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각각 71, 68세가 되는 노원씨와 허경진씨에게 갑신년 신새벽의 아침 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힘차게 솟아 오른다. 지난해 말, 삼성증권에 재취업하면서 두 노익장의 하루는 일몰의 산기슭으로부터 중천의 도심으로 돌아왔다. 이들과 함께 홍일점으로 입사한 이선이(59)씨 역시 "하루가 달라졌다"며 "수입도 수입이지만, 잃어버린 인생을 찾은 느낌"이라고 말한다.
노원씨의 분주한 아침
요즘 노씨의 하루는 어김없이 아침 7시에 시작된다. 본래 운동을 즐기는 활달한 체질이었다.
그러나 공무원을 거쳐 10년전 한국자원재생공사 지사장을 끝으로 은퇴한 후 일상은 부지불식 간에 무질서하게 흐트러졌고 시간의 구분 역시 모호하게 흐려졌다. 하지만 이제 '분주한 아침'이 되돌아왔다. 아들 둘 모두 출가해 독립한 후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곳은 노원구 중계2동의 한 아파트. 9시30분까지 종로1가에 있는 회사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먼저 거실에서 간단한 도수체조를 한 뒤, 15∼20분 정도 헬스자전거를 탄다.
삼성증권에서 노씨가 맡은 일은 퀵서비스. 회사 각 부서가 여의도에 있는 유관 기관 등으로 보내는 각종 문서들을 지하철을 이용해 직접 배달하는 일이라 하체가 약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더운 밥과 국도 출근 전에 꼭 챙겨 먹는다. 은퇴자 시절, 권태가 짜증으로 쌓여 밥 때를 놓치기도 일쑤였으나 이젠 소찬이 맛이 있다. 노씨는 "한 참 때는 차라리 은퇴해서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며 "그러나 10년을 놀아보니 일이 제일 그리웠다"고 말했다.
한 낮의 이선이씨
오전 10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시간은 현업 활동을 하고 있는 남편과 장성한 자녀들이 모두 출근한 뒤 남겨진 집 안의 적막 만큼이나 막막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을 가다듬고 하루를 시작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됐다.
이씨의 업무는 사내 리서치센터 자료실 사서역. 아침 일찍 배달된 각종 정기간행물을 분류해 제자리에 정리하고, 리서치센터의 각종 자료를 사내 각 부서 및 지점에 발송하는 일이다.
일 자체는 단순할 지 모른다. 그러나 국내 최대 증권사의 하루를 여는 일에 자신이 당당하게 참여하고 있다는 자각으로 이씨의 혈관은 청년처럼 약동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55세 이상 은퇴자 가운데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불과 3%대. 어찌 보면 재취업을 단순한 운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씨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이씨는 "결혼을 한 뒤 직업에서 멀어지긴 했지만, 일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 것이 사실"이라며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기도 했고, 보습학원을 운영하기도 했던 경험이 뒤늦게나마 새 직장에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보다 긴 인생을 찾는 이들에게 이씨는 "부단히 도전하고 준비할 것"을 권했다.
또 하나의 내일을 품은 허경진씨의 저녁
노씨와 함께 퀵서비스 업무를 맡고 있는 허씨의 하루 일과는 지하철을 열 번쯤 타고 오가면 대개 끝난다. 오후 5시쯤이다. 제주도청 공무원을 거쳐 제주의료원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끝낸 뒤 7년여 만에 귀가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과묵한 성품의 허씨지만, 보다 많은 은퇴자들이 자신처럼 '노동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허씨는 "서울 큰아들 집에 '얹혀' 살고 있는 셈인데, 삼성증권의 은퇴자 사회참여 사업으로 삶의 활력을 되찾게 됐다"며 "노인 고용은 생계 수단의 차원을 넘어서는 인생의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복지시설 등 사회적 인프라가 미비한 상태에서 '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고령자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모색이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허씨는 "나는 이제 퇴근길에서 내일의 할 일을 생각할 수 있는 행운을 잡게 됐지만, 지금 40대인 당신들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장인철기자 icj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