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과거사는 잊고 국제관계 개선을 위해 추모비를 세워줍시다." "우리나라를 침탈하기 위한 전쟁의 성격상 조그만 상징물조차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인천시가 내년 러·일전쟁 100주년을 앞두고 러시아 요청에 따라 당시 인천앞바다에서 숨진 러시아 군인들을 위한 추모비를 세우기로 내부 방침을 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러·일전쟁 당시인 1904년 2월 러시아 군함 바리약(Variag)호는 인천앞바다 팔미도 근처에서 일본 해군과 접전을 벌이다 패색이 짙어지자 소월미도 부근에서 자폭, 러시아군인과 선원 등 770여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것.
러시아 함대가 다시 인천앞바다에 나타난 것은 93년이 지난 1997년 2월. '바리약호'로 이름 붙인 최신형 순양함을 타고와 숨진 장병들을 위로하는 추모 행사를 가졌다. 그 뒤 러시아는 매년 해상헌화 등 추모행사를 벌여 오다 올해 초 인천시에 돌연 추모비 건립을 요구하고 나섰다. 주한 러시아대사가 인천시를 방문, "2004년은 러·일전쟁 100주년이 되는 만큼 추모비를 인천앞바다 인근에 세울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며 부탁한 것.
시는 이에 따라 월미도부근 공원에 추모비 건립을 검토했으나, 월미공원을 관리하는 서부공원관리사업소측이 공원훼손 등을 이유로 반대, 없었던 일이 되는 듯 싶었다.
잠잠하던 추모비 건립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월. 이번에는 러시아대사와 부 대사가 잇따라 박동석 인천정무부시장을 찾아와 협조를 강력히 요청했다. 추모행사의 주요 내용은 인천앞바다 인근 추모비 건립 러시아 유물 공동전시회 당시 부상자를 치료했던 병원(현 중구 내동교회내) 명시 러시아 순양함 바다 행사 등 4가지.
여기에 정부도 최근 인천시에 추모비 건립 등 100주년 행사에 차질이 없도록 도와주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이렇자 인천시는 러시아측이 요구한 대부분 사안을 수용키로 하고, 추모비 건립 부지선정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인천시 고위관계자는 "추모비는 세워주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으나 장소 및 규모, 문안 등 세부적인 사항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시민단체들은 역사의 치욕을 망각한 있을 수 없는 처사라며 인천시와 정부를 강력 성토하고 나섰다.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문화단체인 새얼문화재단 유태영(43) 사무국장은 "당시 러시아군인들은 우리나라를 침탈하기 위해 해상전투를 벌이다 숨졌는데, 인천앞바다 인근에 버젓이 추모비를 세운다는 것은 침략전쟁을 역사적으로 기리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해반문화사랑회 관계자도 "러시아측의 추모비 건립 등은 인천은 물론 우리나라를 무시한 말도 안되는 요구"라며 "내년 러·일전쟁 100주년을 맞아 역사의 침략자로서 먼저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반대했다.
이들 문화시민단체는 추모비 건립이 구체화하면 연대회의를 구성, 대규모 집회 및 반대 서명운동 등 대대적인 실력행사도 불사하기로 했다.
/인천=송원영기자 w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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