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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물과 백두산이 /"제발 돌아가게 해주시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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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물과 백두산이 /"제발 돌아가게 해주시라요"

입력
2003.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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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라는 소재는 적어도 코미디로는 좀처럼 제대로 소화되지 않았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등 액션이나 드라마가 북한을 다루며 오히려 한발 앞선 상상력을 보여 주었다면, '간첩 리철진' '남남북녀'는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신선한 웃음의 소재로서는 북한의 무게가 너무 컸다.'동해물과 백두산이'는 의외의 소득이다. 물론 엄밀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커트라인'을 간신히 넘은 코미디지만, 너그럽게 본다면 북한이라는 소재를 비교적 능란하게 다뤘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방인'인 두 북한 군인을 지극히 한국적 상황에 끼워 넣었기 때문이다. 여름 바다, 되바라진 여고생, 가출한 서장의 딸을 찾아 나선 어리숙한 형사, 조무래기 깡패 등 조폭 코미디류에 어울릴 법한 낯익은(동시에 상투적인) 캐릭터에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두 북한 군인을 끼워 넣고, 그 두 사람 사이에 다시 계급·성격 갈등을 배치함으로써 '상충'(相衝)에 의한 웃음을 간간히 자아낸다.

엘리트 장교인 최백두 함장(정준호)은 제대 말년 병사인 림동해(공형진)와 낚시에 나섰다가 표류한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피서객으로 들끓는 동해안 해수욕장. 돌아가는 것이 목표지만 일단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찾는 보급투쟁이 급하다. 좌충우돌 끝에 자수를 결심한 두 사람. 하지만 파출소를 찾아갔다가 가출한 경찰서장 딸 한나라(류현경)을 데리러 온 형사들로 오해 받아 '비행 소녀'와 동행하게 된다.

원칙주의자인 최백두와 남한 문물에 호기심이 많은 림동해의 캐릭터 대비는 간이 적당하다. 고전적 이미지의 정준호로부터 무리한 코미디를 끌어내지 않았고 애드립이 강한 공형진의 연기가 '오버'하지 않도록 제어했다. 연기 강약을 적절히 조절한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폼잡은 장면을 코믹한 장면으로 마무리하는 방법도 새롭진 않지만 영리하다. 이를테면 송림 보호 구역에서 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들며 최백두가 "혁명 정신으로 무장하면 못할 일이 없다"고 혁명 정신을 운운하자, 림동해는 이렇게 내뱉는다. "거짓말이야요."

철없는 소녀의 외로움을 알게 된 백두가 반디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예쁜 장면을 보여준 후 바로 다음 장면에서 반디가 날아오르게 하기 위해 동해가 숨을 헐떡이며 갈대밭을 휘젓는 모습을 보여주어 자칫 상투적 감상으로 흐를 수 있는 영화를 웃음으로 살짝 덮는다. 해수욕장 깡패가 화를 내는 여고생에게 내뱉는 "캐릭터 있네" 같은 유머러스한 말투도 코미디의 미덕을 증폭한다.

자극적 유머에 대한 강박을 버리지 못한 것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양손에 수갑을 찬 피의자가 제 때에 화장실에 가지 못해 결국 큰일을 보고 그 배출물이 팬티로 흘러나오는 장면을 카메라가 일일이 보여주는 것이나, 또 다시 용변 보는 장면을 비추는 것 역시 이런 강박에서 비롯한 어설픈 설정이다. 물론 가벼움으로 치달은 영화에서 남북한의 단절에 따른 깊은 페이소스를 찾는 것은 허망한 욕심이다.

지루하고 민망한 코미디를 만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게 된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우리나라에서 북한 관련 코미디가 아직 설 자리가 매우 좁다는 점을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두 주인공이 '금강산 여행권'을 받아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해 참가한 '노래자랑' 코너에 사회자 송해씨가 출연했고, 김원희, 이재룡, 오지혜 등 특별출연 명단이 화려하다. 연출은 '오버 더 레인보우'의 안진우 감독. 15세 관람가. 31일 개봉.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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