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만화 에세이와 MBC '!느낌표' 선정 도서가 위력을 떨쳤다. 또 출판사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뚜렷해졌다. 이런 가운데 역사와 고전을 재조명하는 인문서들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한국이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으로 확정돼 우리나라 출판계의 위상을 높였다. '기적의 도서관' 건립과 '북스타트' 등 대중적 독서운동도 자리를 잡았다.통계청이 발표한 '도소매업 판매지수'는 출판계의 불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2000년을 기준으로 할 때 2001년 105.5, 2002년 115.4인데 비해 올 9월까지는 93.2에 머물렀다. 실제로 꾸준히 책을 내 온 일부 출판사들은 매출이 40% 이하로 떨어졌다. 반면 자금력을 갖춘 대형 출판사의 시장 점유율은 늘어나 출판사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올 10월말까지 1,500개의 신규 출판사가 등록한 것도 눈길을 끈다. 교보문고 강남점(3,600평), 영풍문고 성서점(2,000평) 등 대형 서점의 확장으로 서점의 독과점 현상도 가속화, 영세 서점의 도산 및 폐업이 잇따랐다.
2월27일부터 시행된 '변형도서정가제'는 온라인 서점 매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나온 지 1년이 안 된 신간도서의 정가판매를 의무화하고, 1년 이상 된 구간 도서의 할인율은 자율적으로 책정하게 하는 한편 마일리지와 경품 혜택은 할인율 산정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한 이 제도에 따라 온라인 매출은 15∼20% 정도 줄었다.
올해 베스트셀러로는 만화에세이의 진출이 가장 돋보였다. 심승현씨의 '파페포포 메모리즈'와 '파페포포 투게더'(이상 홍익)는 합쳐서 100만부를 넘어 '해리포터'와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여기에 '야생초 편지' '톨스토이 단편선' 등 '!느낌표' 선정 도서와 '나무' '뇌' '화' 등 외국저작물, '10억 만들기' '부자 되기' 등 자기계발 실용서들이 1, 2위를 다퉜다.
인문·과학도서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했지만 고전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출판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김시습평전' '현산어보를 찾아서' 등이 화제작으로 떠올라 독창적 콘텐츠 기획과 개발만이 불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임을 보여주었다.
국내 출판사들의 해외진출이 활발해진 것도 위안이다. 9, 10월에 열린 베이징(北京) 도서전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기간 중 저작권 계약실적은 모두 262만 달러(약 31억원)로 지난해보다 50%가 늘었다. 특히 어린이 서적 출판사인 '재미마주'의 그림책이 2년 연속 뉴욕타임스 선정 우수그림책으로 뽑힌 것도 출판인들의 사기를 높여주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가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으로 확정돼 국가전시관을 배정 받아 문화산업 전반을 홍보하고, 결과적으로 출판시장의 해외진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책과 담을 쌓았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책읽기' 운동도 본격화했다. 이달 말 끝나는 MBC '!느낌표' 프로그램의 '책을 읽읍시다' 코너는 전반적으로 독서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지만 특정 도서의 편식을 권장했다는 일부 비판도 받았다. 이밖에 유아를 대상으로 한 '북스타트', 어린이전문도서관인 '기적의 도서관', 군부대 도서관 설립 운동 등은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면서 독서운동의 외연 확대를 예고했다. 파주출판문화단지에 창비와 한길사 등이 속속 입주하는 한편 이 주변에서 다양한 출판문화행사가 펼쳐져 파주가 북시티로 떠오른 것도 출판계의 화제였다. 출판단지에는 연말까지 50여 출판사가 입주하며, 내년에는 150여 출판사가 옮겨 올 예정이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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