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충무로는 기분좋은 이변으로 가득했다. 완성도 높게 잘 만든 이른바 웰메이드(well-made) 영화, 퓨전 사극, 작가주의 영화 등의 다양한 실험으로 관객을 불러모았다. 관객과 평론가의 반응이 모처럼 일치한 해이기도 했다. 관객 수도 늘어나고, 해외 바이어의 수요가 들며 돈벌이 상황도 나아졌다.웰메이드, 퓨전의 개가
미제 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 가족 해체를 정면으로 다룬 '바람난 가족', 퓨전 사극 '스캔들', 패장 계백 장군을 그린 '황산벌', 근친상간이라는 금기를 소재로 끌어들인 '올드보이'는 흥행 영화로서는 전형적인 설정에서 벗어난 영화들이다. 모두 한국 관객들에게는 장르 법칙에서 벗어난 낯선 영화였다. 하지만 이들 영화는 모두 흥행에 성공하면서 관객의 입맛이 변했음을 증명했다. 인터넷 소설을 감각적 영상으로 옮긴 '동갑내기 과외하기' 말고는 대부분의 오락 영화가 흥행에서 기대에 못미친 성적을 거둔 것도 관객 입맛이 달라지고 있다는 증거다. 관객은 웰메이드와 퓨전, 파격과 새로움이라는 새로운 코드에 점수를 더 주었다.
해외에서 인정한 브랜드 파워
한국 영화의 해외 판권료가 급격히 오르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영화 수출 총액은 2,500만 달러에 육박했다. 2000년 700만 달러에 비해 3년 새 3.5배나 늘어난 수출 액수는 최근 2, 3년간 해외영화제 수상 등으로 한국 영화의 '브랜드 파워'가 생겼음을 입증하는 것. '살인의 추억'과 '튜브'가 각각 300만 달러, '올드보이'가 220만 달러 등 수출 단가가 크게 높아진 것은 더욱 반가운 일이다.
꾸준한 관객 증가
한국 영화 점유율은 48.7%(서울 기준·IM픽쳐스 집계)로 '꿈의 50%'를 넘지는 못했다. 하지만 영화를 즐기는 이들의 숫자는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관객 수는 지난해 4,098만명(서울 기준)에서 올해 4,307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5.1%가 증가했다. 전국 관객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억 명을 넘어선 데 이어 올해 1억 1,500만 명으로 지방 관객이 특히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블록버스터의 명암
외화 관객 동원 1∼4위는 '매트릭스2―리로디드'(147만 9,960명) '매트릭스3―레볼루션'(91만 6,300명) '터미네이터 3'(83만 6,500명) '반지의 제왕―두개의 탑'(83만 3,180명)으로 올해는 '속편'의 시대였다. 결국 외화 시장은 블록버스터가 중심이다.
반면 올해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는 또 다시 악몽의 연속이었다. '이중간첩'을 시작으로 '튜브' '청풍명월' '천년호'와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는 드라마의 한계와 상상력의 빈곤을 드러내며 흥행에서 참패를 맛보아야 했다.
배급 싸움 본격화
지난해 영화 투자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한 CJ엔터테인먼트는 올해 '동갑내기 과외하기' '살인의 추억' '스캔들' '위대한 유산' 등을 잇달아 흥행시켰고, '반지의 제왕' 완결편을 배급키로 하는 등 몸집 키우기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등으로 연초 저조하게 시작했던 시네마서비스는 하반기 '황산벌' '실미도'의 대박 행진으로 체면을 세웠다. 메가박스를 가진 쇼박스와 CGV극장을 가진 CJ엔터테인먼트가 '색즉시공'의 개봉과 관련, 신경전을 벌인 것은 향후 극장망을 가진 배급사들의 횡포가 더욱 거세질 것을 예고했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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