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1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이일제 식민지 시절 고의적으로 왜곡되었다는 주장이 또 다시 제기된다. 남상숙 원광대 국악과 교수는 18·19일 국립국악원 국악연수원에서 열리는 '종묘제례악의 전승' 학술대회에 제출한 '속악원보 수록 악곡 연구'라는 논문에서 "속악원보는 옛 악보의 의도적 왜곡이 많아 일제 때꾸며낸 위서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1892년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속악원보'는 인의예지신의 5책 7권으로 종묘제례악의 음악인 정대업과 보태평을 담고 있다. 특히 마지막의 '신편'은 일제 시대 이왕직 아악부가 편찬한 악보의 원류이자 현행 종묘제례악의 원 악보다.
지금까지 국악계는 종묘제례악이 우리 고유의 향악에서 1음1박 구조의 중국 음악인 아악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과정을 증명하는 사료로 '속악원보'를 인용해 왔다. 현행 종묘제례악이 세종 때와 다르다는 것은 모두 인정한다. 현재의 종묘제례악은 불규칙한 장단 등이 특징. 하지만 1759년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학후보'까지만 봐도 규칙적 장단이 연주된다. "종묘제례악이 변하는 것도 전승의 일종"이라는 국악원과 달리 남 교수는 "음양오행 사상 등의 철학이 녹아있는 궁중음악, 특히 반주가 있는 악보는 왕조가 존속하는 한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규칙적 장단이 음악 원리에 맞다"고 주장한다.
6월의 토론회에 제출한 '종묘제례악보 고찰'에서 남 교수는 세종, 세조실록 악보에 수록된 종묘제례악과 임진왜란 이후에 만들어진 '대학후보'의 음악이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의 의문은 왜 구한말에 종묘제례악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느냐는 것이다. '속악원보'의 첫 책인 '인편'에서 짧아지기 시작한 장단은 마지막 책인 '신편'에 이르러서는 '대학후보'의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바뀐다.
특히 네 번째 책인 '지편'부터 이전의 악보에 없던 4·2·4 정간 구조를 취하고 있다. 고악보 중 4·2·4 정간은 유일하게 '대학후보'의 마지막 곡인 영산회상에만 나오는데 이번에 이 곡이 위작인 것으로 드러났다. 여태명 원광대 서예과 교수는 "필체가확연히 다르고, 종이질도 훨씬 떨어져 후대에 새로 쓴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남 교수의 논문은 '속악원보'의 '신편'이 박자 없이 음만 표시한 조선후기의 악보 '한금신보'나 '신증금보'에 대강 박자를 끼워넣은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다른 악보와 달리 연도 표시를 정확히 1892년이라고 밝힌 것도 의문을 사고 있다. 남 교수는 "일제 때 대강 만든 '속악원보 신편'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편'을 위작하고, 그 근거를 밝히기 위해 '대학후보'의 영산회상을 뜯어내고 새로 쓴 것"이라며 "악보 왜곡은 일반인들이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크다"고 주장했다. 속악원보 신편에서 없어진 장구 장단은 1960년대 고(故)김기수 전 국악원장이 만들어 다시 사용하고 있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