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공부 열심히 해서 꼭 훌륭한 사람 돼야지. 이담엔 너희들이 커서 사랑방을 계속 후원하렴."세모를 앞둔 3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7동 난곡 어린이들의 쉼터인 '난곡 사랑방'. 크리스마스도 제대로 지내지 못한 20여명의 달동네 아이들은 '넥타이 산타'가 들고 온 케이크와 학용품을 받아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거동이 어려운 기초생활수급대상자 부모와 함께 지내는 김충성(9·난향초2)양은 "난생 처음 받아보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사랑방을 찾은 '넥타이 산타'들은 (주)팬택& 큐리텔의 임직원들. 이들은 지난 7월 전 후원업체의 지원 중단으로 폐쇄 위기에 놓인 난곡 사랑방을 매달 남몰래 도우며 어린이 쉼터의 명맥을 잇고 있다. 지난 5월6일자 본보 기사를 통해 어린이 쉼터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이 회사 박병엽 부회장, 박정대 사장, 장상인 전무 등 임직원 10여명은 올 7월부터 개인자격으로 갹출해 모은 310만원을 매달 사랑방의 운영비로 제공해왔다. 2000년 4월 설립된 40여평 규모의 난곡사랑방은 주민을 위한 각종 도서와 컴퓨터 9대, 놀이방 등을 갖춘 이 달동네의 유일한 어린이 쉼터였었다.
사랑방을 찾은 박정대 사장은 "난곡 달동네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인근에 흩어져 사는 불우아동들을 돕자는 박 부회장의 제안에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고 말했다. 팬택측은 이달 말 전 후원업체에서 환수해 갈 예정인 사랑방 보증금 5,000만원도 내년 초 지원키로했다. 난곡사랑방의 이명애(36) 사무국장은 "이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쯤 아이들 모두 갈 곳을 잃었을 것"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부모 대다수가 건설 일용직 근로자나 파출부로 일을 나가는 난곡의 아이들은 사랑방에서 팬택의 도움으로 새 희망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운영비가 넉넉지 못해 조금은 냉기가 느껴지는 사랑방이지만 아이들에겐 비좁은 집보다도 아늑한 곳이다. 장래 희망이 음악가라는 김은혜(13·난향초6)양은 "사랑방은 무엇보다 집보다 따뜻해서 좋아요"라고 기뻐했다.
새로운 한해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간절한 바람 한가지는 사랑방이 휴일에도 문을 여는 것. "크리스마스엔 사랑방도 문을 열지 않아 더 속상했다"는 원은비(13)양은 "달력 빨간 날도 사랑방 선생님들과 함께 놀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신주연(28) 간사는 "아이들이 특별히 갈 곳이 없는데도 재정이 넉넉지 못해 편히 잘 지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쉬움 속에 한해를 보내는 어른들도 새해에 대한 소망을 가다듬었다. "올해는 경기 침체, 비자금 등 유독 우울한 소식들이 많았지만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에서 희망을 얻었다"는 박 사장은 "내년에는 경기도 좀 나아져 사랑방 후원은 물론, 기업의 기부문화도 활발해 졌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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