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영애 언니는 저만 보면 놀려요. '봐 봐, 연생이 표정이야' 그러면서 입을 삐죽 삐죽하는 흉내를 내는데, 그 모습을 보면 제가 자지러져요. 제가 정말 그렇게 자주 삐죽거리나요?"사극 '대장금'(MBC)에 장금이의 단짝 연생이로 출연하고 있는 박은혜(25)는 깜찍하고 귀여운 매력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입을 삐죽하며 코맹맹이 소리로 "내 말은…그게아니라…"라며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은 철 없고 맹해 보이지만 장금이를 위해서라면 누구 앞에서건 겁내지 않고 바른 소리를 한다.
"푼수 역이 저한테 맞나 봐요. 원래 성격도 그렇거든요. 내숭 떨며 조용히 있는 게 더 어려워요." 박은혜는 딸만 넷인 딸 부잣집 셋째 딸이다. "자라온 환경상 '청순가련'과는 사실 거리가 멀어요. 자립심 강한 캔디 쪽에 가깝죠. 중간에 낀 딸들이 그렇잖아요. 씩씩하지만 속으로는 외로움 많이 타요."
그를 신인으로 아는 사람도 있지만 1998년 데뷔해 벌써 연기 생활 6년 째다. 전 소속 기획사에서는 그를 '한국의 왕조현'이라고 홍보했을 정도로 그의 이미지는 '청순가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1998년 영화 '짱'으로 데뷔해 '천사몽' '찍히면 죽는다' 등 "결국 별로 뜨지 못한 영화"에 출연했고 스노보드를 타고 멋들어지게 설원을 누비는 세련된 이미지로 등장한 LG카드 CF 등 '아, 그 주인공!'이라고 무릎을 칠 만한 유명 CF에 등장했다. TV에서는 시누이 정선경을 괴롭히는 밉상 연기(MBC 일일연속극 '매일 그대와')나 드라마 최초로 한총련을 다뤄 화제가 됐던 '드라마시티―문제작'(KBS2)에서 진지한 연기도 선보였다. "사실 그 때는 한총련이 뭔지도 잘 몰랐어요. 공부도 되고 좋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연생이가 저와 가장 잘 어울리지 않아요?" 말할 때마다 상큼함이 톡톡 터져 나오는 미소를 생긋 짓는다.
연생이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단 한번 승은(承恩)을 입고 후궁이 돼요. 그런데 왕이 다시는 안 찾는데요. 슬프죠? 옛날에는 이런 경우가 많았다는데…. 이런 후궁은 상궁이나 나인들도 모두 무시한대요. 그래서 외롭고 슬픈 후궁이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할 때는 스스로 드라마 속 연생이가 된 듯 큰 눈망울 가득 안타까움을 담아 보인다. 그의 말처럼 연생의 운명은 슬픈 후궁. 결정적인 순간에 장금을 돕는다.
수라간 세트장에서 몰래 오이를 훔쳐 먹던 아기자기한 즐거움도 있었고 이영애의 연기를 가까이서 지켜 보며 "촬영장을 이끄는 조용하면서도 강한 힘"을 배우는 등 '대장금'을 통해 얻은 것은 너무도 많다.
하지만 고생도 많았다. 특히 정상궁이 죽은 후 "어떻게 제가 졸고 있을 때… 꼬박꼬박 졸고 있을 때… 나 간다, 한마디도 안 하시고…. 다시는 안 볼 겁니다. 다시는, 다시는"이라며 오열하는 장면은 시청자가 꼽은 가장 슬픈 장면 중 하나지만 박은혜로서는 온 몸의 진을 다 빼다시피 한 장면이었다. "촬영을 방송 순서대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유분(遺粉)을 뿌리는 장면 등에서 이미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이 펑펑 나지 않는 거예요. 어찌나 힘들었던지…."
6년 동안 힘들고 좌절한 때도 많았지만 "매일 태양만 비친다면 그 곳은 사막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이겨냈다는 박은혜. '대장금'을 통해 연기자로서 전기를 맞은 그의 인기비결은 그 환한 마음에 있었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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