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제법전공 교수의 신문 기고를 읽다가 실소했다. 글 제목은 '후세인 전범재판과 정당성'이었지만 사안의 본질에 관한 진지한 법적 고찰은 없이 공정한 재판을 하고 유엔 안보리 추인을 받으라는 등의 원론적 권고를 되풀이했다. 이어 후세인 단죄가 이라크 민주화와 재건의 계기가 된다면 미국의 무력개입도 정당성을 얻을 것이라면서 갑자기 파병을 언급,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더 이상 눈치보지 말고 파병을 서두를 것을 촉구했다. 전문적 식견으로 일반의 안목을 넓혀주어야 할 학자의 본분과는 동떨어지게 파병의 당위성을 강변한 결론부분이 특히 우스웠다.■ 후세인 생포의 센세이션이 진정되면서 서구의 국제법 전문가들은 후세인 처벌의 법적 딜레마를 진지하게 논란하고 있다. 그 핵심은 그를 사형시켜야 옳은지 여부가 아니다. 미국이 후세인 단죄를 주관하는 것이 정당한지, 국제적으로 공인된 재판에 넘기는 데는 어떤 장애가 있는지 등의 본질적 문제를 따지고 있다. 이런 안목에서는 후세인 단죄에 적합한 법정은 유엔 안보리가 설치하는 전범재판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 점령의 정당성이 논란될 것을 꺼려 국제법의 개입을 바라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라크 국민에게 과거청산을 맡기는 게 옳다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 그러나 미국의 의도대로 이라크 과도정부가 후세인 처벌을 주관하는 것도 합법성과 정당성이 문제된다. 과도정부는 후세인 체포 사흘 전 반인권범죄 등을 다룰 특별법원 설치근거를 마련했지만, 미국이 지명한 과도정부가 정통성이 없는 상태에서 후세인을 단죄할 권한이 있는지가 의심되는 것이다. 과도정부를 내세워 단행하는 후세인 단죄는 결국 미국이 조종하는 꼭두각시 놀음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이미 나온다. 미국이 후세인을 전쟁포로로 간주한다면 군법회의에 넘기든 독자처리하는 게 논리에 맞겠지만, 이는 이슬람권의 분노를 불러 후세인을 순교자로 만들 것이기에 처음부터 대안이 못 된다.
■ 부시 대통령은 국제 지도자의 금도(襟度)마저 깨고 후세인을 사형시켜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사법절차에 관해서는 이라크인의 주도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틀을 마련하겠다고 두루뭉술하게 밝혔다. 그 배경은 바로 이런 법적·도덕적 딜레마이고, 사형의 당위성 논란을 촉발한 것도 관심을 돌리려는 계산으로 분석된다. 후세인의 죄상은 추궁되고 단죄돼야 한다. 그러나 미국과 후세인에 대한 정서적 공감이나 전략적 이해와, 국제 문제의 본질을 천착하는 과제는 구분해야 한다. 국익을 위해서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제대로 아는 것이 기본이다. 그게 친미·반미를 가르는 것보다 중요하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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