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잔~ 즐겁게 속을 준비되셨습니까학교 축제 때 제가 드디어 마술을 선보였어요. 친구들 앞에서 처음 서는 무대라 무척 떨렸지요.
조명을 어둡게 하고 배경음악으로 매트릭스OST를 깔았죠. 조금 뒤 아무것도 없는 제 손에서 작은 불빛이 반짝 반짝 빛나기 시작했죠. 마치 반딧불이 제 손 안에서 뛰어다니는 것처럼, 귀여운 불빛들이 춤을 췄어요.
친구들 입에선 '우와'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어요. 얼굴이 빨개졌지만 저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 다음엔 카드 마술이었죠. 아무것도 없는 제 손에서 불쑥 카드가 나왔다, 다시 사라졌다 했죠.
“우와 멋지다.” 또다시 환호성이 울려퍼졌어요. 어떻게 하는거야? 어디서 배웠니? 아이들이 몰려들었죠. 기분이 끝내줬어요.
그런데 아니, 그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여자애도 있는 거예요. 그 아이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었어요. 말 한마디 못 붙여봤던 그 애가 드디어 저에게 관심을 가진 거라구요.
제가 쓴 마술이야 도구나 손기술을 이용한 것이지만 그걸로 그 애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면, 그게 바로 마술 같은 일이죠. 제 마술이 마법의 주문처럼, 그 애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요? 이제 그 애만을 위한 무대 위에서, 마치 꿈꾸는 사람처럼 제 마음을 마술에 담아 보여줄 거예요. 아무 것도 없는 제 손에선 그 애를 위한 장미 열 송이가 피어 오를 거예요.
마술, 그 신비로운 마력이 우리 마음에 작은 불꽃을 일으켜 꿈과 동화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 거라고 믿어요. 여러분도 같이 가실래요? 마술이 펼쳐내는 저 신비의 세계로. 참, 연말에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우리를 찾아올 산타클로스도 초청해야겠죠?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나의 개인기는 마술
홍대 부근의 알렉산더 매직바. 여느 바와 다를 바 없는 분위기지만, 바텐더가 남다르다. 그의 손에서 공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눈코뜰새 없이 움직인다. 그 뿐인가. 손님이 찍어둔 카드가 분명 그의 손에서 뒤섞였지만, 정확히 카드를 알아맞힌다. 마술 공연이 펼쳐지는 마술 카페다. 회사원 김영지(24)씨는 "바로 내 눈앞에서펼쳐지는 마술이 TV로 볼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 든다"며 말 했다.
마술을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여성 마술사 오은영씨가 운영하는 강남의 바그다드매직 학원. 마술사의 지도에 따라 마술을 배우는 학생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난다. 아무 것도 없는 모자에서 꽃다발이 튀어나오는 장면을 연습하며 연신 웃음꽃을 터뜨린다. 마술을 배운지 이제 4개월이 된 허윤지(11)양은 "마술 덕분에 학교에서 유명해졌고 친구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며 웃었다.
이 학원의 이내형 실장은 "불과 몇년 전만해도 마술이 찬밥신세였지만, 지금 초중고생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며 "수강생들이 나날이 늘어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어린이에서 젊은이까지 마술 열풍이 거세다. 주문에라도 걸린 듯이 마술 극장, 마술콘서트나 마술학원으로 몰리고 있다. 각종 포탈 사이트엔 이미 수백개의 동호인 카페가 있고, 이은결의 매직월드(cafe.daum.net/leeeunkyeul), 마법학교(cafe.daum.net/magicschool) 등은 회원수가 15만명을 넘었다. 또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는 마술도구 하나씩은 필수 품목이 됐다. 마술계는 국내 마술 동호인들이 3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한다.
명절날 가끔씩 TV에서만 볼 수 있었던 마술이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데는 개인기 시대와 인터넷 덕을 톡톡히 봤다. 남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장기를 갖추는 게 미덕인 시대에 마술 만한 게 있을까. 매직 스페이스의 서기원 마술사는 "간단한 마술은 몇분 만에도 배워서 써먹을 수 있고, 분위기를 잡는데 마술 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말했다.
마술 해법을 공개하는 것은 마술계의 금기사항. 하지만 해법 비디오 등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된 것이 오히려 호기심을 촉발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내형 실장은 "예전엔 마술 비법을 너무 꽁꽁 숨겨 대중화에 걸림돌이 됐다"며 "고급 마술의 비밀은 지켜야겠지만 간단한 생활마술의 공개는 마술을 대중화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은결, 최현우, 오은영 등 신세대 마술사들의 등장으로 마술의 이미지가 깔끔하고 세련되게 변화한 것도 큰 몫을 차지했다.
한때 밤 무대의 오락거리나 서커스의 유희로 전전해야 했던 마술. 그러나 이젠 정식으로 마술학과까지 탄생했다. 동아인재대학이 국내에선 처음으로 오은영, 최훈, 고선희, 이은결 등을 교수진으로 하는 마술학과를 신설하고 올해 말부터 신입생을 모집중이다. 또 알렉산더 매직패밀리팀이 마술과 연극이 어우러진 '마술춘향전'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고, 바그다드매직 마술팀이 마술과 뮤지컬이 어우러진 공연을 준비하는 등 마술은 이젠 독자적인 공연예술로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보고 배울수 있는곳
연말연시는 마술사들의 대목이다. 신세대 마술계의 선두주자인 이은결이 20일부터 내년 1월4일까지 코엑스 그랜드 컨퍼런스룸에서 ‘매직 콘서트’를 개최한다. (02)3433-1760. 또 27, 28일 이틀간 경기 의정부시 신흥대 대강당에서는 여성마술사 오은영과 우비삼남매 등 개그맨이 함께 공연하는 ‘마술이 있는 개그콘서트’가 열린다. (02)567-4142.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 롯데백화점 인근에 문을 연 마술전용극장 매직리더스에서도 첫 작품인 매직콘서트 ‘겨울’이 공연되고 있다. (02) 2068-0735. 1월말까지 공연될 겨울은 마술에 연극적 스토리를 가미한 작품이다.
콘서트 외에도 매직바나 마술극장에서 마술을 접할 수 있다. 홍대 부근의 알렉산더 매직바(333-3505), 대학로의 매직바인 마술램프(743-3422), 롯데월드 마술레스토랑 아이언불(411-3584), 롯데월드의 마술전용극장(411-4369) 등에서 식사나 간단한 음료와 함께 마술을 즐길 수 있다.
마술학원과 매직샵
마술학원이 대부분 매직샵을 같이 운영한다. 학원비는 대개 한달 8회 교육과정에 25만원대. 마술도구는 품질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초등학생용 세트는 4~5만원대에서 20만원대까지 다양하다.
홍대 부근의 알렉산더 매직패밀리(333-3505), 신촌의 매직스페이스(338-6773), 강남구 역삼동의 바그다드매직(567-4142), 송파구 방이동의 비즈매직(3433-1755) 등이 있다.
■마술의 역사
기원 전 5000년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처음 기록이 등장하는 마술은 문명의 시작과 함께 해왔다고 할 만큼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주술적인 마법과 한몸살이를 하면서 누명을 쓰기도 했으며, 또 스스로를 기만하기도 했다. 고대 페르시아의 사제 계급인 마기(magi)에서 유래한 영어 magic도 마술과 마법, 두 가지 뜻으로 혼용된다. 최근에는 마술을 마법과 구별하기 위해 conjuring, trick, illus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대나 중세시대에 마법은 종교, 과학, 철학 등이 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교차로였다. 점성술, 연금술, 강신술, 주술 등의 마법은 기독교 신앙과 천문학, 화학, 의학 등이 뒤섞여 있었다. 각종 정령을 불러내는 악마적 마법은 중세 이래 금지됐지만, 초자연적 힘을 다루는 자연적 마법은 중세 과학의 한 영역이었다.
심각한 마법에 비해 마술은 유치하면서 가벼웠다. 대중의 기분전환거리나 오락으로서 길거리 뿐 아니라 궁정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미천한 계급의 광대들이 길거리에서 벌이는 손재주였고, 달리 말하면 주술적인 마법의 패러디였다.
마술이 예능으로 자리잡은 것은 18세기 종교권력의 힘이 누그러지고 과학 혁명이 진전되면서부터. 마술도구의 개발도 이어졌다. 아이작 포크스, 지우제페 피네티, 로버트 후댕, 존 핸디 앤더슨 등의 마술사들이 ‘마르지 않는 병’, ‘장기를 두는 인형’ 등의 화려한 쇼로 18~19세기를 풍미했다.
하지만 심령술로 위장한 속임수와 사기 등 어두운 그림자들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18세기 후반 미국의 데이븐포트 형제들은 마치 20세기의 유리겔라처럼 영혼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캐비닛 마술을 선보여 전세계적인 돌풍을 일으켰지만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외에도 무수한 속임수를 통한 흥행 한편에선 이들의 비밀을 캐내는 폭로도 잇따랐는데, 이것이 마술의 기술적 발전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세기를 넘어 20세기 접어들면서 마술은 과학기술 발전과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해갔다. 관객이 보는 앞에서 자동차나 코끼리를 사라지게 하거나, 사람을 트렁크 속에 넣어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하고 회전톱으로 인체를 절단하였다가 다시 접합하는 등 기계 장치와 과학기술을 이용한 대규모의 무대 공연이 펼쳐졌다.
이에 비해 국내 마술계는 척박하기 그지 없었다. 최초의 근대 마술사이자 마술사의 대부 이흥선 옹과 함께 장철씨 등이 1세대를 이뤘고, 여성 마술사로 유명한 정은선씨, 최초의 마술학원을 열며 마술대중화에 노력한 정하성씨 등이 근근히 명맥을 유지해왔다. 90년대 후반 신세대와 인터넷 문화 속에서 3세대 마술계가 드디어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이흥선 옹의 외손자 김정우씨, 정하성씨의 제자 이은결씨, 정은선씨의 제자인 여성마술사 오은영씨 등이 새로운 마술 문화를 열고 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김정우씨의 카드마술
국내 최초의 마술가인 이흥선씨의 손자이자 수제자인 김정우 마술사가 집에서도 간단하게 펼칠 수 있는 마술 하나를 소개했다.
① 클로버 10, 하트 9, 스페이드 8. 카드 세 장을 펼친다. 이 마술을 위해서 아무 카드나 상관없다. 눈에 띄게 하기 위해 가운데는 빨간 색으로 하면 좋다.
② 세 장을 뒤로 돌린 다음 관객에게 가운데 카드를 뽑게 한다. 이 때 앞면을 보여주면 안된다.
③ 관객이 뽑은 가운데 카드는 테이블 위에 놓게 한 뒤 나머지 두장을 돌린다. 클로버 10과 스페이드 8이 보인다. 테이블에 놓인 카드는 당연히 하트 9로 보인다.
④ 바닥에 놓인 카드를 돌렸다. 하트 9가 아니라 클러버 에이스다. 어떻게 된 것일까?
⑤ 비밀은 10클로버에 있었다. 10클로버에 하트9의 반쪽만이 붙어있었던 것. 애초에 10클로버, 클로버 에이스, 스페이드 8 3장이 쥐고 있었고, 하트 9가 클로버 10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⑥ 하트9를 비스듬히 가위로 오려 클로버 10에 테이프로 붙여놓기만 하면 된다.
■상식을 희롱하는 속임수의 세계
한 사내가 공중으로 장갑을 던진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날아가던 장갑이 갑자기 '펑' 소리와 함께 비둘기로 변한다. 비둘기는 무대 뒤편의 횟대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우아하면서 신비로운 이 광경은 영화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이 아니다. 미국의 마술사 랜스 버튼이 펼치는 마술쇼다. 영화 같은 합성화면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이다.
신세대 마술사 최현우의 마술 입문 동기는 어떨까. "어릴때 한 마술사가 나에게 공을 줬다. 내가 그 공을 한번 쥐고 펴자, 공이 두개로 바뀌었다. 다시 한번 더 쥐고 펴자 공이 또 늘었다. 마술사의 손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트릭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이건 바로 내 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너무 신기해서 그날 잠을 잘 수 없었다."
마술은 같은 마술사들도 놀라게 한다. 국내 최고수 마술사로 꼽히는 김정우는 94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지그프리트 앤 로이의 공연을 보다 깜짝 놀랐다. 말을 타고 나오던 마술사가 무대 중앙, 바로 그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라지는 마술은 대부분 커튼의 도움을 받지만, 이건 커튼도 없는 상태였다. 어안이 벙벙했다."
명절이면 어김없이 안방에 방송되는 마술쇼. 미국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는 분명 만리장성 오른편에 있었다. 실루엣이긴 했지만, 그는 성벽을 향해 돌진했다. 짧은 찰라, 그는 성벽 건너편으로 튀어나왔다. 성벽을 뚫은 것일까. 물론 아무도 그렇게 믿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그게 바로 마술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마술은 과학적인 지적 게임이다.
마술은 어찌 보면 '역설의 오락'이다. 불가능하고 신비롭게 보이는 것도 모두 다 과학적 원리를 이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빈 상자로 보이지만 사실은 거울의 반사를 이용한 것이라든지, 물 빛깔이 마법처럼 주문에 따라 변하는 것도 용액의 화학적 성질을 이용하는 식이다.
최현우 마술사의 에피소드 하나. 커플 앞에서 여자의 옛 애인 숫자가 12명이라고 정확히 맞춰 여자의 과거가 들통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물론 그가 독심술을 부린 것은 아니다. 정교한 수학적 배열로 짜여진 숫자판을 통해 맞춘 것이다.
때론 마술이 과학을 앞지르기도 했다. 18∼19세기를 풍미한 마술 아이템 '자동인형'쇼는 기계공학장치를 이용한 것이었다. '마술의 등불'(지금의 오버랩 장면)이란 쇼도 유행했는데, 이는 당시 첨단을 걷는 마술사들의 영상기술 덕분이었다. 마술사는 기계공학자이자 도구설계자였다. 영화를 개척한 멜리에르의 직업도 사실은 마술사였다.
카퍼필드의 유명한 공중부양 마술. 공중을 떠다니는 모습이 와이어를 이용한 것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우아하고 자연스럽다. 게다가 와이어가 아니라는 걸 알리기 위해 그는 몸을 둥근 링 속으로 통과시킨다. 아니, 와이어가 아니라면 대체 뭔가? 물론 그가 초능력을 부리는 것이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무대 전체가 수조가 아닐까? 옷은 물에 적지 않는 투명 옷이고." "무대를 아예 무중력 상태로 제작한 것은 아닐까." 관객들은 저마다 추측을 해보지만, 대부분은 관객이 지는 게임이다. 하지만 관객의 마음은 놀라면서도 즐겁다. 바그다드매직의 이내형 실장은 "마술은 마술사와 관객이 벌이는 치열한 기지의 경쟁이다"며 "마술 속에 과학적 원리가 녹아있기 때문에 마술을 배우면 자연히 머리가 좋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마술은 무대위 종합예술이다.
"참,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다는 말이야?" 지적 게임에서 패한 패잔병이 내뱉는 넋두리다. 마술 속에 감춰진 과학적 원리는 어찌보면 간단하기 그지 없다. 등잔 밑을 어둡게 만드는 것은 바로 마술사들의 연기 덕분이다. 때론 허허실실로, 때론 교묘한 화술과 제스처로 관객들의 관심을 흐트려 놓는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20세기 초를 풍미한 마술사 청링수일 것이다. 신비로운 중국인 마술사로 유럽에서 20여년을 활동했던 그는 공연 도중 실수로 관객이 쏜 총에 맞고 숨진 후에야 서양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의 삶 자체가 마술이었고 연기였다. 실제로 마술사들은 더욱 훌륭한 공연을 위해 극단에서 연기 수업을 쌓는다. 연극 무대 위 연기가 삶을 모방하는 것이라면, 마술무대 위 연기는 환상을 모방한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연기뿐 만이 아니다. 음악, 조명, 의상 등도 마술적 효과를 배가시키는 요소다. 알렉산더 매직바의 마술사 홍성훈씨는 "마술은 과학뿐 아니라 문학, 심리학 등 모든 지식이 총동원되는 종합예능이다"며 "마술을 하기 위해서는 배우, 발명자, 감독, 조명기사, 의상담당자, 철학자, 심리학자가 되야 한다"고 말했다.
마술은 상상력이다.
과학, 연기, 의상, 조명 등이 마술의 참모습이라고 말하면 진실의 반만 아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은 꿈을 재현하기 위한 것이고, 마술적 상상력이 빚어내는 환상을 창조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마술가들은 탁월한 몽상가다.
하늘을 날아가는 꿈도, 꽃과 비둘기와 금화가 쏟아지는 마술보따리의 꿈도, 마네킹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는 꿈도, 새가 되어 날아가고 싶은 변신의 욕망도…. 그 옛날 마법이 약속했던 내용을 마술은 무대 위에서 성취했다. 매트릭스의 현란한 영화적 일루전도 이미 마술의 무대에서 실현됐다. '날으는 총알잡기' 묘기는 19세기 마술의 인기 레퍼토리였다.
간단한 원리지만, 그 원리를 통해 어떤 새로운 환상을 빚어내는가는 오직 마술가의 상상력과 창조성에 달려있다.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최고의 마술사로 꼽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테크닉 면에서는 이견이 있지만, '만리장성 통과하기' '자유의 여신상 없애기' 등 그의 마술적 기획력에 대해서는 많은 마술가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마술은 고행이다.
모든 것이 속임수인 것은 아니다. 특히 탈출 마술은 말 그대로 스턴트이자 고행이다. 족쇄가 채워진 채 물이 가득찬 상자 속에 갇히는 마술의 대가 후디니. 그가 족쇄를 풀고 상자를 탈출하는 데는 실제 고난이도의 스턴트를 요구한다. 최근 각광받는 미국의 마술사 데이비드 블레인은 얼음 속에서 62시간을 버티는가 하면, 탑 꼭대기에서 36시간을 버티고 서 있고, 44일간의 단식을 벌이는 등 또다른 차원의 고행 마술을 선보였다.
인간의 한계, 그 경계선 밖까지 보여주겠다는 것일까. 때로 수많은 마술가들이 공연 도중 자신의 목숨을 내놓기도 했다. 후디니는 어떤 주먹에도 견딜 수 있다며 관객에게 자신의 배를 때리게 했는데, 한 권투 선수의 주먹에 숨지고 말았다. 명치를 맞아 큰 충격을 받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시 때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마술은 장인의 비기다.
마술의 비법은 공개되지 않는다. 지금 인터넷에 떠도는 마술 해법은 마술의 관심을 촉발시키기 위한 미끼용으로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다. 좀 더 고차원적인 마술의 해법은 절대 공개하지 않는 것이 마술계의 암묵적 원칙이다. 물론 상업적 흥행을 감안한 것이지만, '마술을 마술답게 하는 마술적 환상'을 잃지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마술은 진정으로 배우려는 제자들에게만 전수되는 '장인의 기술'이다.
여전히 궁금증은 가시지 않는다. 카퍼필드는 자유의 여신상을 대체 어떻게 없앤 것일까. 착시를 이용한 레이저 장치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거대한 세트장이었을까? 아니면 카메라 트릭이었을까? 이미 진 게임이다. 그것은 카퍼필드와 마술계의 제자들만이 알고 있다.
■마술 배우기
시중에서 판매되는 마술도구는 수십종이지만 잘못 구입하면 처치곤란한 계륵이 되기 십상이다. 마술은 설명서나 그림으로 봐서는 쉽게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판매처에서 시연하는 것을 본 후 자신이 따라 할 수 있다고 생각될 때 사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마술을 펼칠 때의 애정이다. 초등학생용 마술도구는 원리가 간단하기 때문에 마술하는 사람이 성의없이 하는 경우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한다. 즉 연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어머니들이 아이들 앞에서 마술을 할 경우 동화를 들려주는 기분으로 애정어린 손짓과 말로 마술을 펼쳐야 실감난다.
초등학생용 마술세트인 '멀린의 신비한 마술학교 175' 중에서 쉽게 따라 해 볼 수 있는 마술 하나를 배워보자. 꼬마마술사 김도균이 시연했다. 이 마술은 컵 속의 공을 분명 치웠지만, 뚜껑을 다시 열었을 때 공이 컵 안에서 나타나는 마술이다.
주의사항은 사라진 컵 속의 공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마술의 결과를 미리 알리면 안 된다는 점이다. 내가 어떤 어떤 마술을 할 것이라고 먼저 말하게 되면 마술의 의외성이 떨어진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질 때 신비함이 커진다. 컵에서 신비한 마술이 펼쳐진다는 정도만 말하고 시작한다.
그림 1
뚜껑을 연 컵 안에는 빨간색 공이 들어있다.
그림2
컵 속에서 빨간색 공을 꺼내 몸 어딘가에 숨긴다.
그림3
컵 속에 공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림4
뚜껑을 닫는다. 여기서 마법의 주문을 건다.
그림 5
뚜껑을 열면 없어졌던 공이 안에 있다.
그림 6- 해법
이 마술의 해법은 바로 마술도구에 있다. 컵은 세 단계로 구분돼 있다. 컵 뚜껑과 실제 공과 받침대가 있고, 그 중간에 공 모양의 뚜껑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마술도구를 이용한 마술일 경우 관객이 마술도구를 만지게 해서는 안되며, 또 마술도구에 비법이 있다는 점을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된다. 공을 보여준 후 재빨리 마술도구를 치우고 손기술을 이용한 마술인 것처럼 가장하는 것도 좋다. 시치미 뚝 떼고, 관객의 궁금증과 조바심을 끝까지 올려보는 것도 마술의 재미다.
■인터뷰-꼬마 마술사 김도균
"데이비드 카퍼필드 같은 마술사가 되고 싶어요"
초등학교 4학년인 김도균(11·사진). 매직스페이스 마술팀 소속의 엄연한 프로 마술사다. 9살 때부터 무대에 서기 시작해 공연 경험만 70여회. 호텔 등에 벌어지는 각종 행사에서 마술쇼를 벌이고, 에버랜드 등 놀이공원에서도 공연을 하고 지방 공연도 다닌다. 액자 속 비둘기 그림을 살아있는 비둘기로 둔갑시키는가 하면, 그의 손에서 공이 한 개에서 두개로, 두개에서 세 개로 늘어난다.
도균이가 마술에 빠진 것은 3년 전 명절 때 TV에서 봤던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쇼 때문. 카퍼필드가 분명 금고에 갇힌 후 빌딩에 불이 났는데, 바로 그 옆을 지나가는 택시운전사 자리에 카퍼필드가 앉아있던 것이 아닌가. 너무너무 신기했다.
마술을 배우고 난 후 도균이는 "마술 속에 숨겨진 과학적 원리를 배우니까 과학 성적도 좋아졌다"며 으쓱했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이 마술을 보여달라고 몰려오고, 친구들에게 사인도 해준다고 한다. 물론 친구들이 비법을 가르쳐달라고 떼쓰지만,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마술 도구만 다루면 되는 도구 마술 단계에서 지금은 링 묘기 등 상당한 기술이 요구되는 기술마술을 펼치는 수준까지 올랐다. 스스로를 중급 수준이라고 말하는 도균이는 "앞으로 사람들에게 꿈과 즐거움을 주는 세계적인 마술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의 마법사 | 웹사이트 운영 "오브자"
마법 동호회 등을 통해 꿈을 키워가는 10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마법사로 활동하는 '오브자(obza·가명·36·사진)'를 만났다. 해외를 오가며 다른 나라의 마법사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전세계 마법서를 연구하면서 방대한 정보를 총망라한 웹사이트(www.obza.net)를 운영하는 그에게 마법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었다.
-마술과 마법의 차이가 궁금하다.
"마술이 눈속임과 기술을 중심으로 한다면 마법은 연구와 의식(儀式)이 주를 이룬다. 마술이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마법은 비밀리에 혼자 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법의 목표는 무엇인가.
"마법을 거창하고 화려한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마법의 정의는 '생각하는 것을 이뤄지게 하는 것'이다."
-팬이 굉장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루에 메일만 수십통이 온다. 최근 영화와 소설 등의 영향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돈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이성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 '미운 친구를 혼내고 싶다' 같은 얄팍한 목적을 위해 마법을 배우기 원한다. 그러나 마법을 잘못 사용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덤벼서는 안 된다."
-'심각한 결과'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마법에도 힌두교에서 말하는 '카르마(karma)' 즉 인과응보의 원칙이 적용된다. 나쁜 마법을 걸 경우 그 기운은 보통 세 배로 증폭돼 돌아오므로 분란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조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에게 사랑을 보내면 나에게 그것이 돌아온다."
-어떤 경로로 마법사가 되었나.
"내가 어릴 때 일본을 자주 오가시던 아버지가 마법 관련 서적을 사다 주셨다. 말은 모르지만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고 나중에는 스스로 책을 구하러 다녔다. 배운 것을 조금씩 실험해보고 그것이 성공하면서 점점 많은 연구를 하게 됐다."
-마법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행운을 맘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신나지 않겠는가. 누구나 꿈을 이루고 싶어한다. 돈을 벌어 집을 사거나 이성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는 것 모두 마법의 한 모습이다. 생일 케이크의 초를 끄면서, 혹은 별똥별을 보면서 소원을 빌 때 당신은 이미 마법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모든 것이 마법이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김신영기자
■ 마법 전성시대 | 왜 마법인가
디지털 정보를 빛의 속도로 실어나르는 요즘, 때 아니게 마법의 열병을 앓는 사람이 많다. '잘 팔리는' 문화상품마다 마법이 핵심요소로 자리잡으며 세계를 매료시킨 덕분이다.
성공한 문화상품에는 마법이 있다
3편까지 장장 9시간에 걸쳐 완결된 영화 '반지의 제왕'은 알려진 대로 영국 작가 J.R.R. 톨킨의 동명소설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하루에 6번 밥을 먹는 키 작은 호빗을 비롯해 인간, 요정, 괴물 등 수 많은 종족들이 '절대 반지'라는 하나의 운명으로 얽힌 채 살아가는 '중간계'라는 배경은 이미 마법적이다.
성경과 코란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조앤 K. 롤링의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의 주인공은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변신술과 예언법을 배우며 성장해가는 중이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워크래프트 등 세계적인 게임 개발사 '블리자드'의 대표작들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법의 개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파이널 판타지' '리니지' 등 마법을 익히고 사용해 목표를 달성한다는 줄거리가 주를 이루는 수 많은 롤플레잉 게임은 말할 것도 없다.
서점에는 마법 관련 책이 넘쳐나고 '절대반지'를 모방한 액세서리는 불티나듯 팔리며 아이들은 해리포터 '머글마법 백과사전'을 보고 어려운 주문을 줄줄 외워댄다. 겨우살이 식물을 채취해 마법의 물약을 제조하는 주인공들의 모험담을 그린 프랑스 만화 '아스테릭스'는 전세계적으로 2억8,000만부 이상 나갔다.
아이들 마음 속에 들어간 마법
"아침 해가 뜰 때 창문을 열고 해가 뜨는 쪽에 그림을 두세요. 마법 옷은 다 있죠? '카코라니시타노모!'라고외치면서 가운데를 살짝 쳐주세요."
마법을 믿고 이를 배워보려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마법 동호회 '전설의 마법진'에 올라온 '자기 정령 만드는 법'이다. 영화, 소설, 게임의 마법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은 '혹시 나도…?'하는 마음으로 마법계에 직접 뛰어들기도 한다. '전설의 마법진'에는 1만7,000명, 비슷한 성격의 '마믿모(마법세계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에도 5만3,000명이 넘는 회원이 등록돼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대부분이지만 주술, 저주, 정령 불러오기 등 마법에 관한 각종 정보를 공유하고 성공·실패담을 올리는 태도는 자못 진지하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신지용 박사는 "인터넷게임 등 디지털 매체의 홍수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역으로 마법 같은 아날로그적이고 복고적인 놀이에 빠져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용인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첨단 기술로 눈 앞에 열리는 마법
상상 속에나 자리잡고 있던 마법이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기까지 첨단 디지털 기술은 큰 역할을 했다. 톨킨은 자신의 저서 '마법담에 관하여'에서 현실세계를 1차세계로, 환상과 마법의 세계를 2차세계로 규정하면서 "의심하거나 망설이는 독자는 1차 세계로 바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우스와 키보드의 간단한 조작만으로 마법의 영상을 더욱 현란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만들어주는 영상기술은 관객을 환상의 세계에 꼼짝없이 묶어둔다.
마법의 인기는 무엇보다 현실 세계의 불안과 각박함을 반영한다. 아주 옛날부터 있어왔고 수없이 되풀이되어온 마법, 영웅, 미녀와 괴물의 이야기들이 전에 없는 각광을 받는 것은 끝없는 전쟁과 분쟁으로부터 오는 초조함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자연에게는 마법을, 현실에게는 거울을, 인간에 대해서는 분노와 연민을.' 톨킨이 판타지 소설을 쓰며 세웠다는 이 원칙은 현실과 비슷한 주인공과 줄거리에 마법이라는 꿈을 입혀 '오늘'의 불안을 잊어보고자 하는 나약한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