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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사이언스]<1> 영장류 연구, 뇌의 신비 풀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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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사이언스]<1> 영장류 연구, 뇌의 신비 풀어줄까

입력
2004.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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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새해부터 한국과학문화재단과 공동으로 국내 최고의 과학 전문가들이 직접 만드는 과학면을 선보입니다. 이번 기획은 시사성 있는 최신 과학 관련 주제를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습니다. 사실 과학기술이 갈수록 첨단화·전문화·세분화하면서 일반인들은 그 내용은 물론 용어를 이해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한국일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 과학자와 일반인들간의 거리를 좁히는 가교역을 맡을 것입니다./편집자주

원숭이 해인 올해 우리나라에도 영장류연구소가 설립된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 이후 푸대접을 받던 영장류학이 최근 또다시 선진국의 주요 관심 분야로 떠오르는 것에 발을 맞추기 위해서다. 무엇이 이런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영장류 연구가 현대과학에 어떤 성과와 과제를 던져줄지를 알아보자.

침팬지와 사람은 '한 통속'

여기 사람과 침팬지와 고릴라가 있다고 하자. 그 중에서 가까운 두 종을 묶으라고 하면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우리는 애써 침팬지와 고릴라를 나란히 세우려 하지만, 미안하게도 과학적인 분류 기준에 따르면 침팬지는 고릴라보다 사람에 더 가깝다. 즉 고릴라 입장에서 볼 때 침팬지와 사람은 한 통속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는 99%가 같다. 침팬지에 대한 연구가 인간을 이해하는데 가장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20세기가 물리·화학 등의 '경성과학(hard science)의 시대'라면, 21세기는 '감성과학(soft science)의 시대'다. 감성과학 중 가장 중요한 영역은 바로 인간의 뇌에 관한 분야다. 하지만 윤리적 문제 등의 이유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바로 여기에 최근 선진국들이 영장류 연구에 열을 올리는 속사정이 숨어 있다.

영장류는 크게 원숭이와 유인원으로 분류된다. 원숭이는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구대륙 원숭이와, 콧구멍이 양쪽으로 벌어진 것이 특징인 신대륙 원숭이로 나누어진다. 원숭이에 비해 꼬리가 없는 것이 특징인 유인원에는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 그리고 인간이 속한다. 영장류학은 이들 영장류의 진화, 행동, 그리고 지능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특히 지난 1990년대 중반 이후 영장류학의 중요성이 부각돼 선진국은 영장류연구소 설립에 큰 관심을 가졌다. 미국 에모리대 여키즈 국립영장류연구소,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일본 교토대 부설 영장류연구소 등이 대표적이다.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라이프치히 동물원과 공동으로 영장류연구소를 설립했다. 퐁골란트(Pongolant)라는 개방된 공간을 만들어 동물원 입장객이 연구중인 영장류를 직접 관람할 수 있게 해놓았다.

배타적인 독일 학계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영장류 연구팀 책임자를 모두 외국인으로 채울 만큼 영장류 연구에 열정적이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인 파보는 언어 유전자가 침팬지에게는 없고 인간에게만 있다는 것을 밝힌 연구 논문을 2002년 '네이처'지에 발표하는 성과를 올렸다. 겨우 1% 정도의 유전자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그런 결정적인 유전자의 차이로 인해 인간이 침팬지와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고릴라와 침팬지도 다수의 언어를 갖고 그들끼리 정보를 교환한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하지만 영장류의 언어중추는 본능과 관련된 대뇌 변연계에 위치한 반면, 인간의 언어중추는 사고를 주관하는 대뇌 피질에 위치한다. 인간의 언어중추가 뒤쪽의 '느끼는 뇌'에서 앞쪽의 '생각하는 뇌'로 옮겨진 것이 침팬지와 달리 엄청난 진화를 낳는 계기가 되었다.

침팬지는 '자연이 파견한 대사'

일본은 야생 원숭이가 사는 유일한 나라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일본은 영장류학에 있어서 서양학계와 양대 산맥을 이룰 정도로 앞서있다.

교토대 부설 영장류연구소에 있는 침팬지 '아이(Ai)'는 아들 '아유무'와 함께 인기 스타로 대접받고 있다. 컴퓨터게임을 해서 얻은 동전을 모아, 자판기에서 맛있는 음식을 뽑아먹을 정도로 영리하다.

아프리카에서 40여 년간 야생 침팬지를 연구한 제인 구달 박사는 "침팬지는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준 '대사'이다"라고 말한다. 침팬지를 알면 알수록, 마치 자연이 인간에게 자연을 알게 하기 위해 침팬지를 '대사'로 파견했다고 느낄 정도라는 뜻이다.

사랑스럽고 애교 있는 침팬지가 내민 손을 잡고 보면 그 옆에 서 있는 다른 영장류들을 알게 되고, 또 침팬지 뒤에 있는 자연 전체를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영장류연구소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현재 침팬지는 멸종 위기에 몰려있다. 구달 박사가 침팬지 보호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야생에서만의 보호는 이제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침팬지에게 필요한 생활 여건이 갖추어진 시설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게 영장류학계의 주장이다.

영장류학계의 주요 관심사는 인지학, 유전학, 뇌과학, 진화학적인 관점에서의 통합적인 연구이다. 그 중 주요 과제로 주목 받는 영역은 역시 영장류의 뇌에 관한 연구다. 문화도 뇌 활동의 결과라는 측면에서 볼 때 뇌 연구는 침팬지를 비롯한 영장류의 문화까지 포함한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처럼 영장류 연구는 학문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유망하며, 인간 이해의 지평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대중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이런 연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도 영장류연구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연구소를 설립하는 방법만이 영장류의 복지를 해치지 않으면서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연구소를 통해 대중에게는 동물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사랑, 더 나아가서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원숭이해인 올해, 한국영장류연구소가 설립된다는 것이 우연만은 아닌 듯싶다.

최 재 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서울대 동물학과 졸업(1977년)

미국 하버드대 생물학 박사(1990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1994년∼현재)

행동생태학 전문가

● 연내 설립될 한국영장류연구소

우리나라에서 영장류연구소 설립이 구체화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제인 구달 박사가 처음 내한했을 때부터다. 구달 박사는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에게 영장류가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연구소를 만들면 야생 영장류들을 기증하겠다고 제안했다. 또 최근 일본 교토대 영장류연구소의 마쓰자와 데쓰로 교수도 적극 지원을 약속한 상황이다.

현재 여러 지자체들이 최 교수가 추진하는 한국영장류연구소(www.iprc.or.kr)의 유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연구소가 대중과 함께 하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영장류연구소는 일반인, 특히 학생들이 연구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홈페이지에서 신청해 선정된 학생은 영장류의 행동을 직접 관찰하고, 그 결과를 연구소의 컴퓨터에 입력할 수 있다. 이처럼 개인이 관찰한 자료를 연구 데이터로 활용하여 학생에게 자부심과 과학을 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최 교수의 생각이다.

또 어린이가 가족과 함께 연구소를 직접 방문하여 어린 침팬지와 인지 특성, 신체 특성, 그리고 언어 특성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그밖에 일일 방문객을 위한 안내, 학생을 위한 여름·겨울학교, 동물사육사·교사·환경운동가들을 위한 프로그램 등도 구상하고 있다.

이런 식의 프로그램은 방문객이 기존의 동물원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을 해소함과 동시에 기존의 폐쇄적 연구소들이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는데 중점을 두고 기획됐다.

지금 최 교수가 계획하고 있는 연구소의 탑 높이는 30m. 이는 현재 세계 최대의 침팬지 놀이탑인 교토대 영장류연구소의 탑 높이의 2배다. 실제 야생 침팬지가 생활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나무 높이가 30m인 것을 감안할 때 그 정도는 돼야 침팬지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지자체와 협의할 문제가 많아 장소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올해는 연구소의 윤곽이 드러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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