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하는 일은 궁극적으로는 언어의 완성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내가 최초로 소설을 쓰기 시작할 무렵에는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년전에, 나는 예술가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서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고 싶어졌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이 궁금했다. 그들이 누구인가, 그들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들은 과연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무엇을 원하고 있었는가 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은 좀 오래 계속된 꿈이기도 했기에 책을 읽을 시간을 내기 위해 다니던 직장도 휴직할 수밖에 없었다.아마도 그 때가 최초로 내가 작가가 된 시점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한다. 작가가되기 위해서 어쨌든 무슨 결정적인 선택이란 것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책이나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들예술가 자신의 이름이나 인생이나 업적이 아니라 바로 책이나 글 자체에서 내가 원하던 것을 읽어냈다. 그들은 자신의 유일한 세계를 추구하려 애썼고, 유일한 세계는 유일한 언어를 가진다는 것이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그 시점을 전후해서 쓰인 책이다. 작가로서 생각이 많았던 시기를 거쳐서 쓰였기 때문에 이 책은 그 동안 내 사고의 지층을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는 편이다. 예를 들자면, 지금은 '절대로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 소설적 장치가 종종 눈에 띄기도 하고, 이미 내게 익숙한 것들에 게으르게 안주하려는 안이함이 보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그런 점들에 대한 혐오와 저항도 읽히는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이 책이 상을 타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상을 타는 책'이란 어느 정도 유형이 있고, 그 유형에 비한다면 이 책은 정서가 좀 불안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밖에도 나는 이 책에서 가난에 도덕적인 우위를 두지 않았는데, 그것이 사실과 더 가깝다고 생각해서였다. 혹시 그런 점이 빈곤의 에피소드를 희화화해서 가난을 조롱하는 것으로 잘못 읽힐까봐 소심하게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설사 어떤 질문을 받게 되더라도 변명은 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바라기를, 소설가이기보다는 작가이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쓸 때, 지금 쓰고 있는 글의 종류가 무엇인가 하는 개념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분명해야 한다는 습관적인 긴장에서도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내 생각으로는 문학이란 본래 순수한 자유인을 위한 나라, 무정부주의자들을 위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 문학이 가지고 있는 엄격함은 언어의 궁극적인 해방을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형식의 파격이나 혁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대하는 나를 포함한 독자들의 의식의 자유로움을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 세계의 시민이자 네트워크의 포로인 모든 인간들, 그들 모두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들이 과연 무엇을 하는가,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대해서 나는 문학에서 대답을 들으려 하는 한 사람으로서 여기 서 있다. 나는 글 속에서 그들을 만나기를 바라며 그들이 나를 글 속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한작가가 세상을 향해 소리 내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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