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에 끼어 있는 신년 연휴에는 방안에 앉아 TV를 시청하는 사람도 적잖다. 지상파 방송에서는 ‘밀리언 달러 호텔’ ‘춘향뎐’ ‘빌리 엘리어트’ 등 작품성과 재미를 고루 갖춘 영화를 선보인다. 물론 오래된 영화를 재탕 삼탕하는 경우도 적잖지만.케이블의 영화전문 채널은 지상파보다 상차림이 풍성하다. 물론 유료 채널인 캐치온을 제외하고 재방이 많은 게 아쉽다. 위성채널역시 재방이 많지만 스카이HD에서 화질이 대폭 개선된 고화질(HD)로 다시 방송하므로 HDTV를 갖추고 있다면 보는 맛이 새롭다.
1일 '밀리언달러 호텔' '갱스 오브 뉴욕' 등
SBS는 폴란드의 거장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사랑의 세가지 색깔’ 연작 3편을 2003년 12월31일부터 2004년 1월2일까지 연달아 방영한다. 말로만 듣던 삼색 시리즈를 미처 보지 못한 영화팬이라면 이번 기회를 이용하면 좋을 듯.
프랑스 국기의 3색에서 제목을 딴 연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으로 자유를 상징하는 ‘블루’가 구랍 31일 방영된데 이어 1일 밤 12시55분에 평등을 나타내는 두 번째 작품 ‘화이트’가 방영된다. 남녀의 평등한 사랑을 다룬 이 작품은 1994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았다.
박애를 뜻하는 세 번째 작품 ‘레드’(2일 밤 12시55분)는 이렌느 야곱과 장 루이 트랜티냥의 연기가 돋보여 호평을 받았는데 스위스, 프랑스, 폴란드 3국 합작이라는 이유로 1995년 아카데미 외국영화상 후보 선정에서 탈락되자 로버트 데니로, 올리버 스톤, 조디 포스터 등 60여명의 할리우드 스타들이 아카데미 위원회에 항의 편지를 보내 화제가 됐다.
부랑자로 가득찬 로스앤젤레스의 밀리언달러 호텔에서 벌어진 투신 사건을 다룬 암울한 영화 ‘밀리언달러 호텔’(KBS2 밤 1시40분)도 전파를 탄다. 밀리언달러 호텔은 영국 팝그룹 U2의 리더인 보노의 아이디어를 빔 벤더스 감독이 영화로 옮겼으며 멜 깁슨, 밀라 요요비치가 주연을 맡았다.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로 이어지는 암울한 정서가 더 무르 익었다.
케이블TV에서는 19세기 미국 뉴욕 갱들의 세력 다툼을 다룬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갱스 오브 뉴욕’(캐치온 밤 10시)이 눈길을 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광기어린 연기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액션 스타 변신이 돋보인다.
위성채널 스카이HD에서는 HD 영화 3편을 줄줄이 방송한다. 팀 버튼 감독의 음울한 영상이 돋보이는 ‘배트맨’(밤 10시), 절대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프로도 일행의 모험을 다룬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오후 3시30분), 4년간 무인도 생활을 한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캐스트 어웨이’(밤 10시)가 차례로 방송된다.
2일 '무사 쥬베이' '존 말코비치의 생쥐와 인간' 등
케이블 채널 XTM에서 방송할 애니메이션 ‘무사 쥬베이’(밤 1시10분)는 잔혹 영상이 장기인 가와지리 요시야키 감독의 작품. 일본 막부 시대 정권 탈취를 꿈꾸는 무리들과 떠돌이 무사 쥬베이의 대결을 그렸다. 야하고 참혹한 장면이 많은 성인 취향 작품으로 1993년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
신보 유이치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화이트아웃’(캐치온 밤 10시)은 100억원을 들여 5년 동안 만든 일본판 ‘다이하드’. 일본 최대의 댐을 습격한 테러범들과 근무 직원의 싸움을 다뤘다.
위성채널 MGM의 ‘존 말코비치의 생쥐와 인간’(밤 10시50분)은 게리 시니즈 감독이 존 스타인벡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 떠돌이 젊은이들, 이들을 고용한 속좁은 목장주인, 젊고 아름다운 목장주의 아내가 얽혀서 비극을 빚어낸다. 국내 미개봉작으로 TV를 통해 처음 공개된다.
3일 '춘향뎐' '세익스피어 인 러브' 등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KBS1 밤 11시10분)은 판소리 춘향전을 충실하게 영화로 재현했다. 한국의 산수를 담은 아름다운 영상과 조선시대 생활을 충실하게 재현한 고증이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 1999년 칸느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소림오조’(MBC 밤 11시10분)는 친구의 밀고로 온 가족이 몰살당한 뒤 복수를 꿈꾸며 강호를 떠도는 주인공의 이야기. 무술배우 이연걸이 소림무술을 연마한 주인공을 맡았다. 왕정 감독 작품.
케이블TV에서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사랑을 다룬 ‘세익스피어 인 러브’(OCN 밤 10시)가 소개된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발표하기 전에 나눈 가상 연애담을 담고 있다. 1999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기네스 펠트로가 여우주연상을 받는 등 모두 7개 부문상을 수상.
위성 채널 MGM은 사이보그 경찰관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로보캅’(오전 9시30분)과 ‘로보캅2’(4일 오전 11시)를 내보낸다. 도덕과 법이 상실된 시대에 정작 경찰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사이보그가 정의를 집행하는 풍경에서 폴 버호벤 감독(1편)의 암울한 미래관을 읽을 수 있다.
4일 '빌리 엘리어트' '밴디트' 등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과 재미를 준다. 탄광 노동 조합원인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발레리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소년을 다룬 ‘빌리 엘리어트’(KBS1 밤 11시25분)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물한다. ‘풀몬티’가 누드쇼로 실업자들의꿈을 얘기했다면, 이 영화는 발레하는 소년을 통해 현실과 꿈을 말한다. 샌드러 불럭이 테러범 색출을 위해 미인대회에 위장 출전한 FBI수사관으로 출연한 ‘미스 에이전트’(SBS 밤 10시55분)는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은행가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하루밤을 지낸 뒤 다음날 은행가와 함께 출근해 은행 금고를 털어 달아난 2인조 은행강도의 실화를 다룬 브루스 윌리스, 빌리 밥 손튼 주연의 ‘밴디트’(MBC 밤 12시25분)는 코미디와 액션이 섞인 로드무비다. 베리 레빈슨 감독 작품.
정초신 감독의 ‘자카르타’(OCN 밤 10시)도 은행강도가 주인공이다. 김상중, 임창정 등이 같은 시간에 은행을 털어 수사망을 혼란에 빠뜨리는 두뇌파 강도로 등장한다.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스네이크 아이즈’(수퍼액션 오후 8시50분)는 권투 경기를 관전하던 국방장관이 암살당하자 경기장을 봉쇄하고 범인을 찾는 경찰관의 활약을 그렸다. 실제 경기보다 더 박진감 넘치는 권투 경기 장면이 압권이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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