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황한 긴 설명보다 한 마디 말이나 짧은 문장이 사물의 본질을 더 정확히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흔히 말하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다. 일본 한자능력검정협회는 얼마 전 일본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올해의 한자로 호랑이 '호(虎)'자를 선정했다. 공모에 참가한 8만여명 가운데 20%가 이 한자를 선택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한신 타이거스가 18년 만에 우승한 것과 이것이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에 큰 활력소가 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지만,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에 관련해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거나 '호랑이 꼬리를 밟았다'는 의견을 내놓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풀이다.■ 국내에서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킨 말로 '대통령 못해 먹겠다'가 꼽혔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미혼 남녀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9.6%가 노무현 대통령의 이 발언을 지목했다.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받겠다' '이 정도면 막 하자는 거죠' 등이 3위와 4위에 올랐다. 또 응답자 52.3%는 가장 큰 실망을 안겨준 사람이 노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올해 가장 많이 국민들 입에 오르내리고, 관심을 끈 사람이 대통령인 셈이다.
■ 주간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 7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올해의 사자 성어로 '우왕좌왕(右往左往)'이 뽑혔다. 참여정부 출범 후 정치 외교 경제 정책이 혼선을 빚고, 대구 지하철 참사처럼 사회 각 분야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갈 곳 잃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그 뒤를 이은 '점입가경(漸入佳境)' '이전투구(泥田鬪狗)' '지리멸렬(支離滅裂)' '아수라장(阿修羅場)' 등도 거의 같은 맥락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불안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우리의 경우 올해의 한자를 꼽으면 어떤 자가 될까. 아마도 돈 '전(錢)'자가 유력하지 않을까. 대북 송금부터 시작해 현대 비자금, 굿모닝시티 불법 분양, SK사태, 불법대선자금 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돈으로 일관했다. 그것도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규모인데다 수법도 추리소설을 능가했다. 서민들도 돈에 그 어느 때보다 시달렸다. 카드 빚과 생활고 등으로 가족이 함께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이어졌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올해 소비 키워드 중 으뜸은 돈과 부(富)였고, 올해 히트상품에 로또와 재테크 서적이 꼽힌 것도 이런 시류에서다. 1년 후에는 좀 더 좋은 자가 올해의 한자로 뽑혔으면 하는 기대는 헛된 것일까.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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