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선수관리가 아주 편해졌어요. 예전에는 마라톤 선수들까지 술 담배를 하곤 했지만 이제는 성적이 돈과 직결되다 보니 스스로 관리를 하죠. 나이 들면 퇴출을 안 당하려 더 열심히 하니까 선수생명도 길어지고요." 13년간 울산광역시청 육상부를 이끌어 온 이정구(55·李貞九) 감독. 현재 국가대표 7명을 포함해 15명의 선수를 거느린 그는 금년 전국체전에서도 금메달 6개를 획득한 실업 최강팀의 지휘관이다. 지난 30년의 지도자 생활이 인기종목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한 팀에서 장수하며 선수 선발에서 연봉결정까지 전권을 부여 받을 정도로 지도력과 관리능력을 인정 받았다는 데 뿌듯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선수들은 돈도 잘 안 쓰고 외국에 갔다 와도 서로 '선물 안 하기'로 약속하는 등 영악하다고 할 만큼 합리적이에요. 때문에 지도자가 합당한 목표를 제시하고 함께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열심히 따라오지요."마라토너 출신인 그는 장거리와 경보의 지도가 전문이지만 이제는 단거리에 멀리뛰기 높이뛰기등 필드종목에서까지 대표선수들을 만들어 낼 만큼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조선일보 마라톤 여자부에서는 울산시 체육회 소속의 낯선 선수가 2,4위를 차지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2위는 필드하키 선수출신의 박미옥(29), 4위는 35세의 주부 김은정. 모두 정규코스를 거친 선수가 아니었지만 동호인대회를 주의 깊게 관찰해 온 이감독에 의해 발탁된 마라톤 마니아로, 실업팀에서 은퇴한 32세의 방경희와 함께 울산시청 입단 예정자들이었다.
"선수들은 체계적으로 운동할 환경을 갖게 돼 좋고, 팀은 스카우트비 안 쓰고 선수를 뽑아서 좋지요." 그는 마라톤은 30대가 되어도 상관 없으니 나이와 결혼 여부를 떠나 계속 동호인 중에서도 재목을 찾아 키울 계획이라고 한다.
육상에서도 선수 스카우트는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다. 그는 선수의 재능 뿐 아니라 정신 자세를 중요시하고 성격과 식생활, 이성관계 등의 사생활까지 세밀하게 검토한다. 그러나 몇 년씩 공 들인 선수가 계약서에 도장 찍기 직전 번복하는 일이 적지 않고, 이러한 스트레스가 쌓인 때문인지 5년 전 뇌출혈을 일으켜 약물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스카우트가 어렵지만 재목감을 발굴하는 그의 남다른 눈 덕분에 스타가 된 선수가 많다. 주부선수 이윤경(26)의 경우 대학 졸업후 다른 시청에서 1년을 뛰고 방출될 처지였다. 그러나 평소 그의 성실성과 집념을 높이 산 이감독은 99년 울산시청으로 데려온 후 800m였던 주종목을 400m로 전환해 훈련시켰다. 결국 이윤경은 금년 2월 결혼까지 했으나 8월 대회에서 내리 여자 400m(53초67), 400m허들(57초90)의 한국신기록을 수립하면서 육상계의 신데렐라로 탄생했다.
이정구감독은 대전 대성고 1학년에 마라톤을 시작했지만 그리 특출한 선수는 아니었다. 60년 대 어렵던 시절에 학비면제에 숙식까지 제공되는 특혜가 운동부에 들어가게 된 큰 동기였다.
졸업후 대한중석에서 3년을 뛴 후 집안의 농사를 돕다가 74년 계룡고와 충남육상연맹의 순회코치를 맡으며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여기서 성적을 내면서 모교 대성고를 거쳐 78년 수자원공사(구 산업기지개발공사)의 코치로 승격됐다. 80년에는 모스크바올림픽 출전선수 1명을 선발하는 동아마라톤에서 소속선수 배은환이 사토 쓰쓰무(일본)에 이어 2위, 한국선수중 1위를 차지해 그도 올림픽 코치의 영광을 눈앞에 두었다.
그러나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의 보이코트로 한국도 출전을 거부하는 바람에 올림픽 출전의 꿈이 무산되는 불운을 겪었다.
당시 그의 팀은 남자 400m 한국기록 보유자인 구본칠, 해머 던지기 한국기록 보유자 노경렬과 여자 800m 1500m 3000m 1600m 계주 4관왕인 안춘자를 보유해 최강을 자랑했다.
이감독은 7년간의 실업팀 감독생활로 모은 돈으로 방향전환을 시도하기도 했다. 학생시절 심취했던 팝송과 영화음악이 좋아 83년 대전에 300∼400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음악다방을 열었던 것. 그러나 얼마 안 가 영업부진으로 외도를 끝내고 서울체육중·고 코치를 맡았다.
여기서 첫번째 키운 대어가 최세범.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이감독의 지도를 받아 온 그는 87년 중3때 아시아선수권서 여자 800m 한국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스타로 발돋움 했으며 당시의 기록 2분05초11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그는 선수를 철저히 분석했다. 다양한 테스트를 거쳐 가능성을 확인하고 성장에 확신이 없으면 종목을 바꿔 주거나 학업에 전념토록 했다.
"체육고가 특수학교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은 행동"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많은 선수들이 운동을 포기하고 공부를 해 대학에 입학 하도록 도왔다.
서울체고 제자 윤남한 서선희는 대표적으로 종목을 바꿔 태극마크를 단 행운아.
윤남한은 100m 200m의 후보 선수였으나 400m 800m로 전환해 두각을 나타내고 대학 1년때 남자 400m 한국신기록을 수립했다
서선희는 장거리 선수였으나 이감독은 몸의 유연성이 부족한 대신 스피드가 있는 점을 감안, 400m 훈련을 시켜 윤남한과 함께 86아시안게임에 대표로 내보냈다.
그는 경보에서는 독보적인 지도자이다. 현재 대한육상경기연맹 경보 심판장을 맡고 있는 그는 86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세계연맹에서 파견된 영국 강사로부터 처음 경보 교육을 받은 것을 계기로 국내에 경보를 보급하는 데 주력했다. 국내에 거의 선수가 없어 대입 특기생 자격을 획득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 때문에 지원자가 몰렸고 기록도 빠르게 발전했다.
이감독의 대표적 제자인 김미정(24)은 무려 16차례나 여자 한국기록을 경신한 1인자. 충북체고 시절 중장거리선수였으나 울산시청 입단 후 체격조건이 경보에 더 적합하다는 이감독의 판단에 의해 종목을 바꾼 후 이 부문서 독주해 지금 여자 20㎞(1시간33분03초) 10㎞(45분18초86) 5㎞(21분53초31)의 한국기록을 모두 갖고 있다.
이감독은 91년 장거리 선수들만 있는 창단 6개월의 울산시청을 맡은 후 종목을 확대, 투포환 한국기록 보유자 김재일(29·18m47), 장대높이뛰기 1, 2위를 다투는 김세인(29), 여자 100m허들 1인자 이연경(22), 투원반 1인자인 또다른 이연경(22) 등을 키웠다.
자기 분야가 아닌 종목의 경우에는 선수와 상의해 최적의 지도자를 찾아 위탁한 후 목표 도달과정을 치밀하게 체크하며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항상 새로운 훈련방법을 연구하는 그는 선수들과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유머집을 사서 외우곤 한다.
선수가 성실하고 동료선수에 도움이 된다면 끝까지 함께 간다. 울산시청의 높이뛰기 선수인 강재호는 성적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과도하게 훈련을 하다가 아킬레스 건이 끊어진 후 코치로 임명됐고 36세의 세단뛰기 선수 유재균은 올해까지 뛰다 대학 전임강사로 옮겼다.
반면 운동선수의 기본인 체력, 특히 지구력 강화를 위한 훈련은 가혹할 정도이다. 그는 "여자의 기록이 남자를 못 따라 가는 것은 지구력의 차이 때문이다. 근력을 키우면 지구력과 스피드 파워가 모두 향상된다"며 여자선수도 매일 남자 못지 않은 무게의 기구를 들도록 한다.
유석근 편집위원 sky@hk.co.kr
● 약 력
1967년 대성고졸, 대한중석 마라톤부 입단
1974년 계룡고, 충남육상연맹 순회코치
1976년 대성고 코치
1978년 수자원공사 감독
1984년 서울체고 코치
1986년 숙명여대 코치
1991∼현재 울산광역시청 감독
1997년 대한체육회 지도상 수상
1998년 육상인이 뽑은 지도자상 수상
1999년 대한체육회 공로상 수상
현 대한육상경기연맹 이사, 경보 심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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