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미술은 항상 같이 하지 않았습니까?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안에 그림이 담겼지요(畵中有詩 詩中有畵)."열여덟 번째 시집 '문 밖의 겨울' 출간 기념을 겸해 10일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시화전 '시로 가는 그림여행'을 시작한 시인 류석우 월간 '미술시대' 주간은 '시화상합(詩畵相合)'으로 소회를 밝혔다. 화가 90명이 작품을 내고 류씨가 그에 어울리는 시를 한 편씩 붙였다. 서세옥 백남준 이종상 서승원 이두식 이왈종 김병종 지석철 이석주 이인실 송수련 장혜용 정현숙….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그의 시를 매개로 드물게 한 자리에 모였다.
그는 15년 째 시화전을 계속해 오고 있다. '시화전' 하면 이젠 낡은 것으로 들린다. 멀리는 전후 명동의 다방에서 열렸거나, 가까이는 중고생의 축제에서나 살아남은 문학적 낭만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이성적, 논리적 언어도 좋지만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언어에 독자들이 작은 위안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는 미술계에서 '마당발'로 통한다. 1989년 '미술시대'를 창간, 수많은 미술잡지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IMF 위기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도 한 번도 쉬지 않고 잡지를 냈다.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시위 때문에 3학년 때 중퇴했다. 문학청년으로 66년 '문학춘추'에 조지훈, 박목월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생활의 방편이었지요. 젊은 화가들의 도움을 받아 시화전을 열고, 그들의 작품 평을 써주고…. 74년 해강 유근형, 천한봉, 신상호 현 홍익대 교수의 '한국도예명인전' 기획에 참가한 것이 시작이었지요." 그렇게 시작된 미술과의 만남이 그의 인생이 됐다. 그때 그와 인연을 맺은 젊은 화가들이 이왈종 박대성 오용길 이숙자 원문자 등 현대 화단의 중추인 작가들이다. 국내 최초의 작가별 아트페어인 한국현대미술제를 창설하고 '회화의 회복'전 등 많은 기획전을 열어 젊은 작가를 발굴해 왔다.
그는 '왕고집'으로도 유명하다. 말 많은 미술판에서 오해도 많이 산다. 전통 장르인 회화와 조각에 대한 고집스러운 애정, "난해한 서구 미술 아류가 마치 이 시대 미술의 전부인 것처럼 호도하는 분위기"에 대한 비판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의 시 또한 그래서 평이한 언어로 엮인다. '그리움이 없이도/ 사는 게 즐겁다는/ 그런 사람의 그림에선/ 아무 것도 볼 게 없네/ '그리움'이 낯설다는 이가 / 그린 그림은/ 아무리 보아도/ 사람을 이리도 춥게 하는지'('죽은 그림').
매년 40∼50명의 화가와 함께 연 그의 시화전이 이번엔 규모가 커졌다. 올해는 그의 갑년이다. 그는 "나이 얘기는 제발 하지 말라"면서도 "작고한 화가 황창배가 암에 걸린 것을 알고 '황창배를 돕기 위한 우정전'을 기획했다가 전시를 한 달 앞두고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 가장 아쉬운 기억"이라고 지난 시간을 돌이켰다. 시화전은 16일까지 열린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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