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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老鋪]<14> 인천 신일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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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老鋪]<14> 인천 신일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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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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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흐리고 간간이 비가 뿌리는 날엔 자장면이(이하 짜장) 먹고 싶다. 언젠가 연대에서 청도로 가던 길 중간 식당에서 우린 산동성 炸醬麵을 발견하고 원조 짜장이다 환호하면서 짜장을 시켰다. 그러나 일행중 누구도 기름에 볶은 누런 날 된장 그 짜장을 첫 젓갈에 포기했다. (중략) 분식 장려 시대 짜장면 한 그릇을 사주고 기염을 토하던 家長들이 하나 둘이었는지 너는 모르지….' (김용범의 '짜장면에 대한 선언'중에서)60, 70년대 유년시절을 보낸 이들은 자장면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산다. 외식하는 날 자장면은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는 먹거리였다.

그릇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먹다가 가끔 고개를 들고 까맣게 물들인 입을 열며 함박웃음을 짓던 아이들, 그리 많지도 않은 국수를 자녀들에게 덜어주는 엄마, 모처럼 근엄한 표정을 풀고 흐뭇하게 웃는 아빠의 모습…. 표준어 자장면보다 짜장면이 더 친숙하던 시절, 그런 풍경은 행복의 상징이었다.

신일반점(新一飯店)은 겉 모습부터 그런 정경을 떠올리게 한다.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중 하나다. 북성동 차이나타운에서 벗어나 중구 신흥동 로터리 옛 인천시립병원 부근에 반세기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집의 단골손님에겐 버릇이 있다. 들어오자마자 주방에 먼저 눈길을 던진다. 주방 창 너머로 '할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아예 주방으로 들어가 눈도장을 찍는 손님도 적지 않다. 그 답례는 푸짐한 음식으로 돌아온다.

중국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가 고향인 임서약(林書若·73)옹, 3대째 이어온 신일반점의 실질적 창업자다. 어쩌다 임옹이 주방을 비우기라도 하는 날이면 손님들은 푸념 아닌 푸념을 한다. "어째 오늘은 맛이 덜 한 것 같아."

임옹의 기억에 따르면 신일반점의 상호를 내걸고 음식장사를 시작한 해는 50년께. "가게 이름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의논해서 정했다고 합니다. 신흥동에서 제일 맛 좋은 음식점이 되자는 소망이 깃든 이름이랍니다."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임옹을 대신해 아들 헌일(憲一·52)씨가 설명한다. 그 소망은 이미 오래 전에 이뤄졌다. 맛의 마법사 임옹 스스로 꼽는 메뉴는 해물, 특히 해삼요리다. 해삼을 갈라 그 안에 다진 새우를 넣고 튀긴 다음 양념과 소스를 얹어 쪄내는 소양해삼은 특미중 특미다. 알맞게 삶은 삼겹살을 접시 바닥에 편 다음 그 위에 해삼탕을 부어내는 해삼쥬스도 손님들이 즐겨 든다.

"우리가 해삼요리를 해달라고 조르면 난리가 납니다. 자장면이나 먹으라고 호통을 치십니다.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손님을 먼저 생각하시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곤 합니다." 대전대 한의학과 본과 3년인 손녀 국순(國順·24)씨는 할아버지의 손님사랑을 에둘러 표현한다. "예컨대 오이 값이 오를 경우 식구들이 하나라도 먹으면 야단을 치십니다. 하지만 손님 덕분에 우리 가족이 이 만큼이라도 살아가고 있다는 아버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서운한 감정은 눈 녹듯 살아집니다. " 며느리 왕윤청(王潤靑·47)씨도 시아버지 자랑에 끼어 든다.

그러면 손자와 손녀가 좋아하는 요리는 무엇일까. "할아버지의 탕수육은 세계 최고일 겁니다. 탕수육은 어릴 적에 아플 때나 해주시던 별식이었죠." (손녀 국순씨) "저는 전가복(全家福)이 제일 먹고 싶습니다. 잡탕의 일종인데 해물을 집대성한 요리죠." 동생과 마찬가지로 한의학을 전공하는 국경(國慶·25·제천 세명대 한의학과 본과 4년)씨의 입맛은 다르다.

신일반점엔 별난 전통이 있다. 워낙 오랜 단골이 많다 보니 임옹이 입맛을 두루 꿰뚫고 있는 것이다. 별도의 주문이 없으면 알아서 척척 내놓는다. 20년 넘게 비법을 전수해준, 그래서 아들이나 다름 없는 주방장(심광섭·41)에게 많은 부분을 맡기고 있지만 맛의 관리는 여전히 임옹의 몫이다.

신일반점의 뿌리는 임옹의 부친(임극관·林克寬)이 하던 호떡집이었다. 그 시절까지 포함하면 역사는 더욱 길어진다. 임옹은 16세 때 낯선 땅 인천에 첫 발을 내디뎠고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광주의 음식재료상에 취직한다. 구례의 중국집에 자주 물건을 배달하러 다니다가 그 집의 딸(왕수진· 王秀珍)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임옹을 믿음직하게 보았던 장래의 처가집에서는 그에게 요리를 가르쳤다.

지난 4월 70세로 세상을 떠난 임옹의 부인은 가게운영을 책임졌다. "출상을 하고 난 뒤 손님들로부터 알리지 않았다고 야단을 많이 맞았습니다. 어머니가 정말 손님을 가족처럼 여겼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생각한 헌일씨는 요리를 배우려고 무척 노력했다. 하지만 재주가 없어 늘 야단만 맞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신사동 할아버지'로 통하는 80대의 단골손님이 있다. 삼선울면과 자장면을 먹기 위해 10년 가까이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매주 2, 3번 찾아왔다. 신일반점 식구들은 얼마 전부터 건강이 나빠져 발길을 멈추게 된 그 손님을 무척 기다리고 있다.

며칠전의 일이다. "영감님, 나 모르겠소. 40여년 만에 왔다고. 나는 영감님을 알아." 한 할아버지는 아들과 자장면을 시켜먹고 난 뒤 임옹을 만난 기쁨을 그렇게 표현했다.

'손님을 속이는 짓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임옹의 신념이다. 손님들도 그런 마음을 잘 안다. 그래서 임옹이 언제까지나 주방을 지켜주길 바라는 것이다.

이기창 편집위원 lkc@hk.co.kr

도움말 김용범(소설가)

■"자장면의 고향"은 인천

'자장면의 고향은 인천이다.' 인천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자장면은 인천이 원조'라고 소개돼 있다. 조금 과장하면 중국에는 자장면이 없다. 자장면과 형제뻘인 음식(차오장 ·炒醬麵)이 있을 뿐이다. 자장면은 한국형 중국음식이다.

하인천역에서 언덕을 오르면 북성동 차이나타운이 나타난다. 일명 청관거리다. 인천이 개항되기 전 해인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는 40여명의 군역상인을 동반한 군대를 파견한다. 공식적으로 청나라 상인이 이 땅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이듬해 조약이 체결되면서 청국지계가 설정되고 인천공원(옛 자유공원) 인근 북성동 일대 5,000여평 부지에 화교거주지가 형성된다. 이 곳을 청관거리, 그들의 고급음식을 청요리라고 했다. 이 무렵 산둥반도에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거 인천에 몰려왔다. 그들은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벼 야식으로 먹었다.

인천에서 처음으로 자장면의 이름을 내걸고 영업을 시작한 음식점은 1905년 개업한 공화춘이다. 지금은 문을 닫아 자취만 남아 있지만 청관거리 중국집들은 대개 공화춘 출신 주방장들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공화춘의 번창에 힘입어 화교들은 잇달아 음식점을 개업, 인천은 청요리의 본산으로 자리잡는다.

자장은 작장(炸醬)에서 유래한다. 작장은 장을 볶았다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춘장으로 부르는 새카만 자장은 산둥지방에서 전통적으로 만들어온 밀가루장(면장)이다. 밀가루와 콩으로 메주를 쑨 뒤 소금물을 붓고 햇볕에 쬐어 말리는 밀가루장은 우리나라의 된장과 간장을 담그는 방식과 비슷하다. 날 밀가루장은 다소 씁쓸하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기름에 볶아 먹는다. 자장면이 본격적인 서민의 먹거리로 자리 잡은 시기는 외식의 개념이 생겨난 60년대. 자장면은 라면 비빔밥과 더불어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요리전문가들에 의해 선정되기도 했다. 통계에 따르면 자장면의 하루 소비량은 800만 그릇에 달한다. 그만큼 국민의 폭 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음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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