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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차떼기와 대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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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차떼기와 대쪽

입력
2003.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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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실이 픽션보다도 더 기이하다고 한다. 한국정치를 보노라면 이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한 예로, 김대중 정부 시절 1인당 40만원짜리 식사를 즐긴 권노갑씨의 비리혐의와 관련해 얼마 전 승용차에 50억원이 든 사과상자를 실을 수 있는가에 대한 현장검증이 실시되는 촌극이 벌어진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나라당의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해, 농산물 판매에나 통용되던 차떼기, 트럭떼기가 등장해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삼성은 이 같은 조야한 방법대신 고액채권을 책으로 포장해 전달함으로써 역시 무언가 달라도 다르다는 평을 받고 있다.

더욱 참담한 것은 이 같은 트럭떼기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쪽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고 정치에 입문해서도 정치자금에 대해 결벽증을 보여 온 것으로 정평이 났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총재와 관련해, 그것도 이 전총재의 최측근이 관계되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나서 "돈 안드는 정치하는 게 그렇게 힘드냐"고 안타까움을 표명했겠는가?

주목할 것은, 탁월한 법조인이자 한국 보수세력이 내놓을 수 있는 인물 가운데 가장 능력 있다는 이 전총재가 현재와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한나라당이라는 시스템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라는, 열린우리당의 이부영 의원과 신기남 의원의 지적이다.

결국, 이 지적대로 문제는 시스템이다. 이 전총재가 과거 대쪽일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가 올곧았기 때문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전총재가 과거 법관의 길이 아니라 3김과 같이 정치의 길을 걸었다면, 과연 대쪽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었겠는가?

사실 이 전총재는 정치권에 들어온 뒤에도 돈에 대한 엄격한 태도로 결벽증을 가지고 있다는 평을 받아 왔지만, 주변에는 정치자금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 전총재가 정치에 입문해 선대위원장으로 활약한 15대 총선에서 안기부예산을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풍이 있었고, 97년 대선 때는 동생인 이회성씨가 세풍으로 감옥을 가야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최측근인 서정우 변호사 등이 사법적 심판을 받게 됐고 이 전총재까지 자진해서 검찰에 출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신기남 의원 등의 지적은 반쪽만 맞고 반은 틀렸다. 즉, 이들의 지적과 달리, 한나라당이라는 시스템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의 뿌리인 민주당을 포함한 한국정치 일반의 시스템이 문제인 것이다. 이는 대통령의 아들들로부터 권노갑, 박지원, 한광옥 등 김대중정부의 실세들이 줄줄이 비리 혐의로 사법적 심판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실이 입증한다.

또한, 한도 원도 없이 정치자금을 써봤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고백이 잘 보여주듯이, 검찰이 수사를 2000년 총선자금까지 확대한다면,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별로 다르지 않게 여당의 프리미엄을 가지고 엄청난 돈을 모으고 사용했다는 사실이 나타날 것이다.

다만, 검찰의 조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지난 대선 노무현캠프의 경우 자원봉사라는 새 시스템이 어느 정도 활성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정치자금을 모으고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기는 한다. 노 대통령이 4당대표 회동에서 자신의 불법대선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또 다시 경솔하기 짝이 없는 '오버'를 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에 대한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대쪽에서 차떼기로 전락한 이 전총재의 비극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한국정치의 시스템을 혁명적으로 고치지 않는 한, 정치라는 것이 범법자 양성소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 점에서 엄청난 대선자금 파문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주도하고 있는 정치개혁이 각 당과 개별의원들의 정략 속에 표류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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