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화팀은 평론가 전찬일, 김영진, 심영섭씨와 2003년 충무로 영화를 정리하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끈 비운의 영화와 과대평가된 영화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최고의 캐스팅과 최악의 캐스팅도 아울러 따져보았다.과소평가― '질투는 나의 힘' '와일드 카드'
첫 손에 꼽을 수 있는 영화는 단연 '질투는 나의 힘'(감독 박찬옥)이다. 평론가 김영진의 입을 빌자면 이 영화는 '상당히 독특한 인간행동 발달보고서'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개봉 1주 만에 간판을 내려야 했다. 이점에서 흥행에서는 실패했지만 열렬한 지지자를 얻은 '지구를 지켜라'와 비교된다. '질투…'는 '지구를…'에 비해 상복도 없었다. "'지구를…'(감독 장준환)이 보다 '쎈' 외향적 개성을 드러낸 데 비해 '질투…'은 내향적 개성에 머물러"(평론가 전찬일)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던 것. '질투…'는 각종 시상식에서 신인남자배우상(박해일) 말고는 주요 부문에서 뽑히지 못했다. '제 2의 홍상수'라는 박찬옥 감독의 별명도 '질투…'의 참된 매력을 알리는 데 방해가 됐다.
'살인의 추억'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바람에 제대로 눈길을 끌지 못한 김유진 감독의 '와일드 카드'도 불운했다. 중견 감독의 건재를 알린 예외적 작품이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온통 '쎈' 영화를 만든 젊은 작가주의 감독에 집중됐다.
과대평가―'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동승'
올해 충무로 웰메이드 영화의 흥행은 촬영·조명 등 기술과 프로덕션 디자인 등 스타일의 진보에 대한 관객의 지지라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올드보이' '스캔들' '장화, 홍련' 등 남성 작가주의 계열 감독의 작품은 화려한 스타일 이면에 보수적 남성중심적 시각을 감추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심영섭은 "남성 판타지의 실현을 위해 여자를 다루고 있다"며 과대평가된 영화로 '올드보이'를 꼽았다. 그는 또 "'살인의 추억'은 근대와 전근대의 갈등을 신선한 방식으로 다룬 웰메이드 상업영화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평론가 김영진과 전찬일은 청룡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과대평가된 대표적 영화로 꼽았다. '김기덕 감독의 이국정취가 강한 평작'(전찬일), '김기덕의 동어반복.'(김영진) '동승'(감독 주경중)도 '봄 여름…'처럼 이국적 정취에 기대어 해외에서 호평을 이끌어낸 감이 있다.
최고의 캐스팅은 송강호 문소리
올해 충무로는 걸출한 배우들이 적역을 얻어 자신의 열기를 뿜어냈다.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 '바람난 가족'의 문소리는 흥행과 각종 시상식에서 최고의 배우임을 입증했다. "어울리는 역을 맡은 송강호의 파괴력은 최고다"(김영진), "'바람난 가족'에 정서적 울림이 있다면 그건 문소리의 연기의 힘 때문이다"(심영섭). 더불어 최민식과 유지태('올드보이'), 문성근과 박해일('질투…')은 최상의 결합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악의 캐스팅은 고소영 전지현
고소영('이중간첩'), 전지현('4인용 식탁')은 CF 스타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실망만 안긴 최악의 캐스팅으로 꼽혔다.
"고소영의 그늘에 한석규마저 묻혔다"(전찬일), "두 사람은 연기가 아니라 전시를 했다. 피와 살은 없고 이미지만 있었다"(김영진).
강한 남성미를 앞세운 남자배우의 결합은 '바람'과 '동거'가 화두였던 올해는 유독 퇴행적으로 느껴졌다. 조재현과 최민수('청풍명월')가 대표적인 캐스팅. 여성적 섬세함과 노련함이 함께 어울리는 배용준('스캔들')이 뛰어난 캐스팅으로 거론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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