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보와 백보는 같을지 모르지만 십보와 백보는 다르다." 열린우리당 남궁석 의원이 15일 아침 최고지도부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불법 대선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전날 발언을 두둔한 것이다.이밖에도 회의석상에서는 불법 대선자금에 있어서 한나라당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취지의 말이 쏟아졌다. 김원기 공동의장은 "대선 때 우리 사정은 돈 많은 국회의원의 선거만도 못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범죄집단보다 더한 수법으로 기업을 협박해 돈을 뜯어 선거 치른 사람과 돈 안쓰려고 발버둥쳤던 사람을 오십보백보로 보면 안된다"(김한길 전 의원), "어느 한쪽이 100% 잘할 수는 없는 만큼 사안의 경중을 따져야 한다"(조배숙 전 의원)는 등 발언이 이어졌다. 정동영 의원도 이날 아침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법규를 위반해 좌회전한 것과 음주운전으로 인도를 돌진, 인사 사고를 낸 것을 같이 취급해선 안된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이날 쏟아진 많은 발언 중에 반성하고 사과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전날 노 대통령도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는데 정작 우리당 사람들은 '자기 눈의 티끌'에 대해 일언반구 없이 "너희 눈의 들보가 크니 너희가 더 나쁘다"는 억지만 늘어놓았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작은 도둑은 도둑도 아니다"는 식의 자가당착적 궤변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대선자금 전모를 다 밝히겠다"고 선언해놓고 지금까지 언제 그랬냐는 듯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적게 받았으니 억울하다"는 항변은 이제 그만 하는 게 좋겠다. 그런 모습은 개혁을 기치로 내건 우리당에게 영 어울리지 않는다.
정녹용 정치부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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