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프린스턴대 등 명문대 진학을 노리는 미국 고교생들에게 심화학습(AP·Advanced Placement)은 필수과정이나 마찬가지다. 적지않은 대학이 입학 전형에서 AP 코스를 끝낸 학생들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입학 후 학점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 합격만 하면 '꿩 먹고 알 먹는' 알짜배기 코스인 셈이다.한국의 외국어고나 과학고 등 상당수 특수 목적고에서도 수년 전부터 '미국 대학 직행'을 꿈꾸는 학생들이 AP 코스를 이수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1954년 뉴욕에 본부를 둔 미국대학협의회가 처음 만든 AP는 고교생들에게 대학 교과목을 고교에서 미리 수강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심층 학습. 다음 학년의 교과서를 앞서 배우는 선행학습 개념이 아니라 수많은 책을 읽은 뒤 토론과 함께 연구 과제물을 제출해야 하는 일종의 '예비대학 과정'이다. 당연히 수업은 토론식으로 진행되며, 참고 자료와 논리적 근거를 반드시 밝혀야 하기 때문에 수준도 대학 강의를 방불케 한다.
최근 미국 고교에서 '조기 AP 이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저학년 때부터 시작해야 명문대에 갈 수 있다"는 인식이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까닭이다.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월터존슨고 9학년(고 1년)에 재학중인 이모(15)군은 9월 신학기부터 AP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상위권 성적으로 예일대 진학을 겨냥하고 있는 이군은 "강의가 다소 어렵긴 하지만 토론과 논리적 이론 전개에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군은 "보통 새벽 1시까지 복습과 예습을 반복하고 주말에는 시사잡지를 이용해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한다"고 덧붙였다. 이 학교는 9학년 400여명 중 10%가 넘는 48명이 AP를 이수하고있다.
사실 미국 고교의 AP는 전통적으로 11학년(고 3년)과 12학년(고 4년) 일부 학생들의 '전유물'로 통했다. 그러나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입시 경쟁은 AP 이수 연령층을 대폭 끌어내리고 있다.
통계 수치도 고교 저학년의 AP 열기가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미국대학협의회에 따르면 93년부터 올해까지 10년 사이 AP 시험을 치른 고교가 498개에서 2,120개로 4배 이상 늘었다. 이 기간 10학년(고 2년) AP 이수자 숫자는 1만8,045명에서 6만331명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저학년들 사이에 AP 이수 바람이 불면서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 또한 만만치 않다. 조기 AP 이수를 찬성하는 쪽은 "더 많은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다 명문대 입학사정관에게 깊은 인상도 심어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9학년과 10학년들에게 대학 수준의 분석적 쓰기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또 하나의 스트레스"라고 '시기상조론'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 교육계에서는 가열되고 있는 찬반논쟁과 상관없이 저학년 AP 이수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상당수 학교에서 AP 시험을 치른 9, 10학년생들의 학점이 11, 12학년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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