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정당의 대선자금 의혹이 하나 둘 밝혀지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나라가 망하겠다는 위기의식, 정치부패에 대한 분노가 절정에 올라 온 나라가 폭발 직전이다.선거란 '도둑들의 잔치'에 불과하다는 한탄까지 나온다. 선거자금을 모은다는 명목으로 노략질이 성행하고, 선거로 정권을 바꿔 봤자 부패가 계속될 뿐인데 막대한 국력을 소모하며 왜 선거를 하느냐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가 발전해 왔다는 주장도 빛을 잃고있다. 부패를 확대 재생산하는 정치체제가 과연 진정한 민주주의냐는 회의가 고개를 든다. 도둑질에 필요한 권력을 총칼로 독점하는 대신 투표로 공개 입찰하는 것이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자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대통령도 자기자신이나 측근의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야당시절 권력의 부패를 추상같이 나무라던 사람, 개혁이 자신의 전유물인듯 큰소리치던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대쪽 이미지'로 기대를 모았던 야당지도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의 측근들은 1997년 대선자금 모금에 국세청을 끌어들인 '세풍' 사건을 일으켰고, 2002년 대선에서는 현금을 가득 실은 트럭을 통째로 넘겨받는 '차떼기'수법까지 동원하며 수백억을 긁어 모은 것으로 드러나고있다.
오래 굶고 오래 소외됐던 집단, 일류 학벌로 이 사회의 노른자위를 차지했던 집단, 민주화운동에 한때 목숨을 걸었던 집단 등이 다 마찬가지다. 어떤 집단은 수백억을 먹는데 어떤 집단은 수십억밖에 못 먹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능력'의 차이지 도덕성의 차이로 보이지는 않는다.
선거라는 멍석이 깔리면 그들은 마피아 뺨치는 수법으로 돈을 긁어 모았다. 죄의식 수치심 염치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법의 처벌을 받았던 경험도 교훈이 못 된다. 정권을 잡아 권력과 돈을 차지하겠다는 탐욕뿐이다.
얼마 전엔 현금 150억을 승용차에 싣고 달릴 수 있느냐는 현장검증이 장안의 화제가 되더니 이제는 신종 '차떼기'수법이 화제다. 현금 150억을 실은 대기업의 트럭을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대통령 후보의 측근인사가 넘겨받는 장면은 마피아 영화를 무색케 한다.
기업은 피해자가 아니고 공범이다. 전경련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치개혁없이는 정치자금을 낼 수 없다고 주장했고, 정책이 맞는 정당에 지정기탁을 하겠다는 큰소리까지 쳤다. 기업은 어디까지나 피해자라고 강조하면서 동정론을 일으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기업 저 기업이 각종 파렴치한 수법을 동원해서 유력한 후보에게 막대한 대선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자 사정은 달라졌다. 기업들은 일종의 투자로 돈을 바쳤음이 분명해 졌다. 전경련은 마침내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그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고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지난 9일부터 멕시코에서 열렸던 유엔부패방지협약회의에서 미국의 존 애슈크로포트 법무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부패는 빈자에 대한 과세다. 가난한 자로부터 돈을 훔쳐 부자를 더욱 부하게 만드는 짓을 끝장내야 한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경제 및 사회적 문제 해결에 절실하게 필요한 돈을 부패한 엘리트들이 노략질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옳은 지적이다. 부패는 빈자의 몫을 가로채고 빈자의 부담을 늘리고, 빈자의 소박한 꿈을 조롱한다. 조롱 당한 국민의 분노를 아는가. 노조, 농민, 온갖 이익집단들의 투쟁이 격렬하고 때로 폭력적인 것은 정치부패와 깊은 연관이 있다.
양심이 살아있는 정치인, 검찰, 언론, 유권자 단체 등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각자 서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불법정치자금을 끝까지 파헤쳐서 엄벌하고, 무엇보다 제도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유권자들은 의사당을 둘러싸고 부패추방을 위한 촛불시위라도 해야 한다. '도둑들의 잔치'로 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본사 이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