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우(51·사진) 감독이 시집 '이별에 대하여'(창비)를 냈다. 1년 여 동안 쓴 시 71편에 디지털 카메라로 직접 찍은 사진을 덧붙였다. 15일 전화로 만난 그는 아직 시집을 보지 못했다면서 책이 예쁘게 나왔느냐고 되물었다. "지난해 3월 '성냥팔이 소녀 재림'의 엔딩 장면을 찍기 위해 태국 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시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내 영화 '경마장 가는 길'에서 주인공이 갑자기 소설을 쏟아내는 엔딩 장면과 같았어요."그렇게 시 쓰기가 시작돼 하루 대여섯 편까지도 씌어졌다. 1년이 지나자 시집 한 권 분량이 됐다. 시를 써봤다고 친구에게 슬쩍 말했더니, 그 얘기가 출판사에 전해졌다. "'재주가 많으니까 이젠 시도 쓰는구먼'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원고를 손에 잡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최원식 창비 주간은 말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나쁜 영화' '경마장 가는 길' 등 자신이 연출한 영화 제목이 그대로 시의 제목으로 쓰였다. '제작자 신철이는 지옥 갈지 몰라요/ 거짓말해서/ 근데요 복받을지도 몰라요/ 거짓말 만들어서'('거짓말')와 같이 솔직한 심경을 담았다. '더 이상 잃을 것도 빼앗길 것도 없는/ 그들 사랑이 부러웠나요'('나쁜 남자')처럼 그가 본 영화에 대한 감상도 시로 썼다.
장 감독은 '당신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들지 못해요/ 하루종일 애들처럼 뛰어놀아도/ 결국 잠들지 못해요'로 시작되는 시 '불면증'이 특별히 마음에 든다고 했다. 대학 시절 김지하 시인의 '황톳길'을 읽고 감동 받아 잠시 습작을 하기도 했다는 그이다. "신경림 시인의 장시 '남한강'을 읽고 영화로 만들어볼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시에서 영화의 이미지를 많이 얻은 게 사실"이라고도 말했다.
시인의 꿈을 품었던 게 아닌데도 뒤늦게 시가 '쏟아져 나온' 데 대해 장 감독은 "애증이 있어서가 아닐까"라고 답했다. 사상 최대 제작비를 들인 영화 '성냥팔이…'가 흥행에 실패한 것이 지난해 영화계의 화제가 됐다. "답답함, 그리움, 더러움이 기어 나왔습니다. 떠나보내야 살 것 같았죠. 흘려보내야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한동안 영화를 만들 의욕이 생기지 않았지만 최근 마음을 새롭게 다잡았다. '바리공주'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오랜 꿈을 되살렸고,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이런 저런 시나리오 아이디어도 붙잡아 메모하고 있다. 계속 시를 쓸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어떻게 알아요, 생각이 자주 바뀌는 사람인데"라며 웃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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