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모니카… 돈이 어딨다구 또 하모니카야.”엄마는 저녁상을 치우고 하품을 하며 내 바지를 꿰매고 계셨다. 둘째형한테 물려받은 청바지다. 엉덩이 밑에 허벅지 부분이 다 달아서 너덜너덜한데 엄마는 바지 사줄 생각도 안 하신다. 그래서 나는 버스 탈 일이 생기면 어쩔 수 없이 꼭 맨 뒤에 올라탄다. 혹시 뒷사람이 바지 겨 입은걸 볼까 봐 겁이 나기 때문이다.
엄마는 돈 얘기가 나오면 짜증을 낼 때가 많으시다. 나는 기가 팍 죽어 조심스럽게 말했다. 며칠 전부터 말해 놓아야 돈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빌려서 써라. 그럼 되잖아.”
“안돼요, 엄마. 음악 시간에 그걸로 실기 시험 봐서 계속 연습해야 한다구요.”
“공부도 못하는 놈이 꼬박꼬박 살건 다 사지.”
“사주기 싫으면 관둬요. 음악 시간에 빵점 맞으면 되지 뭐.”
나는 안방 문을 ‘쾅’ 닫고 나와서 내 방에 책가방을 집어 던졌다. 도덕, 국어, 음악 책이 옆구리 터진 김밥처럼 쏟아져 나왔다. 나는 음악 책을 멍하게 들여다보다 앉은뱅이 책상을 연필로 꾹꾹 찔렀다.
“이게 책상이야, 밥상이지. 보자기만 씌워 놓으면 다 책상인가 뭐.”
“야 임마, 조용히 좀 해. 나 공부하는 거 안보여?”
맞은편에서 여드름 박사 중1짜리 형이 책을 보다 말했다.
“그래도 너는 막내라구 보자기라도 씌워 줬잖니. 나는 할머니 월남치마 찢어서 덮었다. 내일 나 영어 시험이니까 조용히 해.”
나는 시무룩해져서 누렇게 때가 탄 알전구를 올려다봤다. 나는 형제가 많다. 형 둘에 누나 둘. 엄마랑 아빠는 어떻게 꼭 두 살씩 차이 나게 우리를 낳아 놨을까? 생각해 보니까 참 신기하다. 아무튼, 가난한 집일수록 애들이 많다던 윗집 진희 말이 생각났다. 나랑 큰형은 여덟 살이나 차이 난다. 큰형은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고등학생인 큰누나랑 같이 자취를 하고 있다.
나는 큰누나가 제일 좋다. 접시꽃처럼 둥글넓적한 얼굴이지만 활짝활짝 웃을 때 패는 보조개가 예쁘다. 큰누나는 일도 참 잘한다. 고추 따기랑 밭에 김매기 속도도 엄마랑 거의 비슷하다. 나는 일하기 싫어 은근슬쩍 꾀병 부릴 때가 많은데. 깻단 나르기, 타작 후 마당가에 퉁겨 나간 콩 줍기, 여물 포대 잡기는 꼭 내 몫이다. 내가 일하기 싫어 투덜대면 큰누나는 내 코를 잡고 좌우로 흔들기도 했다.
“형, 우리 집은 왜 그렇게 가난하지?”
“왜 그렇긴 원래 없는 집이 주렁주렁 애들만 많아서 그렇지… 그나저나 문제집도 새로 사야 되는데.”
“형, 문제집 안 사면 안 돼?”
형은 내 말에는 대꾸도 않고 앉은뱅이 책상 위에 엎어져 있다. 저녁 무렵, 아버지랑 소여물을 번갈아 가며 쓸더니 작두질이 힘들었나 보다.
“웅이야, 일어나 학교 가야지.”
아버지가 방문 앞에서 나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아침인가?’ 나는 한참을 이불 속에서 비비적대다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폈다. 때 탄 베개는 책상 밑에 도망가 있고, 밤에 보던 음악 책은 펼쳐진 채 방바닥에 얼굴을 뭉개고 있었다.
“사내 녀석이 일찍 일어나 집안 청소도 하고 그래야지. 그렇게 게을러서 쓰겠니?”
아버지는 새로 만든 대나무 빗자루로 토방 앞을 쓸고 계셨다. 빗자루가 잘 쓸리는지 먼지가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 허겁지겁 세수를 했다. 엄마한테 심통을 부리려고 아침밥도 안 먹고 입을 쑥 내밀고 대문을 나서는데 진희가 같이 가자며 뛰어왔다.
“웅이야, 너 하모니카 샀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늘따라 진희가 귀찮다. 말하기도 싫다.
“어! 오늘 음악 시간 들었는데 어떡할려고?… 나는 샀는데, 한 번 볼래.”
진희는 신이 나서 가방을 열고 하모니카를 꺼냈다.
“어때 좋지? 어제 우리 엄마가 읍내에서 사 왔어. 팔천원이나 줬대.”
진희의 하모니카는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세고비아’ 라는 상표가 멋들어지게 새겨 있었다.
“한 번 불어 볼래?”
“됐어. 남의 걸 내가 왜 부냐? 드럽게.”
“뭐? 드러우면 내가 드럽지 니가 드럽냐? 참 별꼴이야.”
진희는 화가 많이 났는지 엉덩이를 쌜룩거리며 앞서 걷기 시작했다. 양 갈래로 딴 머리 방울들이 서로 부딪히며 ‘또륵또륵’ 소리를 냈다. 앞에서 하루에 세 번 다니는 버스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윗마을 쪽으로 나가고 있는 게 보였다. 좁다란 비포장 길에 뒤뚱뒤뚱 버스는 유난히 뚱뚱해 보였다.
4교시 음악 시간에는 팔 들고 벌을 섰다. 선생님은, 왜 같은 날 음악시간이 들어있는 옆 반에서라도 하모니카를 빌려오지 않았냐고 혼을 내셨다. 곱슬머리가 심한 선생님은 오늘따라 풍금 건반을 부서져라 내리치는 것 같다. 입은 악어처럼 딱딱 크게 벌어졌다. ‘파리가 들어가면 어떡하지?’ 나는 키득키득 웃음이 났다.
“김웅이, 팔 높이 들지 못해.”
솔직히, 다른 애들의 침이 잔뜩 묻은 하모니카를 빌려쓰고 싶지는 않았다. 반 아이들은 선생님의 풍금 연주에 맞춰 일제히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했다. 진희는 힐끗힐끗 나를 쳐다보며 혀를 낼름거리고 자꾸 약을 올렸다. 입 모양으로 쌤통이다 쌤통이다를 연발하기도 했다. 진희랑 눈이 마주치는 게 싫어서 얼른 고개를 숙여 버렸다.
수업이 끝나고 진희는 삐쳐서 먼저 가고 나는 터벅터벅 집에 돌아왔다. 똥개 누렁이가 꼬리를 흔들며 마중을 나왔다. ‘그래도 내 맘을 알아주는 건 너 밖에 없다.’ 감나무 그루터기에 기대앉아서 누렁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웅이야, 다리 좀 주물러라.”
저녁을 드신 후 연속극 보다 꾸벅꾸벅 졸던 엄마는 그대로 누워 버리셨다. 그러고는 연속극 다 끝나면 어떻게 됐냐고 물어 보실 게 뻔하다.
“싫어요. 나도 팔 아프단 말예요.”
“네가 한 게 뭐 있다구 팔이 아퍼?”
“하모니카 못 사가서 음악 시간에 벌 섰잖아요.”
나는 웅변하는 애처럼 크게 소리쳤다. 아랫목에서 농어민 잡지를 보던 아버지가 깜짝 놀라 안경 너머로 올려다보고, 무슨 말씀을 할 듯하다 이내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셨다.
“관둬라. 그럼.”
엄마는 종일 고추를 따서 다리가 많이 아픈지 ‘끙’소리를 내며 옆으로 돌아 누우셨다. 그리고는 입을 반쯤 벌리고 금새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기 시작하셨다.
다음 날, 학교를 갔다 오는데 엄마가 저 만치서 큰 포대 하나를 머리에 이고 집으로 가고 계셨다. 저게 뭘까? 분명 먹을 것은 아니겠지! 나는 포대 속에 뭐가 들어 있을까 상상하며 쪽문을 열고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커다란 고무대야에 포대에 있는 걸 쏟고 계셨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고무대야를 쳐다봤다. 순간 눈깔사탕보다 훨씬 큰 허연 마늘통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엄마는 가마솥에 물을 팔팔 끊이더니 마늘통이 담겨진 고무대야에 갔다 부으셨다. 뜨거운 물에서 뿌연 김들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엄마는 뭘 하려고 저러시지?’ 나는 궁금했지만 엄마에게 삐쳐 있기 때문에 끝까지 여쭤 보지 않았다.
엄마는 저녁 때, 토방에 있던 고무대야를 나보고 같이 안방에 옮기자고 하셨다. 물이 많이 들어 있어서 찰랑찰랑 넘칠 것 같아 조바심이 쳐졌다. 고무대야는 꽤 무거웠다. 고무대야 모서리를 잡은 손마디에 이내 뻘건 줄이 생겼다. 엄마는 연속극을 보면서 마늘을 까기 시작하셨다. 뜨거운 물에 한참 불려 놓아서 그런지 마늘 껍질들이 쉽게 까지는 것 같았다.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었지만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엄마, 이거 양념 공장 마늘이죠?”
둘째 누나가 교복을 갈아입고 안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그래 맞어, 어떻게 알았니?”
“현숙이 엄마도 이거하고 계시던데요. 한 포대 까는데 얼마씩 쳐준다고… 이 많은 걸 언제 다 까!… 아휴, 마늘냄새.”
누나도 엄마 옆에 앉아서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 마늘냄새 때문에 누나의 콧등이 간간이 찡그려졌다. 누나는 조금 까다가 숙제가 많다고 자기 방으로 넘어갔다.
반상회에 가셨던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아버지의 얼굴 표정이 밝지 못한 신 것 같다.
“올 추곡 수매가도 신통치는 않을 것 같애. 여름 장마 때문에 농사두 흉년인데… 내년 봄에 영농 자금 신청이나 수월할지 모르겠네.”
“큰 일이네요. 자꾸 빚만 늘어나서. 내년에는 웅미 고등학교도 들어가야 되는데… 농사져서 비료 값, 농약 값, 세금 내기두 빠듯 하구.”
‘휴우’, 엄마의 한숨 소리에 마늘껍질 하나가 방바닥으로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그러게 말야. 농사져서 품삯도 제대로 안 나오니 누가 시골에 붙어 있을려고 해. 젊은 사람들은 너두 나두 도시로 올라가고, 맨 나이 든 사람만 남아 있으니 일꾼 얻기도 점점 힘들어지고 이거야 원…”
아버지가 이마를 찡그리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신다. 이마에 주름이 갈매기 날개처럼 짙게 패어진다. 아버지는 어느새, 흰 머리카락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생겨나 있다. 예전에는 흰 머리카락 한 올 뽑는데 십 원씩 받았는데, 요즘엔 뽑으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만약, 지금 내가 아버지의 흰 머리카락을 뽑으면 나는 엄마를 조르지 않고도 하모니카를 살 수 있을지 모른다. 대신 아버지는 머리숱이 많이 줄어들어 있을 것이다. 그건 왠지 슬프고 나쁜 상상인 것 같아 아버지께 괜히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연속극이 다 끝날 때까지 꾸벅꾸벅 졸면서 눈이 빨개지도록 마늘을 까셨다. 어떤 때는 까지도 않은 마늘을 깐 통에 넣기도 하셨다. 그럼 내가 슬쩍슬쩍 제자리를 찾아 담아 놓았다.
이틀 후 아침, 옷을 벗은 뽀얀 마늘들이 한 가득 고무대야에 담겨 있었다. 나는 고무대야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순간, 진한 마늘 향이 코끝에 쏴악 퍼졌다. 마늘들 몸통에 빤닥빤닥 윤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마늘이 귀엽게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수북한 마늘 껍질들을 삼태기에 담아 퇴비장에 갔다 부으셨다. ‘와 그 많던걸 언제 다 까셨을까? 역시 엄마는 대단해!’ 절로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누렁이 저녁을 주고 들어오는데 엄마가 마루에 앉아서 나를 부르셨다.
“웅이야, 너 내일 음악 시간 들었니?”
“그건 왜요?”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엄마는 갑자기 스웨터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주황빛이 도는 작은 상자를 내 앞에 척 내놓으셨다. 내가 눈이 동그래져서 엄마를 쳐다보자, 엄마는 어서 열어보지 않고 뭐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주황빛 상자 속에 들어있는 것은 놀랍게도 내가 그렇게 갖고 싶어했던 하모니카였다.
“어때 마음에 들어?”
진희 것만큼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너무 신이 나서 싱글벙글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좋니? 엄마가 진작에 사주려고 했는데 큰형 등록금 장만하느라고 늦었다. 내일부터는 꼭 갖고 다니렴.”
엄마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씀 하셨다. 엄마는 마늘 깐 수고비를 받아, 같은 물건이라도 값이 조금 더 싼 읍내에까지 나가셔서 하모니카를 사온 것이었다.
“어디 한 번 우리 막내아들 하모니카 소리 좀 들어볼까.”
마냥 좋아하다 엄마께 죄송한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내가 선뜻 하모니카를 불지 않고 가만히 있자, 엄마가 직접 시범을 보이겠다며 하모니카를 살짝 입에 갖다 대셨다. ‘솔솔 미파솔 랄라솔’ 흔들흔들 서툰 음정이 엄마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어! 엄마 하모니카도 불 줄 아세요?”
형하고 누나가 마루에 나오며 거의 합창하듯 말했다.
“글쎄 하도 오래돼서 음도 기억이 잘 안 난다. 엄마 어렸을 적에는 하모니카 구경하기도 힘들었단다.”
“근데 엄마는 어떻게 하모니카를 불 줄 아세요?
작은 누나의 말에 엄마는 수줍은 듯 빙그레 미소를 지으셨다.
“어! 엄마 어렸을 때, 옆집에 잘생긴 대학생 오빠가 살았거든, 그 오빠가 가르쳐 줬지.”
엄마는 아련히 뭔가를 생각하듯, 눈을 몇 번 깜빡이다 하늘에 달을 올려다보셨다.
“당신 설마, 애들 앞에서 그 첫사랑 옆집 오빠 얘기 늘어 놀 생각은 아니겠지?”
안방에서 TV를 보던 아버지가 방문을 빼꼼이 열고 말씀 하셨다. 눈가에는 장난기 어린 웃음이 가득하신 것 같다.
“첫사랑요? 엄마한테도 첫사랑이 있었어요?”
“아니야, 첫사랑은 무슨. 니네 아버지가 괜히 그러시는 거야.”
둘째형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엄마께 질문을 하자 엄마의 얼굴이 홍시처럼 발그레해졌다. 그런 엄마의 얼굴은 생전 처음 보는 것 같다. 엄마 어렸을 때 첫사랑? 엄마도 나처럼 어릴 때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신기했다. 나는 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지금은 잘 풀리지도 않는 아줌마 파마를 한 엄마의 소녀 시절 모습은 아무리 상상해도 그려지지가 않았다.
“웅이야, 안방 서랍에서 연고 좀 꺼내 와라. 손끝이 좀 쓰라립구나.”
엄마는 뻐얼건 손끝을 어루만지셨다. 마늘에 독한 기운이 올랐나 보다. 그제서 엄마를 도와주지 않은 게 너무 후회됐다.
“엄마, 제가 발라 드릴게요.”
나는 거친 엄마의 손을 잡았다. 장작처럼 꺼칠꺼칠한 손이 물에 허옇게 불어 있었다. 순간 코끝이 고춧가루가 들어간 것처럼 매워 왔다. ‘엄마, 죄송해요. 앞으로 투정 같은 거 안 부릴게요.’ 나는 속으로 작게 웅얼거렸다.
“어디 다시 한 번 불어 볼까.”
“당신 첫사랑을 생각하며 한 곡 불러보지 그래.”
아버지의 농담에 우리 가족은 모두 함박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큰누나가 한 말이 생각났다. “웅이야, 가난은 조금 불편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장 큰 보물을 가졌잖니. 우리 식구 모두 건강한 거, 그 것 만큼 값지고 소중한 건 없단다.” 큰누나가 보름달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엄마의 하모니카 소리는 가을이 내려앉은 마당 한 가득 울려 퍼져 갔다.
동화/심사평
두 사람이 1차 예심을 거쳐 최종심에 올려놓은 것은 ‘열 한 살 마니의 꿈’ ‘말린 꽃 ‘노루의 길’ ‘자전거 타고 우체국 가는 날’ ‘마늘 냄새는 언제나 톡 쏘지 않는다’ 등 다섯 편이었다. 모두 안정된 문장으로 각자의 개성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한 편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열 한 살 마니의 결혼’은 요즘 아이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경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 작가의 능력은 돋보였으나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너무 가볍다고 지적돼 밀려나갔다.
동화적 발상으로 기대를 모은 ‘노루의 길’은 다시 정독하는 과정에서 어른적 시각과 완성도가 문제로 지적됐다. 위안부의 아픈 역사를 동화 속으로 끌어들인 ‘말린 꽃’은 작가가 여러모로 공들인 작품이었으나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을 절실하게 그려내지 못했고, 작의적이란 지적이 나왔다. 이야기의 가장 큰 흐름이 된 편지 읽기를 지금까지 미루어 왔다는 것도 어색했다.
‘자전거 타고 우체국 가는 날’은 남자 아이의 생활과 심리를 실감나게 그려내어 당선작과 마지막까지 겨룬 작품이었다. 그러나 안일하게 처리한 결말 부분은 옥의 티였다. 좀더 치밀하게 구성했더라면 더 돋보이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마늘 냄새는 언제나 톡 쏘지 않는다’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작가의 따뜻한 시선으로 한 가족의 살아가는 모습을 훈훈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모니카를 사주지 않는다고 심통을 부리면서도 어머니를 돕는 주인공과 밤새 마늘을 까고 얻은 돈으로 하모니카를 사주는 어머니의 모습 등 가난하면서도 자기 몫의 삶에 성실한 등장 인물들이 글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작위적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이만하면 당선작으로 충분하고, 쉬지않고 노력하면 좋은 동화작가가 될 수 있겠다는 믿음으로 당선작으로 쉽게 합의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송재찬 노경실
동화/이상화씨 인터뷰
“일상 생활에서 벌어지는 작지만 가슴 따뜻한 일들을 있는 그대로 그려보고 싶었어요.” 이상화(29)씨는 그렇게 리얼리티가 살아 숨쉬는 동화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당선작 ‘마늘 냄새는 언제나 톡 쏘지 않는다’를 보면 그의 이런 바람이 단지 희망사항에 끝나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마늘 냄새는 언제나 톡 쏘지 않는다’는 아들 셋에 딸 둘로 자식 농사는 풍작이지만 돈벌이는 영 시원치 않은 한 농촌 가족의 가난하지만 가슴 따스한 풍경을 초등학교 5학년 막내의 눈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음악시간에 하모니카를 사가지 못해 벌을 서는 주인공 웅이, 그런 막내 아들을 위해 밤새 마늘을 까 돈을 마련하는 가족들의 사랑은 하나의 감동으로 다가온다. “웅이의 모습에는 제 어린 시절의 기억이 투영돼 있어요. 지금도 시골 마을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구요.”
2001년 대학을 졸업하고 줄곧 글쓰기에 매달려온 그가 동화를 쓰는 이유는 이랬다. “우리 산과 들, 강과 바다가 내미는 따뜻한 손길을 잊어 버린 채 회색 문명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도시 아이들에게 따뜻한 감성, 무한한 상상력을 줄 수 있는 그런 동화를 앞으로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당선 연락이 오기 전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동네 서점에서 다시 샀다는 그는 자신도 그렇게 아이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툭하면 동화적 상상을 하는” 그의 삶의 태도로 보아 앞으로 동화 작가로서의 성장을 지켜볼 만할 듯하다.
▦1975년 충남 서산 출생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동화/이상화씨 당선소감
어느 순간이었던가? 모니터 속에서 커서가 사라진 적이 있다. 정신이 암전된 듯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채, 모니터 앞에서 공벌레처럼 웅크리고 앉아 허둥지둥 커서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 문득 방을 둘러봤다. 네모난 방, 네모난 시계, 네모난 거울, 나는 네모난 거울 속에 얼굴을 비춰봤다.
네모난 거울 속에 얼굴이 그대로 갇혔다. 그때 갑자기, 옆집에서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득, 옆집 사람들 얼굴이 궁금해졌다. 노트가 귀했던 어린 시절, 책과 책 사이의 간지를 찾아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즐겨 그렸던 그림은 자연과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회색 크레파스가 많이 닳지 않았었는지도 모른다.
어느날 우연히 지하철역을 지나다가 전시된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서 회색이 유난히 많이 사용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나는 아이들 손에 두 세 개 씩 들려 있는 학원가방을 보며, 고층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벽과 벽 사이를 헤매며 집을 지으려고 애쓰는 개미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이들이 부디 물처럼 풍부한, 흙처럼 무한한 사고를 그림 속에 펼쳤으면 좋겠다. 조금은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여러 색깔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막 모니터 속 커서를 찾아낸 듯 눈을 깜박인다. 그리고 모니터 속 커서는 사라진 게 아니고 스스로가 삼켜 버렸다는 걸 깨닫는다. 어느새, 나도 회색을 덧칠한 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이제 서서히 그 벽을 허물고 사람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봐야겠다.
비 오는 거리, 항상 우산이 되는 걸 마다하지 않으셨던 사랑하는 어머니와 가족, 소중한 친구들, 글보다 먼저 인간의 따뜻함을 가르쳐주신 강정규 교수님을 비롯한 숭의여대 교수님들, 부족한 작품에 기꺼이 옷을 입혀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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