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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12월, 종말이 아닌 작은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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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12월, 종말이 아닌 작은 영원

입력
2003.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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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2003년도 저물어 간다. 황혼의 빛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그리움과 아쉬움, 아픔과 슬픔이 짙게 묻어 있다. "미(美)는 우수(憂愁)와 함께 존재한다"는 존 키츠의 말처럼, 우리는 한 해가 가는 12월의 아름다움 속에서 내면으로 젖어드는 숭고한 아픔과 슬픔으로 얼룩진 아쉬움을 발견한다.12월의 저문 날 고향으로 가는 막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군상(群像)에는 물론 담배연기 자욱한 선술집에도 휴식을 위한 정지된 시간이 있지만, 거기에는 또한 상실과 후회, 낭만과 우수가 깃든 술잔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권태로운 감상의 눈물로 얼룩진 술잔이 아니라 내일을 다짐하는 아픔의 잔이다.

12월이 재생을 약속하는 '작은 영원'이 아닌, 단지 죽음을 의미하는 '종말의 시간'이라면, 12월의 풍경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12월의 아름다움은 미완성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속의 아픔인지도 모른다. 12월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해 1월로 이어지지 않는가. 12월의 거리에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롤과 교회 지붕 위의 별들이, 아름답고 슬픈 여운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것들이 종말을 의미하는 완성의 표상이 아니라 내일을 약속하는 미완성의 교향곡과도 같기 때문일 게다.

유형(流刑)의 길을 걷고 있는 인간은 운명적으로 절대적인 완성단계에는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기쁨 속에서도 슬픔을 느끼고, 또 그 슬픔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역설적이고 이원적인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인간적인 삶의 풍경은 이러한 운명 때문에 더더욱 아름답고 값지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시간의 빈터'이자 '작은 영원'인 12월의 세계가 종말에 대한 감상적인 슬픔으로만 보이지 않고, 고요한 어둠 속에서 스스로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촛불처럼 아름다운 빛을 보이는 것은, 그것이 결코 영원한 죽음 자체를 의미하지 않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어둠과 싸우는 비극적인 숭고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의 드라마가 지니는 아름다움은 시간의 흐름이 없는 영겁의 세계인 천국에는 없다. 그것은 다만 지상에 있는 순간적인 '작은 영원'과 그것을 발견하려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과 그것을 축하하는 찬란한 카니발에 있다. 12월의 풍경, 그것이 어둠 속에서도 그렇게 경건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영원한 종말을 거부하는 인간의식이 '작은 영원'인 12월의 빈터에서 그 조용한 빛을 발하기 때문이리라.

이 태 동 서강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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