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토굴에 숨어있던 후세인을 미군이 극적으로 체포한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이라크 민중이 거리에서 환호하는 장면을 국제언론은 앞 다퉈 전했다. 실제 누구보다 크게 환호했을 부시 대통령은 애써 웃음을 감춘 채 '이라크 국민에게 역사적 순간'이라고 축하하는 대범한 자세를 취했다. 이라크 안팎의 다양한 감회를 다 헤아리긴 어렵지만, 이라크 역사에 한 단락을 지은 것은 분명하다. 후세인과 바트당 독재가 행여 역사의 전면에 복귀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인식을 굳힌 것이 이라크 민중에게는 무엇보다 의미있을 것이다.물론 후세인을 전범재판에 세워 쿠르드족과 시아파를 학살하고 쿠웨이트를 침략하는 등의 죄상을 추궁하는 요란한 행사가 남았다. 미국은 여론과 언론의 선정주의에 의존, 이 재판을 이라크 침공과 점령의 정당성을 뒤늦게나마 세우는 데 이용하려 할 것이다. 외세의 꼭두각시인 과도통치기구가 주관하는 재판의 공정성을 둘러 싼 국제적 논란까지도 미국의 명분을 해치기보다 후세인의 범죄성을 부각시키는 데 도움될 것이다. 미국이 주무르는 이라크의 현실보다, 후세인이 자행한 과거의 독재와 만행에 국제사회의 이목과 논란이 집중되는 것이 이라크 경략에 대한 국내외 지지를 얻는 데 바람직하다고 여길 법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후세인 효과에 대한 기대는 성급하다. 미국민과 국제사회는 부시의 성공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라크 민중이 후세인의 종말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그야말로 범국민적이지도 않고, 마냥 지속될 리도 없다. 겉보기 초라하나 자존심 강한 이라크 인들이 나라를 점령한 외세가 한때의 국가 지도자를 두더지 잡듯 끌어낸 것에 온통 환호한다고 보는 것은 어색하다. 미국과 국제언론이 분위기를 띄운 거리의 환호가 가라앉고 나면, 지각과 분별있는 이라크인은 민족의 운명을 심사숙고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런 바탕에서다.
이런 분석은 공연한 경고가 아니다. 후세인의 상징성은 미군의 바그다드 점령과 정권 전복으로 이미 허물어졌고, 이라크인들의 저항은 주권과 생명과 재산을 침탈하는 외세에 대한 본능적 반발이 원천이기에 후세인의 운명에 좌우되지는 않는다는 지적인 것이다. 따라서 후세인 체포는 저항의 기세를 얼마간 죽이고 부시와 미국의 사기를 상당히 높이겠지만, 이라크 정세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리란 얘기다. 오히려 후세인의 종말, 그 독재와 만행을 문책하는 과거청산은 이라크 민중이 자신들의 불안한 처지와 외세의 침탈에 더 깊이 분노하는 상황에 이르게 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과 동맹군 및 꼭두각시 정부의 경찰력으로 치안이 개선되더라도, 외세의 경제적 침탈이 이라크인들의 저항의식을 키우는 주된 요인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이 대세 반전을 이용해 재건작업에 매진할수록, 이라크인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워 반발이 커질 것이란 얘기다.
미국은 이라크 재건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붓는 듯 하지만, 이라크의 해외자산과 석유수입까지 마음대로 주무를 채비를 갖췄다. 또 국제법의 금지규정에 아랑곳없이 피점령국 이라크의 국유재산을 민영화 명목으로 제멋대로 미국기업에 팔고 있다. 특히 이라크 재산으로 조성한 기금을 미국수출입은행이 관장, 미국기업에 인수자금으로 빌려주고 있다. 이에 따라 재건을 빙자해 이라크인의 부담으로 경제 장악과 자본주의화를 꾀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런 바탕에서 보면, 미국이 전쟁에 반대한 독일 프랑스 등의 재건사업 참여를 봉쇄한 데 따른 갈등도 21세기에 재현된 식민지 이권다툼의 단면이다. 후세인 체포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 추구를 막을 수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킨 듯 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일찍이 쿠바와 이란, 남미에서 시도한 제국주의적 침탈도 민족주의 봉기에 패퇴한 역사가 결국 되풀이될 것이란 지적을 소홀히 여겨선 안 된다. 미국을 추종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강 병 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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