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재즈가 아직도 특정 계층의 문화, 또는 막연하게 아프로―아메리칸(Afro-American)의 음악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 같다. 재즈하면 흑인이 연상되고, 그런 이질감 때문인지 언제까지나 우리 것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재즈 비평가 소에지마 데루토는 다음과 같이 재즈를 정의, 지금까지 우리가 가져왔을 고정관념을 되돌아 보게 한다."재즈란 서구 클래식 음악 전통과는 다른 측면에서 즉흥 연주와 작곡의 관계 또는 그 거리를 계측하려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차츰 새로운 방법이 생겨나고 새로운 역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계측'이라는 표현이 매우 이채롭지만 본래 재즈 연주라는 것이 자유로움(즉흥 연주)과 엄격한 규율(화성)이 공존하는 치밀한 계산적 행위라는 점에서 그런 용어가 기계적이긴 하나 매우 타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렵게만 느껴졌던 재즈를 더 어렵게 이야기하는 듯 하여 공교롭지만 냉혹하게도 현대 재즈는 그 옛날 미국의 흑인들이 연주하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담배 연기 자욱한 클럽이나 큼직한 시가를 물고 기타를 연주하는 흑인의 이미지를 더 이상 재즈와 연계하면 안 된다. 현대 재즈는 "재즈는 인생이다" 또는 "재즈는 영혼(soul)의 음악이다"와 같은 감상적인 말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고도의 예술행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뛰어넘는 재즈 강국 일본이나 유럽 국가는 이미 재즈를 인종과 지역을 초월한 예술장르로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살펴왔기 때문에 풍요로운 창작의 산실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남무성 재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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