 이상하다고 말하기엔 정말 너무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오후에 집사람한테 전화가 왔는데, 애가 갑자기 둘이 되었다고 하는 거예요. 자기가 잠깐 수퍼에 다녀왔는데 그 사이에 애가 둘이 되어 있더라는 겁니다.

점장이의 반응을 살핀다. (점장이 역시 관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별 반응이 없자,

남편 : (강조하며) 애가 둘이 되어 있었어요. 알아들으시겠어요? 저흰 원래 딸 하나인데, 갑자기 둘이 되었다구요. 똑같은 애가요. 알아들으시겠어요? …… 그래요 계속하죠. 네? 뭐라구요? 제가요? 제가 딴 데서 만든 애냐구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시는 모양인데, 똑같다니까요. 생김새나 모든 것이 아주 똑같은 애가 그것도 갑자기 생겨났다는 겁니다. 딴 데서 애를 만들어도 어떻게 우리 희수랑 똑같은 애를 만들겠어요? …… 똑같아요. 정말 똑같다니까요. 아무리 샅샅이 훑어봐도 다른 데가 없어요. 말 그대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죠. 믿어지십니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믿어지시냐구요? …… 네? 제 아내요? 돼지띠요.

암전.

4장. 시작의 기억

앉아서 무슨 책인가를 열심히 뒤지고 있다. 옆에는 여러 권의 책들이 쌓여있다.

아내 : (책을 덮으며) 모든 것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그렇지. 그래. 맞는 말이야.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그러니까 시작은… (벌떡 일어난다) 시작은 뭐였더라? 집 앞 수퍼에 갔지. 참기름이 떨어져서 그것하고 양파를 사가지고 왔어. 그런데 왜 그날 따라 희수를 데리고 가지 않았지? 보통 가게에 갈 때에도 항상 데리고 다녔는데… 하긴 그 날은 내가 감기 끝이라 조금 피곤했었어. 그래서 혼자 희수를 혼자 놔두고 뛰어갔다 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실제 상황을 재연하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말한다.

아내 : 왔지. 왔다. 그리고 나서 열쇠로 현관문을 여니까… 아냐, 가만… 맞아, 그 때 문을 막 열려고 하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 웃는 소리 같기도 하고 우는 소리 같기도 한… 처음엔 내가 잘못 들은 거거나, 옆집에서 나는 소리일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문을 여니까 희수가, 아니, 그 애가 정말 희수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 애가 방에서 뛰어나왔어. 그 애가 희수였을까? 그 애가 뭐라고 했지?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은 안 사왔어? 우리 희수가 평소에도 그런 말을 잘 했었던가? 그렇기도 하고 안 그렇기도 하지. 그런데 그 때 방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어. 엄마, 이것 좀 해줘! 방문을 열어봤을 때, (그 때를 상상하며 얼굴을 찡그린다) 거의 기절할 정도로 놀라서 기억 나는 게 없어. 아냐, 그래도 기억 나는 게 있을 거야. 그 때 뭔가, 뭔가 특별한 것은 없었나? (애를 쓴다) 기억해 보자… 옷은? 이상해… 둘 다 철 지난 여름 원피스를 꺼내 입고 있었어. 둘 다. 내가 수퍼에 간 동안 갈아 입은 건데… (불현듯 무슨 생각이 떠오른다) 수퍼! 그래! 그거야! 그 일은 내가 수퍼에 있었을 때 일어난 거지. 거기가 시작점이야. 그렇다면?

갑자기 달려 나간다.

5장. 그 곳에 뭔가가 있다

남편과 아내 함께 들어온다. 아내의 얼굴에 큰 상처가 하나 생겨 있다. 둘 다 매우 지쳐 보인다.

남편 : 좀 쉬어.

아내 : 빨리 찾아야 되는데…

남편 : (짜증스럽게) 뭘 말야?

아내 : 사건의 입구! 아니 출구!

남편 : 입구고 출구고 간에 그게 왜 수퍼에 있다는 거야?

아내 : 수퍼에서 시작되었으니까! 모든 것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게 마련이랬어.

남편 : 내 참! 그게 왜 수퍼에서 시작돼? 집에서 시작된 거지.

아내 : 내가 수퍼에 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니까. 내가 수퍼에 가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어. 영화에서 왜 그런 거 못 봤어? 우연히 어떤 다른 세계로 통하는 입구를 발견하는 거. 그냥 아주 일상적인 공간, 아무도 그럴 거라고 생각치 않은 하찮은 곳에 그런 입구가 있단 말야. 수퍼에 그 입구가 있는 거야. 그래서 그 입구를 통해 이런 기이한 일과 내가 우연히 맞부딪힌 거라구.

남편 : 당신 영화 써?

아내 : 그럼 이게 영화가 아냐? 영화보다 더하지 않아? 영화에서도 이런 일은 안 일어나.

남편 : 그래그래, 그건 나도 인정해. 영화보다 더 한 일이라는 거. 그렇지만 수퍼를 샅샅이 뒤지다가 수상한 사람으로 몰려 경찰서에 붙들려 가는 일은 이제 없었으면 좋겠다. 그 입구라는 거, 정말 있다면 저절로 만난 것처럼 또 저절로 만나지겠지. 그렇게 진열된 박스까지 헤집으면서 찾아영?그런 건 아닌 것 같아.

아내 : 저절로? 그래. 바로 그거야. 저절로! 그럼 쟤네들을 데리고 수퍼에 가야겠다. 출구와 저절로 만나질 지도 몰라.

남편 : (버럭 소리를 지른다) 거길 또 가겠다구?

암전. (계속)

6장. 솔직하게

아내는 의자 둘을 나란히 끌어다 놓고 각각 두 아이를 앉힌다.

아내 : 자, 이리들 와봐. 여기 앉아. 좋아, 이제 솔직하게 말해보자. 엄마도 솔직하게 말할게. 엄마는 말야, 희수를 사랑해. 얼마나 사랑하는지… (울음을 참는다) 진짜 희수는 알 거야. 그래서 어떨 땐 너희 둘 중의 하나가 막 밉기도 해. 물론 엄마도 알아. 그게 너희 잘못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계속 이렇게 가다 보면 엄마도 모르게 너희 둘 다 미워하게 될 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되면 좋겠니? 아니지? 그래서 누가 진짜 희수인지 꼭 알아내야 돼. 알고 나면 진짜 희수가 아닌 사람도 혼내지는 않을게. 정말이야. 약속해. 절대 안 혼내. 벌주지도 않고 절대 뭐라고도 안 할게. 그리고 엄마 아빠도 만들어 주고, 또 뭣하면 여기서 같이 살아도 되고, 또… 아무튼 아줌마가 잘해줄게. 약속해. 맹세해. 알았지? 자아, 그럼. 이제부터 솔직하게 이야기 하기다? 거짓말 하면 하느님이 벌 주셔! 알지? 자아, 누가 진짜 희수니?

두 아이를 번갈아 보며 애타게 기다리는 아내의 모습에서 암전.

7장. 음모

밤늦은 시각. 아내와 남편이 나란히 앉아 TV를 보고 있다. 아내는 계속해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

아내 : 혹시… 혹시 말야. 이런 거 아닐까? 내가 쌍둥이를 낳은 거야. 나도 모르게 말야. 근데 하나가 죽었어. 그래서 병원에서 죽은 아기를 숨겼는데, 죽은 줄 알았던 아기가 살아난 거지. 그래서 병원측에서 몰래 길러오다가 적당한 때를 봐서 우리 집에 갖다 놓은 거야.

남편 :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내를 빤히 본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아내 : 아니.

남편 : 분만 때 남편이 꼭 봐야 한다고 날 끌고 들어간 게 당신이었어.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구. 당신 자궁에서 한 명의 아기가 나오는 걸.

아내 : 안다니까, 나도. 웃자고 해 본 소리야.

잠시 침묵. 다시 TV를 본다.

남편 : 이런 생각은 해봤어. 왜 있잖아. 음모 같은 거… 정부의 음모에 우리가 희생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우리 희수에게서 몰래 DNA를 빼내어 복제인간을 만든 거야. 그래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 복제인간을 딸로 여기며 키울 수 밖에 없도록 조종당하고…

아내 : 언제?

남편 : 뭐가?

아내 : 언제 DNA를 빼갔을까?

남편 : 정부가 말야?

아내 : 정부가 그랬다며?

남편 : 정부가 그랬다면… (말끝을 흐린다)

아내 : 정부가 뭐? 계속해 보시지.

둘은 마주 본다. 킥킥 거리다가 웃음이 폭발한다. 눈물이 나도록 떼굴떼굴 구르며 웃는다. 웃음이 잦아들고 잠시 침묵.

아내 : 외계인이라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지.

남편 : 외계인… (허탈한 웃음) 정말 이런 일은 외계인이 아니면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지.

다시 둘이 서로 마주본다. 이번엔 심각하다.

남편 : 정말… 그런 거 아닐까?

아내 : (뒤로 물러나 앉으며) 당신은… 당신… 맞지?

8.장 해결책

전화 통화 중인 아내.

아내 : 뭐라고? 넌! 친구란 애가 어떻게 그런 소릴 할 수가 있어? 반 농담? 지금 농담이 나와? 넌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모르지?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울음이 복받쳐 오른다) 지금 이게 장난이니? 장난이야? 게임이냐구? 난 너무 심각해. 너무 심각해서 내가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야. 하나가 다시 없어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내가 없어지고 말 거라구. (울기 시작한다)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왔는지 모르겠어.

흐느껴 우는 아내. 잠시 후 진정한다.

아내 : 미안하다. 내가 너무 흥분했다. 어떡하면 좋겠냐고 먼저 물어본 건 난데… 대답해주니까 화만 내고… 내가 내 정신이 아냐. 이해해 줘. 하지만, 그 얘긴… 그 얘긴… 너무 끔찍했어. … 끊자.

아내는 생각에 잠긴다. 두 아이가 자고 있는 방문을 살며시 열어 봤다가는 다시 닫는다.

잠시 후, 남편 들어온다.

남편 : 애들은?

아내 : 자.

남편 : 별 일 없었고?

아내 : …… 있잖아. (망설인다)

남편 :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내 : 아니. 아무 일 없었어. 그래서 하는 얘긴데…

남편 : 뭔데? 말해 봐.

아내 : 사실은… 내가 애들 얘기를 누구한테 해봤거든.

남편 : (놀란다) 누구?

아내 : 그냥 그런 사람, 있어. 비밀 지켜줄 사람이야. 걱정 마.

남편 : 그래서?

아내 : 그 사람이 그러는데… 정말 둘이 똑같다면, 정말 구분할 수 없도록 똑같다면…

남편 : 그렇다면?

아내 : 그 사람 말이… 하나를…

남편 : 하나를?

아내 : 하나를…

남편 : (설마… 하는 듯이) 죽이라고?

아내 : (변명하듯)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해결을 보고 싶으면 그렇게라도…

남편 : 사실은… 나도 그런 생각 안 해본 건 아냐.

아내 : (놀라서) 당신!

남편 : 그냥 생각을 해봤다는 거야.

아내 : 하긴… 생각이야 뭐… 아무튼 그 사람 말이… 그러니까 이런 일은, 마치 여섯 개 달린 손가락이나 턱 밑에 혹 같이, 아무 이유도 없이 불필요한 부분이 생겨난 그런 일과 마찬가지라는 거야. 그러니까 손가락이나 혹을 잘라 버리는 것처럼 하나를 없애버려도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는 거야.

남편 : 말도 안돼.

아내 : 나도 처음엔 화를 내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까… 말이 안 될 것도 없더라구. 우리가 낳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누가 낳았겠어? 누가 낳은 것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잖아.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돼. 그건 당신도 알지? 그러니까 저건 생명체가 아냐. 인간이 아니라구. 우리 희수랑 똑같이 변장한 괴물이야, 괴물! 그 괴물을 없애버리는 게 뭐 어때서?

남편 : 죽이는 게 어떻다는 게 아냐.

아내 : 그럼?

남편 : 그걸 몰라서 물어? 지금까지 문제가 뭐였어? 뭘 어떻게 할래도 누가 진짜 희수인지 알아야 할 거 아냐? 그래, 당신 말대로 괴물, 그 괴물이 누군지 어떻게 알 수 있냐구? (답답함이 폭발할 지경이다) 정말 똑같은데…

아내 : 진정해. 여보. 그렇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냐. 그래서 말인데… 그 사람이 그러더라구. 아무리 똑같아도 행동 하나 하나가 다 똑 같은 건 아니지 않느냐, 그래서 맞다 그러니까, 그럼 좀 유치하지만 달리기라든가 기억력 테스트라든가 뭐 그런 걸 시켜봐서 더 잘하는 애로 고르면 되지 않냐는 거야.

남편 : 그게 무슨 소리야?

아내 : 무슨 소린 무슨 소리야? 더 우수한 애를 고르자는 거지.

남편 : 왜?

아내 : 왜냐니? 우수하니까…

남편 : 잔인하군.

아내 : 뭐? 당신 어떻게 나한테…

남편 : 좋아. 그건 그렇다 쳐도, 괴물이 더 못할 것 같애? 괴물이 달리기나 기억력에서 더 못할 것 같애?

아내 : 말이 괴물이지 정말 괴물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내 말은… 정말 똑같으니까, 둘 중 누구라도 하나만 있으면… 설령… (포기하듯) 그래, 만의 하나, 그게 원래 희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누가 그걸 증명해? 우리가 진짜를 골랐는지 가짜를 골랐는지는 우리도 모르잖아. 누구든 하나만 있으면 돼. 하나만! 그래, 내가 잔인한 얘길 하고 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난 더 이상 둘은 못 참아. 하나여야 해. (남편의 표정을 살피며 애걸하듯) 좋아. 더 우수한 애를 고르는 게 맘이 아프면 더 못한 애를 고르자고. 더 열등한 애를 골라. 그럼 되잖아.

남편 :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는 알아. 그리고 나도 당신만큼 힘들어. 하지만 그 얘긴 잊어버려.

아내 : 아냐. 나 흥분해서 하는 소리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 밖엔 없는 거 같아. 다시 하나가 되려면 그 방법 밖엔 없어. 생각해 봐. 만일 우리가 어떻게 해서 진짜 희수를 알아냈다 치자. 그럼 나머지 가짜는 어떻게 하지? 내다버려? 고아원에 맡겨? 우리 희수랑 똑같은 애가 어디 딴 데서 같이 크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옛날처럼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같이 살든 따로 살든, 어떤 형태로든 똑같은 두 아이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건 저주야, 저주! 있을 수 없어!

남편 : 당신 정말 우리가 하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해?

아내 : 이 악몽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난 할 거야.

남편 : 여보… 그냥 둘 다 키우면 어떨까? 그냥 운명이려니 하면 안될까? 어쨌든 우리 속에서 나온 자식이잖아. 우리의 분신이라구. 이런 생각, 죄악이야.

아내 : 운명? 분신? 죄악? 정말 내 운명이 이런 거라면 이건 살란 소리가 아냐. 죽으란 소리지. 그래, 자식은 분신일 수도 있지. 그럼 내 분신이 어떤 건지도 모르고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서로 지들 살을 뜯어먹으며 사는 걸 보라구? 당신 모르지? 둘이서 얼마나 싸우는지… 얼마나 둘이 서로를 미워하는 지 몰라. 원수 같아. 내가 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는지 모르겠어? 둘이 사이 좋게 지내면, 하나가 괴물 아니라 더 심한 거라고 해도 같이 키울 수 있을 거야. 혼란스러운 거, 다른 사람의 눈초리, 그런 것쯤 다 참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당신 아직도 모르고 있어. 두 아이가 어떤 관계인지… 두려움과 공포, 질투와 분노로 가득 차 있다구. 그 둘 중 하나는 진짜 희수일텐데, 난 우리 희수가 그런 눈빛을 하는 게 참을 수 없어.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난 너무… 괴로워. 이 괴로움을 덜려고 하는 게 죄악이라면, 그래, 난 죄를 짓고 말래.

남편 : 나아지지 않을까?

아내 : 아니. 절대 나아지지 않아. 왜인 줄 알아? 쟤들이 서로를 증오하는 이유는 서로 똑같기 때문이야. 둘이 존재한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이라구. 그래서 서로를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거야. 근데 어떻게 나아져? 어떻게 좋아져?

남편 : (잠시 생각하다) 그럼 정말 한다면… 어떻게 할 건데?

불안한 눈초리로 서로를 본다. 암전.

9장. 그리고 끝

아침.

아내 : (비명에 가까운 외침) 여보! 여보! 이리 와 봐 ! 빨리!

남편 : (급하게 달려온다) 왜? 무슨 일이야?

아내 : 애가, 애가…

남편 : (누워 있는 아이를 보며) 뭐야? 왜 이런 거야?

아내 : 나도 모르겠어.

남편 : (아이를 흔들어 본다) 뭐야? (가슴에 귀를 대본다) 죽었어? (천천히 아내를 올려다 본다) 설마, 당신?

아내 : 아니! 아냐! 내가 그런 게 아냐. 일어나 보니까, 일어나 보니까 이렇게 되어 있었어.

남편 : 어떻게 하지?

아내 :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남편 : 일단 경찰에 신고를 할까?

아내 : 안 돼! 그건 아냐.

남편 : 그래, 그건 아닌 거 같다.

아내 : 근데 정말 죽은 거 맞나? 병원부터 가봐야 되는 거 아냐?

남편 : 병원? 그럴까? (애를 들쳐 업으려고 한다)

아내 : (남편을 막으며) 아냐, 그러지 말자.

남편 : 왜?

아내 : 모르겠어?

남편 : 뭘?

아내 : 시작과 끝.

남편 : 뭐?

아내 : 모든 일엔 시작과 끝이 있다고 했잖아. 이게 바로 끝이라구. 시작될 때도 우리가 뭘 어떻게 한 게 아니었어. 그저 저절로 일어났지. 그러니까 끝도 우리가 관여할 일은 아냐. 그냥 놔둬도 돼. 아니, 그냥 놔둬야만 해!

남편 : 그런가? …… 그래, 우리가 책임질 일은 아니지. 그렇지?

아내 :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야. 다시 하나로 되돌아 가야만 되는 거였으니까.

남편 : 그럼 이제 끝이 난 건가?

아내 : (희미한 미소) 그렇지. 저절로 끝이 생긴 거지. 끝이 난 거야.

남편 : (믿기지 않는 듯) 잘 됐다. 잘 됐어. 하하… 내 이럴 줄 알았어. 잘 될 줄 알았어.

아내 : (누워있는 아이를 살펴본다) 확실히 죽은 거 같지? 빨리 치우자.

남편, 죽은 아이를 안고 일어선다. 그런데 나가려다 말고 갑자기 다시 돌아선다.

남편 : 그런데…

아내 : 왜?

남편 : 얘가 누구야?

아내 : 누구냐니?

남편 : 죽은 이 애가 가짜 맞어?

아내 : 뭐?

남편은 죽은 아이를 다시 내려 놓는다.

남편 : (유심히 내려다보며) 얘가 혹시라도…

아내 : (단호하게)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없어. 생길 때처럼 사라진 것 뿐이야.

남편 : 그렇지만…

아내 : 그렇지만 뭐?

남편 : 혹시라도…

아내 : (신경질적으로) 그럴 리가 없다니까? 당신 왜 바보같이 그런 생각을 해? 저절로 죽은 거 보면 모르겠어? 너무나 당연하잖아. 너무나…

아내, 갑자기 나머지 아이에게 돌아선다.

아내 : 그렇지? 맞지? 네가 희수지?

아내는 히스테리컬하게 아이를 끌어안았다가 놓는다.

아내 : 희수야. 엄마 불러봐. 그동안 무서웠지? 이제 다 되었어. 이제 다 끝났다구. 대답해 봐. 우리 희수 맞지?

남편 : (최대한 부드럽게) 대답해 봐. 네가… 희수지? 우리 딸 희수 맞는 거지?

아내 : (남편을 보며 도움을 청하듯) 왜 대답을 안 하는 거지? 왜…

남편 : 둘이 있을 땐 서로 진짜 희수라고 싸웠다면서 왜 말이 없어? 왜 대답을 못해? …… 왜 울어? 울긴 왜 울어? 대답을 해 봐. 이젠 다 끝났으니까 사실대로 말해봐. 네가 희수인지 아닌지 말해 보라구! (점점 미쳐간다) 말 좀 해 봐! 다 끝났는데 왜 말을 못해? 말해!! 다 끝났으니까 이제 말해!!

아이를 붙들고 미친 듯이 절규하는 남편. 아내는 멍한 시선으로 천천히 허물어진다.

아내 : 아니었어. 끝이 아니었어.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서서히 암전.

- 끝 -

희곡/심사평

이번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는 응모작이 160 편을 넘었다. 출품된 작품 경향을 살펴 보면 가족관계를 그린 작품이 많았고 특히 노인 문제를 다룬 작품이 자주 눈에 띄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이버 세계를 무대화한 작품, 그리고 정신병을 소재로 한 작품이 다수 있었다.

이는 변화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연극적 형식 실험을 시도한 작품도 더러 눈에 띄었다. 이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전통을 소재로 삼은 희곡은 찾아 볼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이 자리를 빌어 극작가를 지망하는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희곡은 책상 앞에 앉아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다. 희곡은 몸으로 쓰는 것이다.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치고, 무대 위에서 뒹굴며 내 몸이 쏟아내는 숨소리를 담아내는 그릇이 희곡이란 점을 깨달았으면 한다.

응모작 중 김혜연의 ‘1인칭 액션 슈팅게임’, 정현의 ‘아버지는 언제 죽는가’, 박상철의 ‘그 섬’, 최명숙의 ‘두 아이’가 본심에 남았다. ‘1인칭 액션 슈팅게임’은 의미구조의 형상화가 미흡한 점이 아쉬웠다. ‘아버지는 언제 죽는가’는 죽음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지 못하고 관념적 주제의식에서만 머물렀다는 게 문제로 지적됐다. 나머지 두 작품은 모두 당선작의 수준으로 손색이 없었다.

박상철의 ‘그 섬’은 인물 설정이 연극적이고 주제를 끌고 가는 솜씨도 좋았으나 의미 전달이 유사한 언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게 흠이었다. 인간의 무기력함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한 최명숙의 ‘두 아이’는 무대 언어의 구사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단 주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결말이 구축됐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당선자의 정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오태석 김광림

희곡/최명숙씨 인터뷰

희곡 당선자 한명숙(35)씨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서는 피아노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연극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 실제 대학로에서 배우로도 활동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인 ‘날 보러 와요’에서 여기자 역할을 맡았던 그는 현재 카피라이터, 구성작가로 일하며 시나리오와 희곡을 쓰고 있다. 그가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는 대신 희곡을 쓰게 된 이유는 분명했다.

“며칠 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었어요. 제가 고민하던 문제들을 고스란히 그 작품에서 발견하곤 위안을 받았죠. 저도 그렇게 인간 내면에 잠복해 있는, 결코 사그러들지 않는 갈등과 고민을 친구처럼 언제나 같이 나눌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어요.” 자신의 세계를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보다 대중적인 연극을 택했다고 그는 말했다.

“심오한 이야기를 어깨에 힘주고 하기보다는 가볍고 재미있게 풀어 보려고 했어요.” 그의 말처럼 당선작 ‘두 아이’는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게 다루고 있다. ‘두 아이’는 어느날 갑자기 둘이 되어버린 자신들의 아이를 놓고 갈등 하는 부부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실존의 문제와 자아의 이중성을 다룬 작품이다.

“가끔 내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를 보며 ‘어느 것이 진짜 나인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간의 실존적 문제를 풀어본 거예요. ” ‘슈퍼에 갔다가 돌아와 보니 아이가 둘이 되어 있었다’는 비현실적 설정을 ‘남편’, ‘아내’ 두 주인공의 지극히 사실적인 대화와 심리 묘사를 통해 밀도 높게 표현했다.

그는 “영화로는 도저히 표현 할 수 없는, 무대를 통해서만 전달할 수 있는 그 무엇이 희곡을 쓰게 하는 힘”이라며 기회가 닿으면 연출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1969년 서울 출생 ▦연세대 기악과ㆍ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졸업

희곡/최명숙씨 당선소감

우선 저에게 글을 쓸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허락한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오랫동안 신춘문예 당선을 꿈꿔오며 해마다 부러운 마음으로 새로 실리는 당선 소감들을 읽었습니다. 모든 당선자들이 제각기 다른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 모두가 무척 힘들고 어두운 시간을 통과해 작품을 탄생시켰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름대로 힘겨웠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제 앞의 선배들이 느꼈을 그 감회를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인 역경이란 게 뭐 그리 자랑할 만한 것이겠습니까? 가까스로 이겨냈을 때 스스로에게 내리는 칭찬, 가까운 사람들끼리 서로의 마음을 터놓으며 얻는 작은 삶의 위로, 뭐 이런 것들이 우리가 겪는 아픔의 대가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픔이 없다면 성장하고 성숙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나라는 존재입니다.

다행히도 조금은 성숙했는지,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 너무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제부터 정말 시작이구나. 치열한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설레임과 함께 두려움도 생깁니다. 설레임은 용기와 자신감으로 키우고 두려움은 변치 않을 겸손함으로 간직하면서 열심히 쓰겠습니다.

저를 믿고 격려해주신 가족과 친구,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리고, 저의 가능성을 봐주시고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 위원님들께도 감사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삶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준 저의 사랑하는 딸 혜령이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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