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며칠 전 대전, 충남 주민들과 오찬에서 행정수도 이전문제와 관련해 지방분권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자율과 분권,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대신 옛날식으로 패권을 행사하고 밀실에서 결정하던 시대에 미련을 갖고 자꾸 매달리는 사람들이 바로 수구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언론은 전하고 있다.백번 만번 맞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고 있는 수도권 지자체 관계자들, 나아가 국회에서 행정수도 이전 특위 구성을 무산시킨 한나라당은 문제가 많고 수구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문제는 노 대통령의 비판이 노무현 정부에게도 해당된다는 점이다.
핵폐기장 설치에 관한 부안문제 등에 대한 행적을 보면 노무현 정부는 정확히 자율과 분권,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대신에 옛날식으로 패권을 행사하고 밀실에서 결정하던 시대에 미련을 갖고 자꾸 매달려 오고 있다. 이 점에서 최소한 부안사태에 관한 한, 노무현 정부는 노 대통령식의 정의에 따른 '수구'이다. 노무현 정부가 주민들의 찬반 투표 연내 실시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올해를 넘기게 된 부안사태는 단순한 부안 문제를 넘어서 노무현 정부 1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새만금, 부안사태 등이 보여주듯이 노무현 정부는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과거식의 발전제일주의, 경제성장주의로 회귀하고 말았다. 나아가 참여정부라는 명칭과는 정반대로 부안문제로부터 이라크파병에 이르기까지 밀실결정만 있었지 주민참여, 국민참여는 없었다. 또 말로는 대화와 타협을 추구한다면서 "밀리면 안 된다"는 패권과 오기정치가 오래 전에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다. 게다가 노 대통령이 부안사태에 대해 처음으로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듯이 시도 때도 없이 '오버'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도 4년 이상 남아있다. 따라서 문제는 노 대통령이 이런 문제들에 대한 비판을 겸허하게 경청하고 문제점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부안사태에서 시작돼야 한다.
즉, 그간의 일방적 사업추진에 대해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찬반투표를 연내에 실시해 다수가 반대할 경우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혀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사업추진을 취소할 때 생길 국가권위의 실추를 우려하고 있지만, 스스로 추락시킨 국가권위가 더 이상 추락하는 것을 막는 것은 오히려 빨리 잘못을 인정하고 사업을 중단하는 것이다.
나는 장기적으로 문제가 많은 핵에너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반대하기 때문에 핵폐기장 건설에도 반대한다. 설사 핵폐기장이 필요하더라도 대안은 있다. 그것은 행정수도 이전이란 카드이다. 행정수도와 핵폐기장을 연계해 핵폐기장을 받아들이는 지역에 행정수도를 이전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발 우리 마을만은 안돼"라는 혐오시설에 대한 '님비'(Not In My Back Yard)를 "제발 우리 마을로"라는 인기시설에 대한 핌피(Please In My Front Yard)와 한 묶음으로 세일즈하는 것이다.
나아가 핵폐기장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의 양이 자연상태에 떠 있는 방사선 양의 수십분의 일에 불과해 안전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인 만큼, 핵폐기장을 행정수도에 새로 지을 청와대 지하나 영내에 설치해 대통령이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한 마디만 더 하자면, 행정수도 이전은 지방분권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 지역이 충청권이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즉, 통일을 고려할 때, 행정수도를 서울 남쪽이 아니라 오히려 북쪽의 어딘가, 특히 낙후한 강원도의 어딘가로 옮기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충청 표나 얻으려는 정략적 사고를 벗어나 후보지역에 대해 열린 자세로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