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산업개발 대주주가 신주인수권을 포기하는 사이 미국계 템플턴자산운용이 지분을 매집해 최대주주로 올라서자 기업 경영권 방어를 제약하는 국내 규제에 대한 재계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실탄 없는 대주주, 펄펄 나는 외국인
현대산업개발은 22일 템플턴이 지분 17.34%를 확보해 대주주인 정몽규 회장(9.7%)과 정세영 명예회장 등 특수관계인(17.02%)을 제치고 최대주주로 올라서자 적잖이 난감해 하면서 템플턴의 투자 의도를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템플턴의 지분매집은 때마침 정몽규 회장이 시민단체의 압력등으로 신주인수권(BW)을 무상 소각해 13%에 달하는 지분을 포기한 직후 이뤄진 것이어서 회사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템플턴에 이어 미국계 캐피탈그룹까지 자회사 펀드 두 곳을 통해 각각 11.04%와 6.11% 등 모두 17.15%를 보유, 정 회장은 사실상 3대주주에 머물게 됐다.
최근 대주주가 BW를 소각한 효성의 경우도 캐피탈그룹이 7.89%를 확보하고 있고 외국인 지분율이 22%를 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당초 BW 발행 취지 자체가 취약한 지분구도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며 "그동안 논란이 됐던 대주주의 BW 문제를 정리함으로써 회사 이미지를 높이는 차원에서 소각했지만 결과적으로 외국인들만 좋은 일을 시킨 셈"이라고 말했다. 물론 경영권 방어를 위해 대주주가 시장에서 시가로 주식을 사들일 수 있지만 개인 대주주의 자금력이 취약한데다 투기적 매수와 주가 거품을 부추길 우려도 높아 사실상 어렵다.
출자총액 규제·의결권 제한 손발 묶어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삼성 SK 두산 KT 금호 등 6개 그룹은 출자총액제한제도에 걸려 소유중인 14개사 지분 2,008억원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포기했다.
상장사 가운데 SKC의 SK증권 지분(0.6%)과 두산건설의 (주)두산 지분(0.6%), 금호산업의 금호종금 지분(1.5%)과 금호석유화학의 금호산업지분(0.6%)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제한 받았다.
소버린과 경영권 다툼을 하고 있는 SK(주)의 경우 출자총액제한이 경영권 방어 여부의 최대 변수가 되고 있다. 현재 SK(주)는 소버린의 지분(14.99%) 취득으로 외국계 기업으로 분류돼 출자총액제한 규정을 적용 받지 않지만 소버린이 지분 가운데 일부를 국내 투자자에 넘길 경우 다시 출자총액제한을 받게 된다. 이 경우 SK그룹 계열사가 보유한 SK(주) 지분 7.6%의 의결권이 제한돼 주주총회 표대결 때 소버린이 유리하게 된다.
재계 "국내 역차별" 목청
최근 외국계 자본의 국내 금융권 지배와 기업 경영권 위협 사례가 늘어나자 전경련 등 재계는 출자총액 규제와 금융회사 의결권 제한 등 역차별 규제를 폐지해 달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경련은 "외국인 지분율이 국내 최대주주보다 높은 기업이 전체 상장사의 10%인 44개사에 달하고 고배당·경영진 교체 요구 등 기업 경영을 간섭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지만 마땅한 대응장치가 없다"며 "외국 자본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어 놓는 각종 역차별 규정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는 또 외국계의 국내 금융산업 지배를 막기 위해서는 산업자본의 금융업 영위를 원천적으로 제한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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