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지난 시간을 반성하고 새로운 결심을 하는 그런 시간을 가져야 옳은데, 오히려 경황이 더욱 없습니다. 한해 동안의 연구결과를 정리하고 이를 수행하느라 쓴 예산까지 챙겨야하는 등 올해 안에 마무리해야할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게다가 1년에 한번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연락은 왜 이리 많은지, 매번 고민하게 됩니다. 과연 일로만 보면 올해를 마감할 수 있을 지가 의문입니다. 요즘 같아선 손오공처럼 털을 뽑아서 분신이라도 몇 개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저 황당무계한 생각만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복제양이 탄생하고, 아이를 복제를 통해 얻는다는 일로 한동안 전세계가 시끄러웠으니까요.
식물도 복제를 합니다. 간혹 선인장을 보면 새끼 선인장이 붙어 자라기 시작하고 이를 떼어 심으면 또 다른 개체의 선인장을 얻을 수 있는 경험을 누구나 해보셨지요. 개나리 가지를 잘라 꽂으면 뿌리가 내려 새로운 개나리가 되고, 특히 돌나물이나 바위솔 같은 다육식물들은 아무 부위나 그냥 툭 잘라서 던져두고 흙을 덮어도 이내 새로운 생명이 올라오지요. 이런 모든 일들을 식물의 자기 복제라고 말해도 됩니다.
한 개체가 여러 개의 식물로 늘어난다는 점에서 씨앗을 뿌려 증식하는 것과 같지만 이 두 가지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전자는 손오공처럼 유전적인 정보가 똑같은 그야말로 복제를 말하는 것이고 씨앗을 통한 후자는 유전적인 정보나 비슷하지만 다른 후손, 그러니까 손오공이 어떤 누구와 결혼하여 이들을 골고루 닮은 자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식물은 (동물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그 과정이 복잡하고 힘겨워도 다양한 세상에 다양한 모습으로 적응하며 자손 만대를 살아가기 위해 유전적으로 다양성이 높은 방식을 택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피치 못할 상황이 되면 복제를 시도하기도 하지요.
요즘 안에서 간혹 만나는 처녀치마도 그렇습니다. 처녀치마는 보랏빛 꽃들이 모여 아래를 보고 모여 피어 전체적으로 보면 꼭 여자가 입는 치마와 같습니다. 그것도 젊은 아가씨가 입는 짧은 치마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대학 다닐 때 은사님께서 이 식물은 남학생들이 절대로 아래서 바라보면 안된다고 농담을 하곤 하셨지요.
처녀치마는 이른 봄에 피어나는 대표적인 봄꽃이지만 요즘 눈에 뜨이는 것은 이 잎이 반쯤은 상록성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풀들이 누렇게 마르거나 아예 지상에서 흔적을 없애버리는 반면 이 식물은 겨울에도 비록 생생하지는 않아도 푸릇푸릇 누릇누릇한 잎새들을 지상에 남겨둡니다. 산에 가면 사면에 길고 넙적한 잎들이방석처럼 모여있는 것을 지금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처녀치마가 매년 새 잎을 내고 씨앗도 잘 맺으며 멀쩡히 자라다가 죽을 때가 되면 일부 잎의 끝이 땅에 닿아 고정되고 그 곳에서 새로운 새끼 처녀치마를 만들어 놓습니다. 물론 복제입니다. 그러고 나면 모체가 되는 처녀치마는 말라죽게 되고 그 자리를 복제 2세대들이 차지하게 됩니다. 씨앗으로 확보되지 않은 불확실성에 대한 안전장치일까요? 봄이 오기시작하면 산행 길에서 이런 새끼 처녀치마 찾는 재미도 한번 시도해볼만 할 듯합니다.
분명 이 처녀치마들은 지금쯤 미리 대비하지 않아 허둥대는 우리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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