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12월26일 쿠바 소설가 겸 민속 음악학자 알레호 카르펜티에르가 아바나에서 태어났다. 1980년 파리에서 몰(沒). 카르펜티에르의 아버지는 프랑스계 건축가였고, 어머니는 러시아계였다. 그가 스페인어 외에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갖게 된 것도 아버지 덕분이다. 그러나 카르펜티에르의 글쓰기는 거의 스페인어로 이뤄졌다. 파리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아바나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그는 그 뒤 때로는 독재 정권의 탄압을 피해, 때로는 쿠바 외교관으로 파리에 머물렀다. 아바나와 파리 사이의 왕복이 카르펜티에르의 삶이 그린 궤적이었다. 파리에서 생의 끝머리에 이른 그의 유해는 대서양을 건너 아바나 혁명 광장에 안치되었다.유럽을 삶의 한 기반으로 삼았던 이 작가의 작품 세계는 그러나 온전히 쿠바적이었고, 라틴아메리카적이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한 특성이라 할 이 대륙의 '경이로운 현실(lo real maravillioso)'은 아바나에 정착하게 된 시골 출신 흑인 청년의 삶을 그린 초기작 '에쿠에-얌바-오'(1933)에서도 여실하다. 뒷날 작가는 자신의 초기 작품들이 쿠바 흑인들의 삶에 깊숙이 도달하지 못했다고 회상한 바 있지만, '주여, 축복 받으소서'라는 뜻의 아프리카 부족 언어에서 제목을 취했다는 '에쿠에-얌바-오'는 아프리카계 쿠바인들의 언어와 리듬을 넉넉히 차용하며 이들의 느낌과 생각 속으로 질주했다는 점에서 카르펜티에르의 쿠바적 정체성을 또렷이 드러낸 작품이다.
카르펜티에르 문학이 발을 담근 또 다른 장르는 '이 세상의 왕국'(1949), '계몽의 세기'(1962) 같은 역사 소설들이다. 카리브해 사람들의 삶을 프랑스 혁명에 연루시킨 이 소설들에서 작가는 자신이 '바로크적'이라고 부른 탈규범적·잡종적 문체에다 시적 이미지와 은유들을 점점이 박아놓고 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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