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에 일어나 총총한 별을 보며 눈을 씻습니다. 오전에 주로 글을 쓰고, 오후에는 밭일을 합니다. 1식 2찬, 보현과 문수 개 두 마리가 벗이고 그래도 무료하면 계당산(桂棠山) 산보로 달랩니다."2000년 봄 서울 생활을 완전히 접고, 전남 화순군 이양면 증리 쌍봉사(雙峯寺) 근처 산중에 혼자 살림을 내 화제가 됐던 작가 정찬주(50)씨가 역사추리소설 '대백제왕'(전2권·아래 )을 냈다. 기행산문집 '암자에는 물 흐르고 꽃이 피네', 성철 스님 이야기를 다룬 '산은 산 물은 물' 등 불교 관련 책을 많이 쓴 그가 역사소설에 도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은 시나리오 작가인 화자가 대학 은사의 권유로 백제 성왕에 얽힌 비밀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료 조사 끝에 화자는 1993년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금동대향로가 6세기 백제 성왕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제기라고 밝힌다. 또 일본인들이 쇼토쿠(聖德)태자상이라고 믿는 호류지(法隆寺) 비불(秘佛)이 성왕을 그린 것임도 입증해낸다.
"상상력을 동원한 것이지만 금동대향로가 성왕의 명복을 빈 절인 능사(陵寺) 터에서 발견된 데다 성왕의 딸이 사리감을 시주했고, 단 한 점밖에 출토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성왕을 위한 제기라고 봤습니다." 호류지에 봉안된 구세관음상(救世觀音像)을 성왕의 아들인 위덕왕이 부왕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등신불로 추정한 것은 일본 고서 성예초(聖譽抄)의 '위덕왕이 부왕의 형상을 연모해 만든 존상이 곧 구세관음상이다. 또한 이것은 상궁태자의 전신이다'는 구절에 따른 것이다. 김상현 동국대 교수의 논문이 창작의 출발점이 됐다.
소설도 소설이지만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작가의 산중 생활이다. "상명여고 국어교사, 샘터 편집자로 20년 넘게 살고 난 뒤 문득 초로의 나이를 맞고 보니 자신에게 좀더 지극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혹자는 유유자적하는 것처럼 보기도 하지만 그는 "온몸을 던져 정말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살기 위해" 귀산(歸山)을 택했다고 했다.
고향(보성)도 아닌데 계당산 자락에 터를 잡은 것은 동국대 국문과 시절 소설 습작을 위해 찾곤 했던 쌍봉사가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산을 개간해 논밭으로 일구고 그 옆에 서재와 차실로 나뉜 22평짜리 아담한 기와집을 지어 '이불재(耳佛齋)'라고 이름 붙였다. 논일은 남에게 맡기지만 300평 밭에는 도라지와 더덕, 상추, 아욱, 땅콩, 고추 등을 직접 기른다.
이런 저런 일로 가족이 있는 서울에 서너 달에 한 번씩 올 때나 원고 집필을 위해 취재에 나설 때를 빼면 늘 산중에서 혼자 지낸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지인들을 반기고 쌍봉사 나들이로 무료함을 달랜다. "외로우니까 자연이 더 가까워지더군요." 산골 생활 3년 만에 그는 솔바람에 귀 씻어 부처 될 욕심도 잊은 듯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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