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불패.' 2003년 한국 사회는 또 하나의 신화에 절망했다. 최악의 장기 불황에도 치솟는 강남 지역 아파트 값을 보며 많은 이들이 절망해야 했다.강남은 모든 것의 기준이 됐다. 경제, 교육, 문화, 환경 등 각 분야에서 강남은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우리 사회의 바로미터가 됐다. 그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일부에서 '반(反) 강남' 정서가 표출되기도 했다. 강남식 생활과 문화, 강남의 코드에 접근할 수 없는 서민들은 로또 대박의 꿈에 매달렸다. 우리 사회에서 부(富)와 최첨단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강남공화국'은 그렇게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연초부터 강남구 대치동 일대 아파트를 중심으로 시작된 강남 집값 상승세는 놀라울 정도였다. 8학군이라는 이점과 발달한 사교육 환경, 잘 갖춰진 생활기반시설 등 지역적 프리미엄을 등에 업은 강남 집값 상승은 서울은 물론, 수도권, 충청권에도 영향을 미쳤다. 5월과 9월 두 차례 분양권 전매제한 등의 대책이 나왔지만 1주일에 1억원씩 오르는 상승세는 꺾일줄 몰랐다.
결국 토지공개념까지 들먹인 10·29 대책이 나온 뒤에야 강남 집값은 하락세를 보였다. 국세청이 4월 이후 6개월 동안의 전국 집값 인상분을 조사한 결과 기준시가가 1억원 이상 오른 가구 수는 전체의 10% 정도인 9만1,462가구였다. 이중 서울이 91%였고, 그 중 강남권이 90%를 차지했다.
강남구 도곡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강남이 살기 좋은 동네라는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강남불패 신화는 유지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 강남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감은 커져 갔다. 강남에서도 최고급 주거단지로 꼽히는 타워팰리스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왔고, "강남 사람들이 보기 싫다"며 강남 일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협박편지가 날아오기도 했다.
9월 이후에는 강남 일대에서 잇따라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납치, 살인과 날치기 사건이 발생했다. 급기야 치안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강남지역 경찰서에는 경찰관이 증원돼 특별방범활동까지 벌이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부의 격차에 절망한 서민들은 로또에 매달렸다. 5월 한 지방근무 경찰관이 1등에 당첨돼 407억원대의 상금을 받은 것을 비롯, 수십억원대의 당첨금을 받는 사람이 속출했다. 서민들에게 마지막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온 로또의 올 한해 판매액은 4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올해 박봉을 모아 강북 지역에 30평대 아파트를 산 회사원 김모(42)씨는 "같은 평형인데도 강남 아파트 가격은 내 집의 2배 이상"이라며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 내 아이를 강남에서 교육시키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양대 사회학과 김선웅 교수는 "빈부격차로 국민들의 박탈감이 커지는 가운데 일부 부자들이 청교도적 노력이 아닌 사기와 편법으로 부를 획득해 강남에 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적개심이 커지고 있다"며 "잘못은 고치고 갈등의 폭을 좁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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