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아내는 새 달력과 묵은 달력을 꺼내 놓고, 묵은 달력 위에 표시된 집안의 대소사를 새 달력 위에 옮겨 적고 있었다. 직접 참석하는 것은 한 번이나 두 번밖에 되지 않고 매번 전화로만 우리도 이날이 무슨 날인지 잊지 않고 있다고 아뢰게 되는 여덟 번의 제사와 양가 네 어른의 생신, 형제들의 생일, 동서들의 생일, 조카들의 생일, 그 밖에 잊어서는 안될 날들을 옮겨 적는다.나 역시 이쪽 방 책상에 앉아 지난 한해의 기록을 살피듯 책상 다이어리를 뒤적인다. 1월부터 12월까지 이런저런 원고 청탁과 강연 요청, 크고 작은 약속, 병원에 가고 휴가를 가고 여행을 떠났던 날, 내가 살아온 한 해가 고스란히 열두 장짜리 달력 안에 다 들어 있다.
이제 방마다 헌 달력을 내리고 새 달력으로 바꾸어 건다. 새해에는 또 저 달력 위에 어떤 아쉬움과 어떤 넘침의 기록을 남기게 될까.
벌써 몇 년 째 묵은 달력을 버리지 않고 보관해 오고 있다. 그 안에 내가 살아 오고 걸어 온 걸음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꾸어 거는 달력과 달력 사이로 한해가 가고 또 인생이 지나가는 것이다.
새해에는 모두에게 두루 좋은 일만 함께 하길. 하여, 근하갑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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