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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무대의 카리스마 박정자 <17> 분장실은 내 지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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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무대의 카리스마 박정자 <17> 분장실은 내 지성소

입력
2003.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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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평소 모습을 지워버린 채 무대 위의 생을 준비하는 곳. 분장실은 내게 지성소(至聖所)다. 그곳에서 나는 스스로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을 얻는다. 무대에 오르기 전 배우는 마음을 가다듬고 극중 인물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어야 한다. 그 모든 준비가 바로 분장실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인지 공연이 있기 전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마냥 민감해진다. 이런 상황을 모르고 분장실을 찾는 관객이나 지인들은 환영 받지 못한다. 때론 아예 그들의 출입을 막는다. 페드라를 공연할 때 그랬다. 다른 배우들에게도 분장실은 나와 마찬가지로 소중하다.몇 평 되지 않는 좁고 초라한 공간이지만 분장실에는 엄연한 위계질서가 있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복작거리는 출입구는 서열이 맨 꼴찌인 배우 차지다. 문과 멀면 멀수록, 보다 조용한 공간일수록 선배에게 돌아간다. 문 앞에서부터 맨 안쪽에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계급 투쟁에서 성공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분장사도 고참 차지일 뿐 졸병에게는 순서가 돌아오지 않는다. 최효성, 전예출씨 등 당대의 빼어난 분장사 두 분에게 분장을 맡기는 게 우리의 꿈이었다.

분장실은 사방이 꽉 막힌 지하에 있기 일쑤다. 어디 그뿐인가. 분장실 안에 화장실이 없는 곳도 부지기수였다. 장기 공연을 할 때면 무대와 분장실을 오가며 지낸다. 바깥도 내다볼 수도 없는 좁디 좁은 공간에서 6개월, 길게는 8개월을 지내다 보면 신경이 바늘 끝처럼 날카로워지게 마련이다. '신의 아그네스'를 장기 공연할 때 찍은 사진은 바로 이런 정신 병리학적 상황을 입증해 준다. 수녀복을 입은 나는 파리채를 들고 있고, 신애라는 꽃다발을 들고 있고, 손숙은 팬에게서 받은 꽃다발에 달린 빨간 리본을 머리에 묶은 상태. 지금이야 이 사진을 보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는 거의 반쯤 미친 거나 다름없었다.

조그만 지하의 분장실만 들락거리다가 1970년 남산에 지어진 국립극장 분장실을 사용했을 때의 기분이란! 창가로 남산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가슴이 탁 트이는 것이었다. 근래 지어진 호암아트홀 같은 공연장은 샤워실이 딸린 개인 분장실이 따로 있으니 세상이 좋아진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도 가난했던 지난 시절의 분장실은 사람 냄새와 정이 흠뻑 묻어나던 곳이기도 했다. 요즘은 분장실에 들르는 팬이나 지인들이 꽃이나 와인을 선물로 주고 간다. 그러나 먹을 것이 귀했던 예전에는 간식 거리를 사 들고 분장실로 찾아오곤 했다. 분장실에 먹을 것을 사다 주시던 분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게 차범석 선생이다. 우리는 공연할 때마다 늘 분장실에서 차 선생이 언제 오시나 기다리곤 했다. 선생은 그냥 오시는 법이 없었으니까. 명동 예술극장에서 공연을 할 때는 극장 바로 앞에 있던 빵집 '케익 파라'에서 도너츠를 사오시곤 했는데 그 따끈따끈한 도너츠의 달콤한 냄새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한복 연구가 허영씨는 박카스를 대형 박스로 보내는 걸로 유명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박카스에 수영하게 생겼다"며 깔깔거리곤 했다. 몇 년 전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래도 부인이 내 공연 때마다 남편 살아있었을 때처럼 꼬박꼬박 박카스를 보내온다.

그렇게 먹을 걸 사가지고 오는 손님들 이름과 선물 목록을 분장실 한편에 붙여 놓은 커다란 모조지에 조목조목 적어 놓았다. 종이 아래에 '고마우신 분들'이란 글자가 뚜렷이 적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제 우리 이런 거 쓰지 말자"고 여러 번 얘기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 '분장실 방명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막상 사람들 이름으로 꽉 찬 종이를 보면 나도 어쩐지 가슴이 뿌듯했으니까. 그렇게 '가난이야 한낱 남루함에 지나지 않는다'는 미당의 시구처럼 살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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