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느낌표'의 '쌀집아저씨' 김영희(43) PD가 27일 방송을 끝으로 프로그램을 떠났다. 그의 다음 행선지는 아프리카. 사내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내년 1월 말 떠날 예정이다. 두 달 가량 배낭 하나 메고, 그의 말처럼 "정말 무작정 싸돌아 다니는" 여행이다.그는 2000년 영국 연수에서 그 나라 국민의 몸에 밴 독서 습관에 충격을 받고 돌아와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란 코너를 만들었다. 아프리카에서 또 어떤 아이디어를 길어 올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직업상 영감을 얻는 게 중요한데, 아프리카의 색깔은 원색이고 또 그곳엔 원초적 삶과 생명이 있지 않나요. PD의 눈을 확 뜨이게 해 줄 뭔가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아프리카는 마음을 비우러 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 말은 '이경규가 간다―정지선 지키기'(1996년), '칭찬합시다'(98년), '!느낌표'(2002년)의 '하자하자' '책책책…' '아시아 아시아' 코너 등 7년 간 그가 잇달아 히트 시킨 프로그램 목록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간다. '!느낌표' 선정도서가 베스트셀러 목록을 점령하고, 고등학교의 0교시 폐지와 청소년복지법 개정, 외국인근로자 고용등에 관한 법률(고용허가제) 제정을 이끌어내는 등 그가 개발한 공익성 오락프로그램이 9시 뉴스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런 그가 자청해서 프로그램을 떠나는 솔직한 이유가 궁금했다.
"무엇보다 체력과 아이디어가 고갈됐습니다. '!느낌표'가 김영희표화 돼 가는 것도 부담이었고요. 출판계를 좌지우지하고 법까지 바꾸게 되니 '문화권력이다' '횡포를 부린다'는 등의 비판이 있었어요. 한편으로는 맞는 얘기라고 생각해요. 권력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물러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에게는 '쌀집아저씨'가 풍기는 여유와 PD로서의 치열함이 공존한다. 먼저 쌀집아저씨다운 면모. 전날 망년회의 숙취로 오후 무렵 사우나에 갔다가 깜빡 잠이 든 그는 인터뷰 장소에 두 시간 늦게 도착했다. 두꺼운 뿔테 안경 뒤로 사람 좋은 함박웃음을 지어보이며. 또 그는 '!느낌표'가 방송된 2년2개월 동안 외부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뚝심 있게 프로그램에만 전념했다. 프로그램 기획단계부터 비판세력으로부터 견제를 견딜 수 있는지 오랫동안 재고, 자신의 논리가 옳다는 확신이 선 뒤에야 프로그램을 띄웠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룬다는 것은 정말 그다운 발상이었다. 지난해 필리핀여행에서 시내에 즐비하게 늘어 선 빈민가 판잣집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이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확 끓어올랐다"고 한다.
그는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너무 쉽다고 생각한다"며 "시청자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주제란 바로 휴머니즘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느낌표'의 아류(亞流) 프로그램이 착각하는 게 있어요. 계몽적이고 센세이셔널한 주제만 가지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느낌표'는 사실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해온 셈입니다. '정지선 지키기'는 바로 우리 사회의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심지어 '책책책'도 책을 통해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터뷰를 떠올려 보세요." 그러면서 그는 "대한민국에 '!느낌표' 같은 프로그램은 한 두개면 된다"며 "어쩌면 요즘 시청자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못 보는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올 한해 평양 도서관 건립 계획이 무산된 것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어린이, 청소년이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쉽고 친근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고 향후 구상의 일단을 내비쳤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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