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는 모든 대중매체가 융화된다고 말하는데, 사실은 모든 매체가 방송화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신문과 책, 잡지도 이제는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는 기능이 첨가된 입체적 매체로 거듭나면서 방송의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방송환경의 이러한 급변으로 인해 기존의 언론법제나 법리만으로는 새로운 매체환경에 능동·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주장이 본격 대두되고 있다.그러나 지난달부터 우리나라에서 본격화하고 있는 방송법개정 논의는 이러한 방송환경의 변화와 시대 흐름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또다시 관련기관과 이익단체 간의 의견대립으로 문제의 본질을 간과하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제정단계에서부터 졸속으로 처리된 현행 방송법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정계와 언론계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KBS 수신료' 문제를 순수하게 법리적인 측면에서만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KBS는 진정한 공영방송인가. 방송법 규정으로만 본다면 KBS는 이념상 공영방송이라고 할 수 있지만(제44조), 재원 조달 측면에서 볼 때는 상업적 공영방송이라고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광고수입이 60%를 넘나들고, 정작 수신료 수입은 40%를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수신료의 법적 성격은 무엇인가. 방송법상 수신료는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TV수상기 소유자에게 일괄징수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제64조) '조세'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헌법재판소는 1999년 KBS 수신료의 성격을 특별부담금이라고 규정하였다. 이처럼 조세가 아닌 특별부담금이라고 한다면 수신료의 결정 및 징수방법은 처음부터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셋째, 조세도 아닌 특별부담금으로서의 수신료를 무슨 근거로 전기료에 통합고지해 징수하는가. 수신료 징수대가가 최고 15%나 되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한국전력공사법 제13조가 규정하는 한전의 업무수탁근거에도 수신료징수는 명백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넷째, 이렇게 수신료징수 위탁의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마당에 수신료를 내지 않는다고 단전조치를 하고 국세체납처분의 예에 따라 강제징수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이는 한 마디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으로서 위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수신료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첫째, KBS가 광고비중을 낮추고 수신료를 현실화해야 한다. 물론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상태에서 수신료를 현실화하는 것에 대한 국민의 반대가 많겠지만,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높인다는 전제 하에 현재 일률적으로 부과되고 있는 수신료를 차등부과한다면 국민도 수긍할 것이다. 천만 원을 호가하는 홈시어터로 TV를 시청하는 사람과 이삼십만 원짜리 수상기 앞에서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정보를 얻는 사람이 동일한 수신료를 내야 한다면, 그것은 사회국가원리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수신료의 결정방식을 바꿔야 한다. 금액 결정방법을 방송법에서 구체적으로 명시해 국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든지, 아니면 매년 국회가 직접 심의·확정하도록 하여야 한다. 셋째, 공영방송이 부담하는 공적 책무에 비추어 장애인과 저소득노인·농어촌지역주민 등 소외계층과 소수의 이익을 위해 수신료 면제범위를 확대하여야 한다. 넷째, 수신료 체납을 이유로 한 단전조치는 하루빨리 폐지되어야 한다. 다섯째, 시청자대표가 KBS 경영평가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시청자주권은 립서비스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여섯째,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어 있는 수신료 징수수수료를 줄이고, 징수방법도 개선하여야 한다.
근본적 문제점에 대한 이해 없이 이익단체들의 집단논리에 머물고 있는 방송법의 개정논의가 하루빨리 정상궤도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박 선 영 가톨릭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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