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민주당은 14일 4당 대표와의 청와대 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내가 쓴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1을 넘으면 정계은퇴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한목소리로 "검찰에 대한 협박이고 수사지침"이라고 맹비난했다. 검찰과 시민단체들도 "수사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4자 회담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즉흥적 발언인지 준비된 발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얘기를 함부로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박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검찰에게 노 대통령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를 10분의1 이내로 억지로 꿰 맞추라는 수사지침을 내리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검찰로부터 그런 꿰어 맞추기 수사결과를 보고 받은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폭탄선언과 정치도박으로 궁지를 모면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노 대통령은 10분의1이든 20분의1이든 부정한 돈으로 당선된 사실과 당선을 전후해 뇌물을 받은 사실이 판명되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은 "자신의 대선자금 수사는 한나라당의 10분의1 선에서 멈춰야 한다고 사실상 검찰을 협박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1만원을 훔친 도둑이나 1,000원을 훔친 도둑이나 다 같은 도둑"이라며 "검찰 수사결과 불법 대선자금이 조금만 나와도 노 대통령은 법에 정해진 대로 당선무효"라고 말했다.
민주당 조순형 대표는 "대통령의 발언은 성급하고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김성순 대변인은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고 한 것에 이은, 매우 경솔한 발언으로 부정과 비리를 상대적 개념으로 보는 시각부터가 잘못됐다"며 "노 대통령의 발언대로라면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의 11분의1은 괜찮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노 대통령은 자신도 관련된 검찰 수사를 간섭하거나 방해하려 해선 안된다"고 경고했다.
장전형 부대변인은 "4당 대표 회담에서 노 대통령은 검찰에 우려를 표명하여 검찰 스스로 한계선을 지키게 하는 정도의 간섭을 스스로 인정했다"면서 "이번 발언도 검찰에 주는 우려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검찰도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대검의 한 간부는 "대통령의 폭탄 발언이 모두 검찰 수사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수사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법무부의 한 검사는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해칠 수 있는 발언으로 향후 검찰 수사 결과를 놓고 야권 등으로부터 시비를 부를 소지가 많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통령이 정치권의 '고해성사'를 촉구하기 위해 준비한 발언일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경실련 관계자는 "검찰 수사결과가 명확히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사퇴 발언 등은 너무 앞질러가는 것이라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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