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피난민과 굶어죽는 사람들을 위한 구호에 반 평생을 바친 이가 대한적십자사의 수장이 됐다.19일 대한적십자사 23대 총재로 선출된 이윤구(74) 인제대 총장은 "내가 해온 일이 피난민 구호와 자원봉사였기 때문에 중책을 맡게 되지 않았나 싶다"며 "정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적십자사를 이끌게 돼 걱정부터 앞선다"고 말을 꺼냈다.
평남 평양 신양리가 고향인 이 신임총재는 남북화해와 교류활성화를 적십자사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는 "남북한 이산가족이 며칠동안 만나 울고불고하다 헤어지는 가슴 아픈 상봉은 더 이상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더 많은 이산가족들이 더 자주, 긴 시간 상봉을 할 수 있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신임총장은 특히 "우리나라의 시군과 북한의 시군이 자매결연을 맺어 남북교류를 활성화하는 일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 평생을 피난민 구호와 굶주리는 어린이의 권익을 위해 힘쓴 그는 어느 누구보다 대한적십자사를 이끌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신임총재가 피난민 구제와 이웃봉사에 평생을 바치게 된 계기는 20대 초반에 경험한 한국전쟁이다. 유엔군 공병단 문관으로 참전했던 이 신임총재는 동족상잔의 참화 속에 '전쟁은 죄악'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됐다. 그는 이때 "전쟁이 없어지는 일이라면 내 몸을 던지겠다"고 결심, 피난민 구제에 힘을 쏟게 됐다.
1950년대 피난민들과 함께 전남 해남 일대의 바다를 막는 간척사업을 벌여 2년 만에 벼농사를 지은 것도 그의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한국인 최초의 퀘이커교도이기도 한 이 신임총재에게 평화와 봉사는 종교적 신념인 동시에 행동철학이 됐다.
60년대 초 기독교세계봉사회 총무를 맡아 세계기독교협의회와 인연을 맺으면서 해외 자원봉사의 기회를 갖게 된 이 신임총장은 아랍지역 피난민 구호사업에 나섰다.
이 신임총재는 65년부터 5년간 두 차례나 중동전쟁을 겪으면서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지역에서 헐벗은 난민들에 대한 구호와 재건사업 활동을 벌였다. 또 73년부터 9년여 간 유엔아동기금 이집트, 인도, 방글라데시 대표를 맡아 굶주리는 아동의 보호에 힘쓰기도 했다.
그는 80년대 후반부터 한국일보사가 소외 이웃과 소년소녀가장,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해 기독교계와 함께 대대적으로 펼친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에도 큰 역할을 했다,
이 신임총재는 국내에 들어온 뒤에도 95년 국제선명회(월드비전) 회장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북한에 의약품 등 물자를 보내는 구호사업을 벌였고 이 일을 계기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를 만드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
대한적십자사 사업 중 비중이 큰 혈액사업이 부실관리로 비판을 받고 있는데 대해 이 신임총재는 "바깥에서 볼 때도 마음이 아팠다"며 "자세히 들여다보고 문제점을 고쳐 완벽을 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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