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지난 대선 당시 당이 삼성 LG SK 등 대기업으로부터 불법 대선자금을 수수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시점은 언제일까. 그의 핵심 측근 서정우 변호사가 자금 수수사실을 시인하면서 새삼 제기되는 의문이다.지금까진 "대선 당시부터 당연히 알았다"는 주장이 대세였다. 이 전 총재의 고교 동기인 최돈웅 의원이 SK로부터 100억원을 직접 수수하는 등 비자금 수수의 장본인들이 이 총재 측근들이란 점에서다. "부인 다음으로 가깝다"는 서정우 변호사가 수수에 핵심 역할을 했다면 이 전 총재의 '사전 인지설'은 더욱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반대 주장도 만만찮다. 특히 서 변호사가 "지난 주에 이 전 총재를 만나 LG와 삼성, 현대자동차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아 당에 전달했다는 보고를 드렸다"는 심규철 의원의 전언이 나오면서 '최근까지 몰랐다'는 추정도 유력해지고 있다. 11일 서 변호사를 면회한 심 의원에 따르면 서 변호사는 "검찰소환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곧바로 이 전 총재를 찾아갔으나 너무 놀랄까 봐 액수까지 밝히지 못하고 기업 명단만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에 이 전 총재는 "어떻게 자네가 구속되는 것을 보겠나. 차라리 내가 처음부터 지시했다고 말하고 (검찰에) 들어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서 변호사는 "내용도 모르고 어떻게 지시했다고 하시겠습니까"라고 답했다고 한다.
서 변호사는 또 심 의원에게 "3개 기업으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고 처음에는 왜 나를 지목하는지 의아 했으나 기업 관계자들이 '당신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고 해 악역을 맡기로 했다"며 자신의 행동이 이 전 총재를 향한 충정에서 나온 것임을 주장했다. 그는 이어 "기업측은 '정치인은 믿을 수 없고 잘못하면 우리 입장만 곤란해질 수 있는 만큼 돈이 어디서 왔다고 말하지 말라'고 당부해 당에 전달할 때는 돈의 출처를 알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 변호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느냐는 반론도 만만찮다. 이 전총재를 보호하기 위한 의도적 발언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 전 총재가 세세한 내역은 알지 못하겠지만 불법 자금의 윤곽은 파악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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