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관객의 주의를 끌기 위해, 섹스만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아이템은 없다. 굳이 흐드러진 섹스 신이 아니어도 좋다. 여성의 벗은 몸, 동성애, 엿보기, 섹슈얼 판타지 같은 '성적인 그 모든 것'은 밋밋한 영화에 탄력을 주는 수단으로 이용 혹은 악용(!)돼 왔다.하지만 가끔은 성적인 테마를 통해 만리장성을 쌓는 도인들을 만난다. '미스틱 리버'(사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요즘 심심찮게 거론되는 'Q감독'이나 'B감독'은 감히 상상도 못할 수준에서, 그는 섹스를 논한다.
아직도 그를 '서부의 무법자'나 '도시의 거친 경찰'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지혜로운 노인이자 거장 중의 거장이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모티프가 있다면 성적 관계의 아슬아슬함이다. 이것은 1990년대 이후 그의 한 경향인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중년의 '순수한' 불륜을, '앱솔루트 파워'는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을, '미드나잇 가든'은 탐욕스러운 남색을 보여준다. 그는 흔히 '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성적 관계에서 한 발자국 비켜나 뭔가 뒤틀린 그것을 드러내는 셈이다. 그리고 최근작 '미스틱 리버'는 이른바 '소아애호증', 즉 사춘기 이전의 아이들에게만 성적 흥분을 느낄 수 있는 정신질환을 소재로 한 영화다.
소아애호증을 다루는 영화의 전개 양식은 대강 이렇다. 주로 여자이게 마련인 주인공에게는 뭔가 정신이상 증세가 보인다. 그리고 펼쳐지는 그녀의 이야기. 알고 보니 그녀는 어린 시절 성인 남자로부터 성 추행 혹은 강간을 당했으며 그 어른은 이웃처럼 지내던 친한 아저씨 혹은 아버지인 경우가 많다.
'무릎과 무릎 사이'는 대표적인 영화다. 플루트를 가르치던 외국인 가정교사의 은밀한 손길에 놀아나던 소녀는 어른이 되어서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301 302'의 음식을 거부하는 여자는 여고시절 의붓아버지에게 '당한' 경험이 있다. 의식적 혹은 무의적으로 겪는 어린 시절의 끔찍한 성 경험은 '피해자'를 항상 그 시간 그 장소에 고정시켜 버린다. 악몽 같은 기억은 주인공의 뇌리에 영원히 남아 불청객처럼 불쑥불쑥 나타난다.
'미스틱 리버'는 여자가 아닌 남자를 희생자로 삼는다. 어린 시절, 호색한 늙은이들에게 납치되어 성적 학대를 받은 꼬마 데이브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딘가 나사 하나쯤은 풀린 사람 같다. 여기서 감독은 단지 한 남자의 아픈 과거를 되새기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소아애호증을 미국 사회가 지닌 죄악의 상징으로 이용한다. 어른이 된 데이브는 한 남자가 어린 소년을 성 추행하려는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고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다. 그가 저지른 사건은 마을의 또 다른 살인사건과 겹쳐지고, 그는 엉뚱한 복수극의 희생자가 된다.
어른들의 이기적인 성욕은 씻을 수 없는 원죄처럼 대물림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피 흘림을 통해서야 미봉책으로나마 일단락된다는 이야기다. 상처 받은 남자와 상처준 남자의 처절한 드라마 '올드보이'만큼이나 뼈아픈 메시지다.
/김형석·월간 '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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