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디까지 갈까요?" 명색이 신문사 정치부장이라 그런지,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묻는 말이다. 망년회에서 모처럼 만난 친구는 물론이고, 우연한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도 으레 같은 질문을 던져온다. 물론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 관한 얘기다. 혹시 남이 모르는 정보라도 알까 해서 물어오는데, 내 대답은 한결같이 "모릅니다"이다. 언론인이 그렇게 말하면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고 하겠지만 정말 나도 모르겠다.그런데도 수사에 관련된 당사자 모두가 일을 더욱 혼미하게 만들고 있다. 수사의 주체인 검찰부터 그렇다. '법을 어긴 행위는 모두 수사하겠다'는 자세가 원칙이겠지만 모호하기 그지 없다. 대선자금 부분만 수사한다는 것인지, 또 불법자금을 제공한 기업도 5대 그룹 또는 10대 그룹으로 정한 것인지 등등 확실치 않다.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한나라당은 실제로는 전혀 그러는 것 같지 않고, 오히려 '편파수사'만을 되뇌며 사사건건 특별검사를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쪽도 가관인 것은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면서도 "나는 저쪽의 10분1도 안 썼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대통령이다.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 손'에 운명을 맡기고 그냥 이렇게 세월을 기다릴 수는 없다. 서로 자기의 이익만을 강변할 게 아니라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찾아 '싸움의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지금의 싸움은 끝 없이 이어질 것이고 결국에는 모두가 패자(敗者)가 될 것이 뻔하다. 어차피 정치권 전체의 잘못된 관행이었다면 어느 한쪽의 승리란 애당초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공통분모를 찾는 논의의 시작을 돕는 뜻에서 두 가지 사안을 제안한다.
우선 검찰이 수사의 한계와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지금처럼 대선자금을 수사한다고 해서는 당연히 형평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지난해 대선기간의 대부분 동안 한나라당쪽이 유리했었기에 그쪽으로 돈이 더 많이 쏠렸을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그러면 대선기간 이전에는, 그리고 대선이 끝난 다음의 상황은 어땠을까? 과거의 관행대로라면 힘이 있는 쪽으로 돈이 흘러갔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대선자금 수사'라고 하지 말고 '정치자금 수사'로 하는 게 맞다. 정치자금법의 공소시효(5년)가 지나지 않은, 바로 오늘 이 순간의 불법 정치자금까지 수사해 이회창씨를 포함해 관련자 모두에게 성역 없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자리에 연연하지 말 것을 진솔하게 권하고 싶다. 상대의 불의(不義)에 대항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떡밥'을 뿌렸다고 하지만 대통령은 이제 불법행위와 관련되어 있음을 인정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퇴임 후에는 형사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기소될 대통령'이라면 남은 임기동안 정상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기도 어렵다. 설사 국민으로부터 재신임을 받는다 해도 불법은 불법인 것이고,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검찰의 수사도, 정치권의 개혁도 미봉에 불과할 것이다.
"나도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는 본인의 약속을 실천할 때 비록 임기를 다하지 못한다 해도 노 대통령은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하지 못한 자기희생을 통해 우리 정치사에 개혁의 큰 획을 그을 수 있다. 항상 정의의 편에서 정치인생을 살아온 노 대통령의 위대한 용기를 기다려 본다.
신 재 민 정치부장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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