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세 직장인 A씨가 돌연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친구나 가족은 이해하지 못했다. 담배를 피우고 직장 스트레스가 많기는 했지만 못하는 운동이 없을 정도로 건강체였기 때문이다. 뇌졸중 위험요인을 자각하지 못했던 그는 며칠만에 의식을 찾았지만 직장복귀가 힘들 정도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53세인 B씨는 당뇨병으로 한 의사를 찾은 이후 그와 꾸준히 만나면서 가족력이나 가정의 대소사까지 털어놓을 정도가 됐다. 그는 의사가 시키는 대로 정기진단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암을 조기발견, 간단한 수술로 종양을 제거했다.운명인가 예방인가
A씨와 B씨는 질병이 표면으로 나타나기 전에 손을 썼느냐, 아니냐는 차이로 전혀 다른 인생의 후반기를 맞았다. 운명을 탓해야 할까. 예전 같으면 그랬겠지만 이제 의학적 건강관리는 개념부터 달라야 한다. 현대의학은 갈수록 '신기의 명의'보다 '건강한 사람을 더욱 건강하게'라는 예방의학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프지도 않은데 왜 병원에 돈을 쓰느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증상이 있는 병으로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한 의사의 말을 곱씹어보라. 실제 우리나라의 사망 원인은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당뇨병 순이며 처음엔 아무 증상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40세부터 설계하라
인생 후반의 건강은 40대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아산병원 내과 민영일 교수는 "중년은 사회적으론 조기퇴직과 승진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하고, 가정에선 자녀 뒷바라지로 등골이 휘는 시기여서 건강을 등한시하기 쉽다"며 "하지만 왜 돈을 벌고 무엇이 잘 사는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건강관리도 계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30대까지는 그렇다쳐도 40대부턴 조직적인 '건강 설계'가 필요하다는 충고다.
40대가 분기점이 되는 이유는 각종 심각한 질병의 발병률이 40∼50대에 급증하기 때문. 또 젊은 층의 사망은 사고사나 유전적 경향이 커서 인력으로 대비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 반면 중년 이후의 질병은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에서 비롯된 '생활습관병'이어서 예방의 효과가 크다.
먼저 자신의 생활습관을 점검해 보자. 여전히 담배를 피운다면 당장 끊어야 하고 아직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당장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금연과 운동은 현대인의 건강을 위해 권장되는 생활습관 중 가장 근거가 확실하다.
평생을 관리하라
또 40대부터는 증상은 없어도 질병의 조기 진단을 위한 건강검진을 정례화해야 한다. 일생에 걸쳐 연령별로 적절한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이것이 바로 '평생건강관리 프로그램'이라는 개념이다. 대한가정의학회는 42개 중요 질병에 대해 증상이 없을 때 조기진단 하는 법이 무엇이며, 얼마마다 검사를 받아야 하는가<표 참조> 에 대한 학회 안을 총정리, 지난해 가을 '한국인의 평생건강관리'라는 책을 펴냈다. 표>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선우성 교수는 "일반적으로 간암 검사는 불필요하지만 만성 간염환자는 6개월마다 검사가 필요하다. 이처럼 개인의 위험도에 따라, 그리고 연령과 질병에 따라 필요한 검사를 골라야 하며, 위험도가 높은 쪽을 집중 관찰해야 한다"고 건진의 맞춤설계를 강조한다.
맞춤진단 필요
맞춤설계를 위해선 전문가가 필요하다. 오병희 서울대병원 강남건진센터장은 "개인별 위험도에 따라 필요한 검사를 선별하고, 관리해 주는 헬스 플래너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테크와 보험설계에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게 아닌 것이다.
'헬스 플래너'란 단순히 검사계획을 짜는 것뿐 아니라 전반적인 건강관리를 책임지는 주치의이다. 선우 교수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239인 흡연 남성과 241인 비흡연 여성이 있다고 치자. 239는 정상, 241은 비정상으로 표시되겠지만 뇌졸중 위험은 전자가 훨씬 높다"며 "건진 후엔 그 결과를 제대로 해석하고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를 상담하는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치의를 만들어라
그렇다면 누구를 건강관리 주치의로 두어야 할까.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이 있어 병원을 정기적으로 찾거나 노화방지클리닉, 비만클리닉 등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그 의사를 주치의로 삼을만하다.
현재 딱히 주치의라 할만한 사람이 없다면 서둘러 주치의를 정하자. 먼저 큰 종합병원의 전문의를 주치의로 둘 생각은 말아야 한다. '명의'는 병이 중할 때 찾아야 할 자문의이다.
주치의의 첫번째 자격은 부담 없이 찾을 수 있고 상담을 오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가까운 개원의로 내과나 가정의학과가 적당하다. 둘째 주치의는 고객의 병력, 가족력, 흡연유무 같은 위험요인을 두루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셋째 검진 결과표를 보고 "아무 이상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주치의의 자격이 없다. 정상이라도 "앞으로 무엇을 주의하라"는 예방의학적 개념을 강조하는 사람을 주치의로 정한다. 끝으로 설명하는 것을 귀찮아 하지 않는 사람, 친절한 사람일수록 좋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내몸을 내가 지배해야 무병장수"/서울대병원 유태우교수
의사만 잘 만나면 평생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이 얘기를 부인하는 의사가 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유태우 교수는 "내 몸을 스스로 지배하는 자만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며 '건강 지배론'을 편다.
"23년간 환자를 진료한 결과 좋은 약과 치료법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과연 감기가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질환입니까? 바이러스는 환경일 뿐입니다. 누군 걸리고 누군 안 걸리는 것은 면역력의 차이 때문이죠. 현대의 만성질환은 대부분 환자가 자기 몸을 얼마나 지배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꼭 담배를 빼 물어야 하며, 머리로는 한잔만 해놓고 술자리에만 앉으면 꼭 폭탄주를 돌리며, 조금만 늦으면 왜 그렇게 핏대가 나는지…. 가만히 들어보면 생활습관병의 원인을 지적한 것이지만, 대책으로 내놓는 '탈조건화'는 의사답지 않게 단순, 과격하다.
"비만을 해결하려면 골라 먹으라구요? 알아도 밥상에만 앉으면 손이 가는데 어쩝니까? 차라리 24시간 동안 밥을 굶어보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조건에 대한 반응을 재교육하는 거죠." 그 자신의 생활이 이런 식이다.
끼니를 거른 적이 없는 미식가였던 유 교수는 여섯 달 전 이를 탈조건화하기로 했다. 하루 내내 물만 먹으며 일한 그는 두 끼를 거른 후 미칠 것만 같다가 나중엔 오히려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때부터 유 교수는 끼니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절반 먹기를 실행한 그는 8㎏을 감량했고 체력이 25% 이상 향상됐다.
1980년대 후반 미국 연수 중 유 교수는 성격검사를 받아보았다. '강박성 성격'의 전형이었다. 남에게 지지 않으려 하고, 잘 쉬지 못하고, 동시에 여러가지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좀체 못 기다리고, 화를 잘 내는 것도 특징이다.
그는 "이는 성격이라기보다 현대인의 삶이 만드는 조건화된 행동"이라며 "이 조건화를 타파하는 것이 현대인의 건강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탈조건화를 위해 유 교수는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조급함을 느끼면 일부러 지하철 안 타기, 주말에 일 안 하기 위해 노는 약속 잡기 등 노력을 했다.
그는 "내 고혈압 환자의 25%는 근본적인 생활습관 교정으로 약을 끊는다"며 좋은 약조차 탈조건화만 못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경쟁적인 현대인의 삶의 논리를 그렇게 쉽게 타파할 수 있을까. "술이 없으면 사회관계가 유지가 안 된다구요? 일단 한번만 벗어나 보십시오. 잠이 안 와요? 48시간 자지 마세요. 변비요, 보름쯤 변 못 본다고 큰일 나지 않습니다. 내 몸을 지배하고 살 것인가, 의사로부터 지배받고 살 것인가는 나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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