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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가난한 씨름, 부유한 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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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가난한 씨름, 부유한 스모

입력
2003.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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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완서 선생은 <씨름이 좋아> 라는 글에서 '내가 유일하게 즐기는 스포츠가 씨름이다. 그렇게 말해놓고 나니 좀 우스워진다. 스포츠라는 말과 씨름이라는 말은 듣기에 궁합이 안 맞는다. 운동이라고 해도 어색하기 마찬가지다. 그냥 씨름은 씨름이라고 해야만 제맛이 난다'고 했습니다.씨름의 요체를 아주 쉽고도 간결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씨름은 그저 씨름일 따름입니다. '씨름한다'는 말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씨름'이라는 말 속에는 우리 민족의 얼과 숨결과 애환이 배어 있습니다.

씨름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그려져 있듯이 삼국시대 초기 이미 한반도에 자리를 잡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씨름'이라는 말이 현존하는 한글활자의 최고본인 <석보상절> 에 '실흠'으로 표기돼 있는 것만 봐도 그 뿌리를 알 수 있습니다.

일제 때는 민족의 정신을 상징하는 운동으로 낙인 찍혀 극심한 탄압을 받았던 것이 바로 씨름입니다. 하지만 씨름은 그에 굴하지 않고 광복 이후 되살아났습니다.

1983년 프로화의 첫 발을 내디딘 씨름은 공영방송 KBS의 전폭적 지원과 언론의 깊은 관심 속에 96년에는 씨름단이 8개에 이를 정도로 성황을 누렸습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의 된서리가 씨름판에도 덮쳤습니다. 시나브로 팀이 줄어 현재는 겨우 3개팀, 50명의 선수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민족의 국기'로 자처하기에는 너무 초라한 형편입니다.

일본 스모가 54개 도장, 300명이 넘는 선수로 활황인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각종 세제 혜택 등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받고 있는 스모는 일본 문화를 상징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 스모가 이 땅에 상륙합니다. 일본스모협회는 '한일 문화교류'라는 명분을 내세워 내년 2월 서울과 부산에서 스모 공연을 갖습니다. 그들은 풍부한 재정적 뒷받침을 토대로 세계 각국을 돌아 다니며 일본 정신을 전파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씨름이 곤궁한 지경에 처하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리 민속경기라 할지라도 주변 환경 탓만을 하며 시장논리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씨름연맹이 뼈를 깎는 자성 속에 경기장 시설과 경기 방식 개선 등 관중에게 멋과 재미를 안겨주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하는 줄 압니다.

이 지면을 빌어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정부는 민속 경기인 씨름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정책적으로 지원해 '아름다운 민족 문화의 유산'으로 영원히 살아 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한가지 제언을 드립니다. 2005년 청계천 복원이 이루어지면 동대문운동장 재계발과 연계해 40년된 장충체육관도 낡은 시설을 헐어내고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참에 장충체육관을 민속경기의 상설공연장으로 만들어 외국 관광객도 유치하고 씨름의 전당으로 터전을 잡도록 정부가 앞장서서 해결해 주길 바랍니다.

기업들도 씨름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기업과 이미지가 안 맞는다' '인기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고개를 돌릴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팀 창단에 도움을 주기 바랍니다. 민속경기에 대한 무관심은 바로 민족에 대한 배신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홍 윤 표 민속씨름연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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