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에게도 고집과 버릇이 있다. '복수는 나의 것'에 이어 또 다른 복수 이야기를 그린 '올드보이'로 평론가들의 호평은 물론 대단한 흥행까지 일군 박찬욱 감독의 습관, 혹은 고집은 잔혹이다.'복수는 나의 것'에서 유괴 당한 아이가 물에 빠져 죽은 모습을 잡은 화면을 기억해 보자. 얼굴 한쪽만 물 위로 떠올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그 어떤 장면보다 충격적이며, 동시에 연기하는 꼬마의 내면에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물 속에 들어가 유괴범의 아킬레스건을 쓱 베어내는 장면은 아주 냉정하고 고요한 잔혹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올드보이'에서 그의 잔혹에의 열망은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 장도리로 이를 뽑고, 가위로 혀를 오려내는 시늉 장면은 망치, 가위와 신체가 만든 이질적 조합에 의해 소름 끼치는 자극을 빚어냈다.
기이한 것은 그의 잔혹이 곧 매혹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는 칼로 살을 베는 대신 가위로 살을 오릴 수도 있다는 새로운 외과학적 시도를 통해 공고한 인식의 틀에 균열을 만들어낸다. 이 때문에 그의 '잔혹'은 독창적 이미지를 획득, '서정'으로 업그레이드된다.
고집이 있는 건 '낭만자객'의 윤제균 감독도 마찬가지다.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등 전작 두 영화는 평자들에게는 엄청나게 '씹혔지만' 관객들은 그의 영화를 사랑했다. 달걀 대신 정액을 넣은 토스트에 이어 '낭만자객'에서는 똥 묻은 반지, 코딱지 같은 더욱 엽기적인 재료들이 등장한다. 더 역겨울수록, 더 즐겁다는 '화장실 유머 코미디'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감독은 상당한 성취를 이뤄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영화에서 변하지 않는 일송정 푸른 솔 같은 버릇이 있으니, 그것은 머리 때리는 장면이다. 전작에서처럼 '낭만자객'에서는 역시나 1분30초(자의적 시간 개념에 입각한 것으로 실제와는 차이가 있음)에 한 번 꼴로 뒤통수, 옆 머리를 마구 때려댄다. 여자 귀신들끼리, 멍청한 자객들끼리. 이런 코미디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찾는 일은 어울리지 않겠지만 반복을 통해 느껴지는 것은 식상함이다. 못 배운 미국 녀석의 입에서 연신 흘러 나오는 'fuck'이란 단어를 듣는 듯, 심한 욕인 줄도 모르고 '절라'를 외쳐 대는 아이들의 잘못된 말버릇을 보는 듯하다. 거기엔 새로움 대신 각질로 굳어진 습관만 있다.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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