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책과 혁명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책과 혁명

입력
2003.12.20 00:00
0 0

로버트 단턴 지음·주명철 옮김 길 발행·2만8,000원

베스트셀러를 한 시대의 거울에 견주기도 한다. 한 시대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는 물론, 전체적인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과 시대, 책과 사회의 관계에서 책은 늘 일종의 종속변수이기만 할까?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이 자신의 오랜 학문적 역정을 통해 유지해 온 전제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책은 역사를 기록할 뿐 아니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책이 역사를 어떻게 만드는지, 그 과정을 살펴 영향 관계를 밝히기란 쉽지 않다. 단턴은 뇌샤텔 출판사 문서보관소에서 잠자고 있던 편지 5만 통과 장부책을 25년에 걸쳐 연구했다. 18세기 프랑스 전체 도서 거래량을 재구성해내기 충분한 그 자료는 '불법 서적'의 주문과 판매량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단턴은 금압의 대상이 되는 책이지만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읽힌 책, 요컨대 '금서 베스트 셀러'와 프랑스 혁명의 관계에 주목한다.

혁명 직전 가장 잘 팔리던 베스트셀러 '뒤바리 백작 부인에 관한 일화'는 루이15세의 연인 뒤바리 부인의 일대기 형식이지만, 당대의 역사이며 중상비방문이자 파렴치한 추문이기도 하다. 뒤바리는 기성 정치체제의 본질을 보여주기 위한 거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름 모를 저자는 자기가 '낮은 신분 때문에 궁정과 그곳의 영화에 접근하는 길을 빼앗긴 채 한숨을 내쉴 소박한 시민들'을 위하여 글을 쓰고 있노라고 말한다.

이렇듯 금서 가운데 상당수는 기성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실상의 정치적 주장을 담고 있다. 1770년대 루이15세 치세 말부터 쏟아져 나온 정치적 중상비방문, 즉 '거물급으로 불리는 공인들의 명예를 공격하는 욕설'을 예로 들 수 있다. 중상비방문은 여론을 반영함과 동시에 여론을 형성한다. '현실 그 자체를 빚어내고 사건의 진행과정을 결정하는 데 이바지'했던 것이다.

물론 단턴 자신도 책과 프랑스 혁명의 영향 관계를 설정하는 데 무척 조심스럽다. 바스티유를 휩쓸어버린 그 누구도 금서를 읽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적 경험과 혁명적 행동에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대신, 두 가지가 일치하지 않는 점이 무엇인지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명실상부한 '책의 역사가' 단턴은 프린스턴대 역사학과 교수로, 같은 학과 소속인 앤서니 그래프턴과 함께 '책과 미디어 연구센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고급 교양서 및 학술서 번역에서 이상적인 번역자는 저자와 비슷한 지적, 학문적 역량을 갖춘 사람이다. 저자 단턴과 원서는 바로 그런 번역자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그 행운이 번역서를 읽는 독자의 몫이기도 함은 물론이다.

이 책은 단턴의 다른 역작 '고양이 대학살'(조한욱 옮김·문학과지성사·1996)과 번역자 주명철 한국교원대 교수의 '바스티유의 금서'(문학과지성사·1990), 그리고 이중연의 '책의 운명'(혜안·2001년) 사이에 꽂아둘 만하다.

/표정훈·출판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