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자만이 아이를 낳아라20세기 가장 위대한 발명품의 하나로 꼽혔던 먹는 피임약은 21세기 들어서도 계속 업그레이드 되고, 자궁내 장치, 피부 접착제, 주사제, 피하이식기구 등 새로운 피임도구들도 잇달아 선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들은 피임에 무지하다. 많은 여성이 뜻하지 않은 시기에 아기를 갖게 돼 괴로워하고 있으며, 연년생 아기를 키우느라 허둥대며 살고 있다. 무지(無知)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을 때 여성들은 또 다른 무모한 선택을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1년 발표한 전국 출산력 조사에 따르면 전체 기혼여성의 약 40%가 한번 이상의 인공 유산을 경험했으며, 평균 가임연령 기간 중 두 번의 인공 유산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연령 가운데 20∼24세의 낙태비율(1,000명당 53명)이 가장 높았다. 이 수치는 미혼여성이나 10대는 포함하지 않은 것이어서 실제 이루어지는 낙태는 더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매년 태어나는 아기가 70만 명인데 비해 인공 유산건수는 150만건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왜 여성은 10년 전, 20년 전 그랬듯이 쉽게 소중한 생명을 포기하고, 어리석게 스스로 몸을 망치고 있을까.
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이임순 교수(피임연구회 회장)는 "우리나라 여성들은 결혼 전은 물론 결혼 후에도 배우자와 진지하게 피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를 꺼린다. 심지어 자기 주장이 강한 젊은 여성들도 이런 문제엔 터놓고 이야기하길 쑥스러워 하고, 어디서 정확한 피임정보를 얻어야 하는지조차 모른다"면서 "그렇다고 무조건 임신했다고 자식을 낳는 시절은 아니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덜컥 임신한 후 낙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임은 여성의 몫?
'낙태왕국'이라는 오명을 들을 만큼 인공 유산이 많지만, 그렇다고 피임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1997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피임 실천율은 80.5%. 91년 79.4% 94년 77.4%에서 점점 향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피임 실천율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인공유산율이 높은 것은 피임법을 효과적으로 선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우리나라 기혼 부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피임법은 불임수술. 난관수술 18.3% 콘돔 16.5% 자궁내 장치 13.7% 정관수술 13% 먹는 피임약 2.1% 순으로 난관수술과 정관수술을 합하면 30%가 넘는다. 미국에서도 불임수술은 가장 인기있는 피임방법으로 피임 이용 남녀의 39%가 시술을 받았으며 그 다음으론 경구피임약 (27%) 콘돔(20%)순으로 나타났다.
라이프스타일 따라 피임법 골라라
아무리 늘씬한 몸매라도 마흔 살에 열 여덟에 입던 청바지가 잘 어울리지 않듯, 피임법도 여성의 나이에 따라 달리 선택하는 게 현명하다. 피임법의 선택은 성생활 패턴, 피임 성공률, 연령, 건강상태, 원하는 자녀 수 등을 종합해 선택한다. 피임 방법에 따른 장단점, 후유증도 정확히 알아보아야 한다.
◇10대 후반
정신적으로 성숙할 때까지, 성 관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을 때까지 순결을 지키는 것이 최선이지만 10대 성관계가 늘고 있다는 것 역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10대 소녀들은 자신의 생리주기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성관계를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콘돔이나 살정제를 이용하는 게 좋다. 콘돔은 사용 전 볼록 나온 부분을 비틀어 공기를 뺀 후 남성 성기가 발기돼 삽입하기 전 착용해야 한다. 살정제는 성교 직전 여성의 질 속에 넣어, 체내 사정된 정자를 난관에 들어가기 전 질 안에서 죽도록 하는 효과를 가진 피임법이다. 실패율이 높아 콘돔 등 다른 피임법과 반드시 함께 사용해야 한다.
◇20대
상대적으로 성관계 빈도가 높은 시기이면서 여성들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안정될 때까지 임신을 미루고 싶어하는 시기다. 결혼 여부, 출산 경험, 임신 계획 시기에 따라 피임법을 달리 선택할 수 있다. 이미 아이를 하나 낳고 2∼3년 터울 조절을 위해 피임을 원한다면 자궁내장치(IUD)가 좋다. IUD는 크게 미레나(황체 호르몬 함유 자궁내 시스템)와 루프(구리 자궁내장치)로 나뉜다. 미레나는 황체호르몬이 매일 소량씩 자궁내막에만 방출되는 원리로 피임효과도 높은 데다 제거 후 한달 안에 임신이 가능해 복원력도 뛰어나다는 점에서 최근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루프의 장점은 한번 삽입해 장기간 사용할 수 있고, 피임효과가 높다는 점. IUD는 어떤 종류를 사용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한번 삽입 후 5∼10년동안 피임효과를 볼 수 있다. IUD는 성파트너가 여러 명인 여성에게는 성병과 골반염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또 월경과다증 및 빈혈, 심한 월경통 환자, 자궁모양이 이상한 경우엔 사용할 수 없다. 피부 밑에 이식하는 피임제도 선보이고 있다. 임플라논은 한번 이식하면 3년동안 피임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30대
피임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지는지 깨달을 수 있는 시기로, 현재 사용해온 피임법에 만족한다면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 피임약을 오래 복용했다는 이유만으로 부작용 을 걱정하는 것은 분명 지나친 일이다. 피임약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복합적으로 함유된 복합경구피임약과 황체호르몬 단일제제인 미니 필 두 가지로 크게 나뉘는데, 국내에선 미니 필은 시판되지 않고 있다.
요즘 나온 버전은 60년 소개됐던 오리지널 피임약에 비해 에스트로겐은 5분의 1, 프로게스테론은 10분의 1로 용량을 줄여 상당히 안전하지만, 심장병 발생 여부를 놓고선 여전히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혈전색전증 발생 위험이 피임약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3∼4배나 증가할 수 있다. 이 교수는 "특히 흡연여성이 피임약을 먹으면 심근경색 발생 위험이 눈에 띄게 높아지므로, 35세 이상 흡연여성이 피임약을 복용해 왔다면 다른 종류로 피임법을 바꾸라"고 권했다.
그러나 피임약은 장점도 많은 약이다. 자궁외임신 골반염 월경통 배란통 월경과다 비정상적인 자궁출혈 자궁내막증 환자에게 치료목적으로 피임약이 처방되기도 한다. 서구여성의 30%가 먹는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가임 여성들은 전체 3%정도만이 이용하고 있다.
◇40대
설마 이 나이에 임신하랴 하고 방심했다간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기 십상이다. 이제 더 이상 아기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다면 불임수술을 고려해볼 수 있다. 여성의 난관수술은 난자의 통로인 나팔관을 묶어 수정을 막는 방법이고, 남성의 정관수술은 정자의 운반을 담당하는 정관을 잘라내는 방법이다. 둘 다 피임 성공률은 높으나 임신을 다시 원하는 경우 복원수술을 해야 하므로 신중히 고려한 후 선택하는 게 좋다.
피임약도 추천된다. 이 시기에 많이 생길 수 있는 자궁내막암이나 난소암 예방까지 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폐경기를 앞둔 폐경주위기(perimenopause) 여성의 폐경증상 완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성관계의 횟수도 확연히 줄어들고, 여성들이 자신의 생리주기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므로 자연주기법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월경주기가 28∼30일이라면 월경시작 10일부터 19일까지가 임신 가능 기간이므로 이를 피해 성관계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배란시기는 빨라졌다 늦어졌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날짜 피임법은 피임실패율이 상당히 높다.
◇응급피임약
성폭력 등을 당해 원하지 않는 임신 가능성이 있을 때, 사후에라도 피임 효과를 얻기 위해 개발된 응급피임약은 현재 국내에서는 황체 호르몬 단일제제가 판매되고 있다. 기존 피임약의 농도를 5∼6배 농축시켜 만든 엄청난 양의 호르몬제제로, 수정란이 자궁 내막에 착상되기 이전에 복용해야만 임신을 예방할 수 있다. 보통 배란에서 착상까지는 6일정도 걸리므로, 늦어도 72시간 안에 약을 복용해야 한다.
성관계 후 72시간 이내에 한 알, 12시간 후에 다시 한알을 추가 복용한다. 성관계 후 빨리 사용할수록 피임성공률은 높아진다. 노레보정은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반복 복용할수록 효과는 떨어진다.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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