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예 월간지처럼 나오는 누드집 열풍 때문인지 여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날로 높아만 가고 있다. 한탕주의니 뭐니 해도 이젠 '헤어 누드' 운운하는 얘기까지 들리는 걸 보면 지난 한 해 동안 누드집만큼 우리 사회의 변화를 피부에 와 닿게 전해주었던 건 없었던 것 같다. 다만 불만이 있었다면 여성들의 볼거리가 없었다는 것. '남체(男體)'의 아름다움은 실종된 한 해였다.시사회가 끝나면 극장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곤 한다. '실미도' 시사가 끝난 후의 일이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다룬 영화였고 강우석 감독의 야심작이어서 꽤 심각한 얘기가 오갈 줄 알았더니, 여성 관객 상당수가 안성기(사진)의 탄탄한 상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초반부 훈련 장면에서 오합지졸 훈련병들을 이끌고 산꼭대기까지 달려 오르는 그의 몸은 연륜이 스민 근육이었다. 헬스클럽에서 울퉁불퉁하게 키운 느낌은 없지만 군살이 거의 보이지 않는 '간결함의 미학'은 20·30대에게도 약간은 긴장감을 줄 만한 경지였다.
어떻게 보면 남자의 육체만큼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쾌감도 흔하지 않다. '해피엔드'의 초반 섹스 장면. 많은 사람들은 전도연의 파격 노출을 얘기하지만 주진모의 엉덩이에 눈독을 들이던 여성 관객이 전체 관객의 절반은 될 것이다. '무사'의 액션 장면도 마찬가지다. 중국 대륙에서 휘몰아치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도 인상적이었지만 흐트러진 옷 사이로 보이는 정우성의 탄탄한 가슴팍은 "헉!" 소리를 뱉게 한 스펙터클이었다. 여기서 이정재 또한 빼놓을 수 없다. 90년대 초 '젊은 남자'로 데뷔했을 때나 10년이 지난 지금이나 호리호리하면서도 볼륨 있는 그의 근육질은 한국 근육남의 대표적 브랜드였고, '태양은 없다'에서 정우성과 함께 해변가에서 공차기하던 장면은 잊을 수 없다. 신진 세력으로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권상우가 있다. 누님들과 화끈하게 즐겼던 '일단 뛰어'도 있었지만 그 영화에선 너무 많이 드러낸 느낌. 이후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상처를 치료하느라 어쩔 수 없이(?) 상체를 드러냈을 때, 극장 안에는 묘한 신음과 한숨이 흘렀다. 송승헌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육체 판타지. 그와 권상우가 만났던 '일단 뛰어'는 한국영화 최고의 '근육 영화'(이게 말이 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성 육체의 쾌감은 노출의 남용이나 근육의 두께로 100% 결정되진 않는 것 같다. 여기엔 일종의 의외성이 작용한다. 우리가 가수 '비'를 보며 나지막하게 내지르는 탄성은 얼굴은 동안인데 몸은 결코 어리지 않은, 그런 조합 때문일지도 모른다. 안성기에 대해 느꼈던 느낌도 비슷한데 그는 영화에서 육체를 드러냈을 때 단 한 번도 "이제 안성기도 늙었어"라는 실망을 준 적이 없다. '이방인'도 그랬고 '킬리만자로'도 그랬다. 나이와 무관하게 꾸준히 관리되는 육체의 성실성. 언젠가 인터뷰 때 그가 했던 말이 기억 난다. 반팔 티셔츠 밑으로 보이는 알통이 너무 탄탄해 보여서 운동 얘기를 꺼냈더니 한 마디 했다. "젊은 애들한테 안 밀리려고, 옛날보다 운동을 두 배는 하는 거 같아." 음... 그가 괜히 '국민배우'는 아닌 것 같다.
/김형석·월간 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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